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화의 크로노토프] 기초예술은 미래 먹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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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음악 칼럼니스트

예술을 감상하는 권리도 중요하지만
창작에 참여할 권리도 긴요한 시대
오페라하우스, 기회의 평등 제공하길

최근 중국 인공지능 챗봇 서비스인 ‘딥시크’의 등장으로 전 세계가 놀랐다. 딥시크가 보여준 놀라운 효율성은 곧바로 세계적인 반도체와 전력 기업의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관련 기술들은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무한 경쟁에 들어간 기술 혁신의 속도는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따라가기 어렵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언제나 그것을 만든 사람이 있다. 우리가 자신 있게 다른 나라와 격차를 벌릴 수 있는 산업 분야는 무엇인가? 바로 K문화라 불리는 문화산업이 그중 하나다. 우리는 김구 선생이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다”라고 한 ‘그 힘’을 가지고 있다.

주요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쏟아져 나오는 우승이나 상위 입상 소식은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지난 2월 9일, 스위스 로잔 국제발레콩쿠르에서 16살의 발레리노 박윤재가 그랑프리를 수상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공연예술에서 음악 분야를 넘어 무용 분야에까지 나타난 성과들은 단순히 개인적 능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가진 문화적 영향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것이다.

문화로 세계에 우뚝 서는 일은 개인의 열정이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술교육, 특히 기초 예술교육은 체계적인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기초가 튼튼해야 오래 유지되고 큰 업적을 만들 수 있는 법이다. 문화와 예술은 단순한 미적 즐거움이나 개인적 풍요로움만이 아니라 창의성이나 사고력을 함양하는 중요한 자본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같이 누리는 힘은 사회적 소통과 연대를 만들어내어 우리 사회의 기초를 튼튼하게 만들고 풍요롭게 하는 자산이 된다. 당연히 예술을 즐기고, 공유하며, 거기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가 되어야 한다.

유엔의 ‘세계인권선언’ 제27조는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적 삶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와 예술을 즐기며 과학적 진보의 혜택을 공유할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사회권 규약’ 또는 ‘A 규약’이라고 불리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제15조에서도 ‘모든 사람은 문화적 삶에 참여할 권리, 과학과 기술 발전의 혜택을 누릴 권리, 자신의 문화적·창조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모든 개인이 예술을 즐기고 창작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우리는 지금껏 예술을 누릴 권리만 강조한 것 같다. 이제는 예술의 창작에 직접 참여할 권리를 말할 때가 되었다. 배우고 싶다면 누구나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예술교육이 더 이상 부모의 경제력이나 지역에 따라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권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술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있는 누구나 배울 수 있어야 한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국의 클래식 음악교육은 개인의 성장 환경에 따라 기회나 질적 수준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무엇보다도 높은 교육비와 악기 구입비 때문일 것이다. 지금 부산이 준비하고 있는 오페라하우스는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오페라하우스 설립이 단순한 건물 짓기만 되어서는 안 된다. 오페라와 관련된 다양한 공연예술 교육을 누구나 쉽게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예술이라는 추상적이고 ‘불안정한’ 직업을 선택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모든 기초학문이 그렇듯이 기초예술도 아주 큰 명성을 얻기 전에는 부를 얻지 못한다. 그러나 기초학문 위에서 응용학문이 발달하듯이, 기초예술이라는 바탕에서 소위 ‘돈이 되는’ 일자리가 생기는 법이다. 국가가 기초학문을 지원하는 것처럼 기초예술도 지원해야 한다. 이런 지원에는 기초예술을 배우기 위한 시스템과 그 예술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는 미래 대책까지 포함해야 한다. 오페라하우스가 제작극장이 되어야 하는 올바른 이유다.

오페라하우스가 장소 임대업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제작극장이 된다면 이런 것을 한꺼번에 해낼 수 있다. 공공극장의 본연은 단순히 공연을 위한 공간만이 아니라 예술 창작과 관련된 여러 직업군이 함께 일하는 복합 공간이기 때문이다. 예술극장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수익을 창출하는 공간이 될 수 없다. 세계 각지에 있는 어느 오페라하우스도 정부나 민간 지원 없이 유지되는 곳은 없다. 공공극장은 예술가의 일터이자 기초예술 교육의 터전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경쟁력을 가진 문화도시로 가는 첩경이다. 우리나라 삼성이 오랫동안 지원했던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미국 마스터카드나 영국 데톨이 메이저 스폰서가 되는 이유도 그 장소가 일자리이자 교육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제작과 교육이 함께 있는 예술 환경을 부산이 먼저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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