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추적] 묻힐 뻔한 '30대女 변사 사건' 해결, 하늘이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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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부산의 한 도로 옆 풀숲에서 숨진 채 발견된 30대 여인(본보 20일자 8면 보도)을 살해한 범인이 경찰수사 일주일 만에 검거됐다. 자칫 완전 범죄가 될 뻔했던 사건은 몇 차례 '천우신조'라 할 만한 결정적 계기 덕분에 해결의 실마리가 풀렸다.

부산 금정경찰서는 자신의 차량 안에서 김 모(31·여) 씨를 마구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살인 등)로 이 모(48) 씨를 구속했다고 26일 밝혔다.

도로변 시신 유기 열흘째
경찰 갓길 주차 중 우연히 발견
다행히 지문 남아있어 신원 확인

CCTV 뒤져 용의차량 찾았지만
차량번호 희미해 미궁 빠질 뻔
'흔치 않은 차종' 탓 범인 검거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 8일 오전 2시 47분께 부산 해운대구 한 오피스텔 앞에서 김 씨를 자신의 차량에 태운 뒤 한 고가도로 아래에서 차를 세우고 성관계를 시도하다 김 씨가 반항하자 얼굴 등을 폭행해 살해했다.

이후 이 씨는 오전 3시 30분께 자동차전용도로인 정관산업로 갓길에 차를 대고 김 씨 시신을 가드레일 너머 풀 숲에 유기했다.

완전 범죄를 꿈꿨던 이 씨의 바람과 달리 김 씨 시신은 열흘 만에 경찰에 발견됐다. 18일 오후 1시 20분께 비번 날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부산 남부경찰서 소속 이동궁(51) 경위가 갑자기 쏟아진 졸음을 피하기 위해 갓길에 차를 댔다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이 경위는 "평소 변사 사건을 많이 처리하다보니 시신 냄새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시신은 습하고 더운 날씨 탓에 부패 정도가 심했다. 하지만 왼손 지문 일부가 다행히 남아 있어 당일 저녁 김 씨 신원이 확인됐다.

경찰은 타살에 무게를 두고 수사전담팀을 꾸렸지만, 국과수 부검 결과 뚜렷한 사망 원인과 시점이 나오지 않아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시신이 발견된 주변 도로에 CCTV가 없는 데다 김 씨가 얼마 전 휴대전화를 분실한 것으로 확인돼 통신 수사도 난항에 부딪혔다. 경찰은 주변 인물을 중심으로 김 씨의 마지막 행적을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했다.

평소 김 씨가 자주 다니던 해운대해수욕장 일대 CCTV 수백 개를 샅샅이 뒤진 끝에, 김 씨가 이 씨의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장면을 찾아냈다. 야간이라 차량번호 식별이 어려웠지만, 흔치 않은 차종인 게 이 씨 차량 특정에 도움이 됐다. 경찰은 이 씨 차량을 추적해 24일 오후 7시 20분께 경북 포항시 한 해변가에서 이 씨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씨는 범행 당일 담배를 사러 나왔다 길을 가던 김 씨에게 "술 한 잔 하자"며 접근, 자신의 차량에 태운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는 10여 분 뒤 이 씨가 마구 휘두른 주먹에 갈비뼈와 목뿔뼈 등이 부러져 숨을 거뒀다.

특히 김 씨는 어린 시절 양부모에 입양되는 등 순탄치 않은 성장기와 젊은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주변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금정경찰서 관계자는 "시신 발견이 며칠만 늦었더라면 사건 해결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며 "30여 년간 기구한 삶을 살았을 김 씨의 원혼을 달래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고 말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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