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대왕고래’와 후루꾸
‘산유국의 꿈’ 영일만 프로젝트
요행 바라고 밀어붙여선 안 돼
■“고래 잡으러 가자!”
나라가 들썩인다. 많은 이들이 꿈꾸지 않았던 ‘산유국의 꿈’. 그러나 국정 최고 수장이 그 꿈이 가능하다고 호언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포항 영일만 프로젝트’, 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이하 ‘대왕고래’)를 국민 앞에 전격 공개했다. 동해 영일만 일대에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엄청난 양의 석유와 가스를 뽑아내려는 계획. 윤 대통령은 이날 ‘140억 배럴’을 강조하며 “심해 광구로는 금세기 최대 석유개발 사업으로 평가받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보다 더 많은 탐사자원량”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의 호언에 경북 포항 일대는 이미 ‘한국의 두바이’라도 된 양 호들갑이다. 고래 잡으러 동해로 가자는 대통령의 리더십,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내던져지는 테마주
석유나 가스와 관련된 이른바 테마주에선 분명 대박이 나야 했다. 자원빈국 한국에서도 석유와 가스가 펑펑 쏟아진다 했으니 분명 그래야 했다. 윤 대통령이 ‘대왕고래’를 공개한 직후 석유·가스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폭등하는 등 증시가 잠시 들썩이긴 했다. 그러나 그런 흥분 상태는 며칠 가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큰일 낼 것 같던 석유·가스 테마주들은 ‘대왕고래’ 발표 다음 날부터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그러더니, 동해 유전에 대해 “유망성이 높다”는 미국 액트지오사(社)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의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7일 일제히 급락하며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하는 양상을 보였다. 증시 전문가들은 외국인 순매도 물량이 쏟아진 탓으로 분석했다. 분명 대박의 조건이었는데도 외국계 자본은 관련 테마주를 대거 팔았던 것이다. 돈에 약삭빠른 그들이 왜 그랬을까.
■외신은 왜 안 다룰까
윤 대통령 발표대로라면 ‘대왕고래’는 가이아나 광구를 뛰어넘는 금세기 최대 석유개발 사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 석유시장에 그야말로 해일 같은 파장을 몰고 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외국의 내로라할 언론, 즉 외신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눈에 불을 켜고 한국, 특히 영일만의 동해를 들쑤실 것이다. 그런데, 조용하다. ‘대왕고래’에 대한 기사를 찾기 어렵다. 미국의 경제전문 방송 CNBC가 윤 대통령의 '대왕고래' 발표 소식을 전하기는 했다. 하지만 CNBC는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논평을 냈다. 이처럼 대다수 외신들은 ‘대왕고래’를 평가절하하거나 아예 외면했다. 미국의 신용평가사 S&P의 평가를 보면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S&P는 정유업계 전문가들을 인용한 보고서를 통해 “다른 국가들이 ‘대왕고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면서 “실현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의혹 키우는 정부 해명
‘대왕고래’와 관련해 일각에서 제기하는 의혹의 핵심은 ‘정부와 한국석유공사가 하필 액트지오를 파트너로 선택했느냐’다. 당초 파트너는 호주 최대 석유개발회사 우드사이드였다. 우드사이드는 2007년부터 영일만 일대를 탐사하다 지난해 1월 철수했다. 알려진 바로는, 우드사이드는 해당 지역의 사업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정부는 “우드사이드의 철수는 자체 사업 재조정 때문이지 사업성 여부와는 관련 없다”며 부인했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영일만에서 십수 년 동안 석유와 가스를 찾던 우드사이드가 무려 140억 배럴 매장 가능성을 팽개치고 다른 사업장으로 떠난 것인데,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우드사이드의 석유 탐사·개발 역량이 부족했던 걸까. 우드사이드가 지난 11일 세네갈에서 하루 10만 배럴의 원유 생산에 성공했음을 고려하면 그 또한 성립하지 않는 가설이다.
여하튼 우드사이드 대신 파트너가 된 액트지오는, 설립된 지 겨우 8년에 연매출이 4000만 원도 안 되는, 사실상 1인 기업으로 드러났다. 자격 논란에 대해 정부는 이런저런 해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석유개발에 성공한 경험이 많고 직원도 5000여 명이나 되는 우드사이드가 떠난 빈자리에, 지구상에 지오사이드쯤 되는 석유개발 기업이 없지도 않을 텐데, 시쳇말로 듣보잡인 액트지오 같은 1인 기업을 굳이 앉혀야 했던 이유를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정부와 한국석유공사는 “안보” 운운하며 실체 공개를 거부한다. 의구심만 더 키우는 꼴이다. 이런 형편이니 ‘대왕고래’에 높은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국민이 10명 중 3명도 안 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요행 바라는 국정?
“석유·가스 탐사의 성공률 20%는 굉장히 양호하고 높은 수준의 가능성이다. 오해하지는 마시라. 이는 80%의 실패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대왕고래’ 성공률로 ‘20%’의 수치가 제시된 것과 관련해 아브레우 액트지오 고문이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석유나 가스 개발 사업에서 20% 성공률이 상당히 높은 가능성으로 인정되는 게 사실일 수도 있다. 개인사업이라면 이 정도 가능성에 ‘올인’ 하더라도 크게 상관할 바는 아니다. 이른바 ‘잭팟’을 터뜨리든 쫄딱 망하든 그건 개인의 사정이니까. 그러나 ‘대왕고래’는 국민 혈세가 천문학적으로 투입되는 국가사업이다. 잘못되면 나라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그래서 약간의 실수도 용납해선 안 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큰 위험을 감수해야 큰 수익을 얻는다)은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가 외칠 말은 아니다.
당구 등에서 실수를 했는데도 이상하게 좋은 결과가 나올 때 쓰는 속어가 후루꾸다. 영어 플루크(fluke)의 일본식 발음이다. 플루크의 여러 뜻 가운데 하나가 ‘요행’이다. 그런데 플루크는 고래 꼬리를 지칭하기도 한다. 어부들이 망망대해를 떠돌다 ‘돈 되는’ 고래의 꼬리를 우연히 발견한다면 그 얼마나 반가울까. 플루크, 즉 후루꾸의 유래일 수도 있겠다. 여하튼, 후루꾸가 나왔을 때는 조롱을, 후루꾸를 기대할 땐 비웃음을 사기 마련이다. ‘대왕고래’에 후루꾸를 바라서는 안 될 것이다. 요행을 바라는 국정만큼 위태로운 건 없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