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정상회의를 빛낸 도자 예술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장
한중일 회담 때 세 나라 작품들 전시
오랜 전통 속 같은 듯 다른 미의식 뚜렷
예술을 통한 공감의 문화 교류 뜻깊어
지난달 26일과 27일 양일간 우리나라에서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일정이 진행되었다. 이는 2019년 12월 중국 청두에서 개최된 이래 근 5년 만에,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 11월 개최된 이래 거의 9년 만에 열린 3국 간 정상회의였다. 정상회의 전날인 26일 저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공식 만찬 부대행사로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의 동아시아 문화도시 도자교류전 ‘금바다(金海), 아시아를 두드리다’가 순회 전시로 초청되었다. 한국 중국 일본 각 3명씩 총 9명 도예가의 작품들이 3국 정상들이 착석한 주빈 연단 앞에 전시되었다.
전시 작품들은 한중일 문화교류 행사인 ‘동아시아 문화도시’에 2024년 김해시가 선정됨에 따라 작년과 올해 두 달씩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세라믹창작센터에서 한중일 도예가들이 함께 모여 자국의 도예 역사·문화·기술·재료 등에 관한 교류와 토론 등을 통해 서로 영감을 나누며 작업한 결과물이다. 한국 작가의 작품 속에 중국의 재료가 사용되고, 일본 작가의 작품 속에 한국적인 기법이 혼용되며, 중국 작가의 작품에 일본의 모티프가 담기기도 했다. 2년에 걸친 워크숍과 전시에 참여한 3국 작가들은 총 14명으로,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되었거나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에 가입된 도시의 출신이다. 세 나라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동아시아 미의식은 ‘평온’ ‘조화’ ‘동(動)과 정(靜)’이라는 세 주제로 나뉘어 전시장에 펼쳐졌다.
한중일 세 나라는 모두 도자 전통의 오랜 역사를 이어 왔다. 중국은 한나라 회도(灰陶)로부터 치자면 2000년, 4세기 월주요(越州窯) 초기 청자부터는 1600년이 된다. 우리나라도 원삼국시대 도기부터 헤아리면 2000년, 고려청자로부터는 1000년의 도자기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17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자기를 생산하면서 동양도자사에 합류했지만, 그 이전 조몬 토기 문화가 있었고 가야 도기를 이어받은 스에키 토기부터 말하자면 1500년 도기의 역사가 있다.
세 나라는 음양오행, 노장 사상, 유가와 불교 등으로부터 비롯된 공통의 철학으로부터 각국 특유의 미의식을 가꾸어 왔다. 일제강점기 국내에서 우리 미술사와 미학을 본격적으로 연구·저술하여 우리 미술을 최초로 학문의 위치에 올려놓은 한국 미술사학의 선구자인 고유섭(1905~1944)은 한국미의 특질을 간소미와 소박미, 다시 말해 자연성, 자연스러움의 미학이라고 보았다.
한국 민속예술의 우수성을 상찬하고 조선 도자기를 수집했으며, 1924년 경복궁 내 조선민족미술관을 설립했던 일본의 민예·공예 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는 한중일 동양 3국 도자기의 민족적 특징을 선·색·형태라는 조형의 3요소로 설명했다. 중국은 형태미가 강하고, 일본은 색채가 밝으며, 한국은 선이 아름답다. 중국 도자기의 형태미는 완벽함을 보여주고, 일본 도자기의 색채미는 깔끔함을 추구하며, 한국 도자기의 선은 부드러운 곡선미를 자랑한다.
세 나라의 미의식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했지만, 그 근저에는 지속적이고 공통적인 흐름과 방향이 존재한다. 이번 전시는 그 흐름을 ‘도(道)’와 ‘심경(心境)’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설명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모든 삶과 행위는 대자연에 귀속되므로, 항상 자연에 순종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태도를 중시한다. 또 예술 창작은 마음의 문제로, 동양의 미의식은 심경 즉 정신의 예술과 관련된다. 따라서 동양의 미적 사상은 물질과 기술 만능의 가치관이 초래한 인간성 파괴와 상실, 경제개발에서 파생된 자연 훼손에 직면하여 인간의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이번 워크숍과 전시는 세 나라가 오랫동안 함께 발전시켜 온 도자 예술을 매개로 동양의 예술철학과 미의식을 탐색하는 의미 있는 행사였다. 또한 그 작품들이 한중일 정상들이 함께 모여 다시 우호와 협력을 모색하는 정상회의의 공식 만찬장에 초청되는 영광과 행운을 얻었다. 정치구조와 경제체제에 있어서는 크게 다른 세 나라지만, 도자 예술만큼은 3국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문화라는 점에서 예술 작품들은 그 자리를 더욱 친근하고 뜻깊은 순간으로 승화시켰을 것이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은 개관 이래 해외 유수의 도자 관련 기관·대학·미술관·레지던시 등과 협력하며 지속적으로 국제교류 워크숍과 전시를 추진해 왔다. 특히 동아시아 기관들과는 더욱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정례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고 있는데, 이번 정상회담 순회 전시는 그간의 오랜 국제 협력의 성과가 빛을 발하는 감동적인 행사였다. 만찬장에서 다시 미술관으로 돌아와 11월 3일까지 계속되는 동아시아 도자교류전에서 한중일 공통의 아름다움을 만나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