[데스크 칼럼] 도자기가게 코끼리를 우짤꼬?
배동진 서울경제부장
트럼프 좌충우돌 행보 지구촌 들썩
관세 부과에 수출 중심 한국 직격
철강·알루미늄·자동차 피해 우려
피하기 급급 한국 정부·기업 '처량'
독일 속담에 ‘도자기상점에 들어간 코끼리’라는 말이 있다. 덩치 큰 야생코끼리가 귀한 상품들이 가득 진열된 도자기상점에 들어가 돌아다닌다. 코끼리가 움직일 때마다 부딪쳐 도자기들이 부서진다.
2기 행정부를 시작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즘 행보가 저 속담 속 주인공 같다. 취임 전부터 떠들썩했고 취임 후 전세계 곳곳에 대놓고 트집을 잡고 있다. “그린란드·파나마운하·캐나다를 미국땅으로 편입해야 한다” “멕시코만은 미국만으로 바꾸겠다” 등 발언이 거침이 없다. 여기까지는 한국에 큰 영향이 없다. 하지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관세 카드’는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 직격탄이다.
미국 정부는 12일부터 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의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다음 달엔 한국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에 관세를 물릴 방침이다.
이 같은 미국의 으름장은 어느 정도 약발이 받는 모양이다. 백악관은 지난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기업들이 관세로 인한 타격을 줄이기 위해 미국 시장으로의 진출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며 대표적인 사례로 삼성전자와 현대차, LG전자를 다국적 기업 10여 곳과 함께 언급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고, 현대차의 경우 조지아주의 전기차 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가 지난해부터 시운전에 들어갔고 이달 말 준공식을 가질 예정이다.
기업들은 이 같은 현지화를 통해 미 정부와의 충돌을 피하고 역내 점유율을 유지하거나 확대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정부로서도 자국의 무역적자와 함께 미국 내 실업률를 낮추는 일석이조 효과를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노믹스의 통상정책은 무역적자 개선이 최우선 목표”라고 했다. 2023년 기준 중국의 대미수출 규모는 4272억 달러로, 미국의 대중 수출규모 1478억 달러의 3배에 달한다. 트럼프 통상정책의 주된 관심대상 국가는 중국과 멕시코, 베트남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의 한국 무역적자는 514억 달러 규모로 중국의 5분의 1 수준이다.
관세를 피해 미국 내 현지공장을 짓는 게 과연 정답일까. 지난해 미국 출장 중에 간 식당에서 경험한 물가는 한국의 2~3배 수준이었다. 통계치로 나온 미국 평균임금도 한국의 배가량 된다. 동남아나 남미 등 인건비가 싼 곳과 비교하면 더 큰 차이가 난다.
인건비가 싼 지역 대신 미국 내에서 제품이 만들어진다면 가격은 수입 제품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 미국 국민들은 상대적으로 비싼 미국산 TV나 자동차를 사게 된다. 이로 인해 소극적인 구매로 이어져 결국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렇게 해서 최근 생겨난 신조어가 ‘트럼프 리세션’(경기후퇴)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을 댕긴 관세 전쟁이 제 발등을 찍어 상대국은 물론 미국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는 부메랑이 될 것이란 얘기다.
실제 미국 경제성장률을 실시간으로 추정하는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지디피나우(GDPnow)는 지난 6일(현지 시간) 올해 1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을 -2.4%(전기 대비 연율 기준)로 제시했다. 지난 2년여 동안 나홀로 성장을 이어온 미국 경제가 트럼프의 관세·이민 정책으로 후퇴할 것이란 우려가 커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기 침체 전망에도 “큰일에는 과도기가 있다”며 다음 달 2일부터 미국의 모든 무역 상대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될 경우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은 최대 0.62%포인트 하락하고,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인 제조업 위축으로 관련 산업 부진과 양질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의 대응 카드는 없을까. 벌써 캐나다와 중국 같은 대국들은 미국을 겨냥해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맞불작전을 펴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에선 아직 그런 얘기가 없다. 자동차, 반도체 등을 수출하는 국내 그룹 총수들은 트럼프 대통령 아들, 실세 등에 줄대기 바쁜 모습이다. 미국 내 한국 기업의 대관 담당 인력도 보강하고 있다. 맞대응 해봐야 손해만 더 커진다며 피해 최소화 분위기다.
최근 국방, 조선, 반도체, 한류 등으로 국격이 높아지면서 전 세계인이 한국인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번 사태를 보면 한국은 아직도 올라갈 ‘산’이 많아 보였다.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