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영의 법의 창] 국회의원의 선서는 지켜야 하는 의무다
조소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적 책무 구체화한 실체적 내용
국민 없는 정쟁에 매몰될 게 아니라
민생 챙기는 게 선서에 답하는 일
5월 30일로 22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됐다. 국회법상 22대 국회는 6월 5일 첫 회의를 개최해야 했고, 의장·부의장을 선출하고 개원식도 해야 했다. 그런데 현재까지도 개원식을 못 했고, ‘곧’ 할 것 같지도 않다.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21대 국회도 여야 간 원 구성 협상 지연으로 임기 시작 48일 만에 겨우 개원식을 거행해 역대 최장 ‘지각’ 기록을 세웠다. 이번에도 여야가 원 구성을 두고 협상 없는 협상을 하는 상황인지라 기록 경신을 걱정해야 할 듯하다.
새 국회 구성 후 개원식에서 국회의원은 국민에 대한 선서를 해 왔다. 국회법 제24조,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는 내용으로. 선서란 사전적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표하는 행위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일정한 직업군에 속한 사람의 선서는 국민을 향한 약속이자 다짐의 표시로 받아들여진다. 대통령, 공무원, 국회의원, 지자체장, 군인 등의 선서가 그것이다. 그들은 법이 정한 대로 취임 시에 오른손 서약이건 서명에 의하건 간에 직무 수행에 관한 스스로의 의무를 확인하고 약속하는 선서를 해 왔다.
국회의원의 이 엄숙한 선서는 4년 동안 의원이 지켜야 하는 국민에 대한 다짐이자 약속이다. 그렇지만 스물한 번의 국회를 지나오면서, 국회의원 선서는 선언적·상징적인 것에 불과한 쓸모없는 절차라는 평가가 더 많았다. 국민들도 그렇게 느껴 왔다.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취임 선서는 대통령의 헌법적 책무를 구체화하고 강조한 실체적 내용을 지닌 것이고, 법치국가 원리가 대통령 직무 집행과 관련해 구체화한 헌법적 표현이라고 했다. 국회의원 선서라고 다를까?
국회의원의 취임 선서는 1960년 국회법에 처음 규정되었다. 국헌 준수, 국민 복리 증진, 성실한 직무 수행이 선서 내용의 출발이었다. 이후 1963년 법에서 국민의 자유 증진, 1973년 법에서 국력 배양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직무 수행, 1981년 법에서 헌법 준수·국가 이익 최우선·양심에 따른 직무 수행을 추가하는 개정을 거쳐 현재의 내용이 됐다.
헌법 제46조는 국회의원에게 청렴 의무와 국익 우선 의무, 양심에 따른 직무 수행을 책무로 부과하고 있고, 헌법 준수는 국회의원의 당연한 의무다. 따라서 국회법상 국회의원의 취임 선서 내용은 국회의원의 헌법적 책무를 구체화하고 강조한 실체적 내용이라 할 것이다. 그러니 이 선서를 선언적·상징적인 행위에 그치는 것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국회는 국민 대표기관이자 입법기관으로 국회 운영에 관해 폭넓은 자율권을 갖는다. 그래서 국회 의사 절차나 입법 절차에 헌법이나 법률을 명백히 위반한 흠이 있지 않는 한, 그 자율권은 권력분립 원칙이나 국회 위상과 기능에 비추어 존중돼 왔다. 그러나 국회도 헌법에 구속되는 기관이다. 국회는 헌법 수호와 실현을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국회여야 하는지 여기에 답이 있다.
4·10 총선을 통한 국민의 국회 구도 결정은 여야 모두에게 이러라는 뜻이 아니었다. 어려운 경제 상황과 세상의 빠른 변화로 지치고 힘겨운 국민을 위해 22대 국회의원들은 선서대로 실행해야만 한다. 그게 국회의원의 헌법적 책무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위한, 국익을 우선한, 국회의원의 직무적 양심에 따른’ 의원 업무 수행 말이다!
국민 체감도가 없었던, 그들만의 정쟁으로 끝났던 21대 국회의 모습을 반복할 것인가. 정당을 비롯한 그 누구도 국민에 우선될 수 없다. 원 구성이나 특검법 등 국민 없는 싸움에 힘쓰지 말고 민생 법안 처리에 주목해야 한다. 고준위방폐물저장시설 특별법, 인공지능(AI) 기본법, 외국인아동출생등록법, 체액(정액)테러 처벌법, K-칩스법, 판사 증원을 위한 법관정원법 등 국민 안전 및 기업 경쟁력 강화와 직결된 민생 법안의 신속한 처리는 국민을 위해 시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2016년부터 국회의원 선서문은 순한글문이다. 고 노회찬 의원의 ‘선서문 전면 한글화’ 요청의 결과였다. 당시 노 의원의 “국회의원 선서문이 이제 한글로 바뀌었기 때문에 내용을 몰라 (선서를) 못 지켰다는 변명은 통할 수 없다”던 소감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또 22대 국회의 의원들은 국회의원의 책임감과 사명 의식을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 답은 정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