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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우리만의 애순이를 떠올리며
나의 친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치매를 앓기 시작하셨다. 원래도 친구가 별로 없으셨는데, 할아버지가 떠난 이후에는 더 외로우셨을 것이다. 나는 그 외로움이 치매를 부른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하곤 했다. 물론 할머니가 이 생각을 알게 되면 못마땅해하시며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점점 더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듯한 할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며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돌봄 시설에 계신 할머니를 조금씩 잊어가던 나였지만, 어느 날 할머니 생각이 유난히 간절하게 났다. 이유는 다름 아니라 최근 전 국민을 울리고 있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때문이었다.
주변에 안 본 사람을 찾기 힘들 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에서 태어난 애순이와 팔불출 관식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계절의 흐름 속에 담아낸 16부작 드라마다.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사랑’이다. 인물들은 숱한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결국 사랑만큼은 놓지 않고, 어떻게든 그것 하나만은 붙잡는다.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린 이유는, 우리 역시 이 사랑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에서 포기하고 싶은 수많은 순간 속에서, 누군가의 보살피는 손길 덕분에 우리가 여기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할머니는 같이 놀 친구도 없어?”하고 묻던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은 극 중 애순의 딸 금명이와 닮았다. 나는 요즘도 종종 부모님께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엄마 아빠는 취미 없어?” “수다 떨거나 맛집 갈 친구 없어?” 진짜 몰라서 묻는 건 아니다. 나는 그들이 친구 없이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무게와 세월이 무엇인지, 이제는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 있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매번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지내는 내 모습이 괜히 미안해져서, 자꾸 그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엄마 아빠의 희생과 그 길 위에 쌓인 삶의 무게를 알아 갈수록 더욱 그렇다. 그리고 나는 부모님이 지금이라도 친구를 사귀었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든다. 더 이상 자식을 위해 고생하지 않고 조금은 즐기면서 인생을 사셨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애순이의 이야기는 사실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아주 흔하다. 대한민국에서 부모의 사랑은 대개 자기희생을 전제로 한다. 그렇게 이루지 못한 부모의 꿈은 자연스레 자식에게로 향하고, 자식은 그런 부모와 부딪히며 성장한다. 드라마는 이 복잡한 관계를 아름다운 휴먼 스토리로 풀어냈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사회의 여러 폐단이 발생하기도 한다. 부모의 과한 욕심과 왜곡된 애정이 자녀를 옭아매는 이야기를 조금 더하면, 드라마는 미스터리나 스릴러로 장르가 바뀔 수도 있다. 어쩌면 더 현실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극 중에서 부모의 사랑을 ‘짝사랑’이라고 표현한 대목이 인상 깊었다. 실제로 2023년도 한국리서치의 가족 인식 조사에 따르면, 자녀가 있는 응답자 중 자녀와의 관계에 만족하는 비율은 65%로 높은 반면, 자신과 부모의 관계에 만족한다고 답한 사람은 53%에 그쳤다. 만족도가 곧 애정의 크기를 의미하진 않겠지만, 자식을 향한 부모의 일방적인 애정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다른 금명이인 우리들은 부모의 자기희생에 죄책감과 부채감을 느낀다. 하지만 또 누군가의 부모가 되면서 애순과 관식처럼 묵묵히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된다. 드라마에서도 금명이가 애순과 관식을 이해하게 되는 장면이 중요한 갈등 해소의 순간으로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조사에서 흥미로웠던 또 하나의 결과는, 기혼자일수록 부모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는 점이다. 부모가 되어보니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폭싹 속았수다’는 시청자들의 눈물과 웃음을 이끌어내며, 부모의 자기희생이라는 양날의 검을 솔직하게 비춘 드라마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부모의 잘못된 사랑까지 미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의 부재가 만연한 시대, 우리 존재의 시작은 결국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이야기가 탄생한 것에 대해 고마움이 먼저 든다.
나만의 애순이인 할머니를 떠올린다. 괴로웠던 삶의 기억을 조금씩 지우면서 가장 순수하고 즐거웠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나의 할머니. 가족을 위해 평생을 바치다 기억을 잃은 그녀를 생각하면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 사랑의 결실이 모이고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부모님에게도 같은 마음이다. 그것이 지금껏 사랑을 주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드리는 나만의 조용한 보답이기를 바란다.
2025-04-1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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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산불과 안동… 부산의 '상생' 마케팅
지난해 12월부터 대한민국은 급격한 혼란에 빠졌다. 온 나라가 두 동강이 난 느낌이랄까? 갑작스러운 계엄과 곧이어 이어진 대통령 탄핵, 양극화한 지지자들의 아우성으로 온 나라가 들썩거렸다. 하늘이 노하셨는지 대한민국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였던 경상북도 안동에 화마가 덮치며 그 아우성을 잠재워 버렸다.
지난달까지 관광 데이터들을 살펴보면 코로나19의 여파를 거의 모두 극복하고 예년 대비 40~50%를 뛰어넘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다. 경기 침체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국내 관광시장만큼은 인바운드 외국인들의 증가 추세가 지속되면서 그래도 봄날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고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불확실한 이 상태에서 외국인 방문객으로 유지되고 있는 관광 봄날이 계속될 수 있을는지는 미지수다. 두 달 후에도 혼란이 수습되지 않는다면 관광산업 역시 외국인들의 방문이 줄어들며 적신호가 켜질지도 모르겠다.
화마가 할퀸 안동의 처참한 현실
국내 관광산업 위기와 닮은 모습
그래도 재건 희망의 싹은 피어나
경상권 친구 도시인 부산 역할론
웰니스 관광 확장해 도움 나서야
신체·정신 치유 프로그램 만들길
지난주 역대급 산불 피해 현장의 하나인 안동을 방문하면서도 직업병처럼 국내 관광산업과 안동에 대한 걱정이 이어졌다. 코로나19의 폭풍을 견디고 일어선 관광산업이 계엄과 탄핵의 생채기 속에서 위기를 맞았듯이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유산이 즐비한 안동도 화마의 생채기로 위기를 맞는 건 아닐까.
필자는 몇 년 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했던 하회마을과 퇴계 이황 선생이 후학을 양성했던 도산서원, 도산서원과 함께 유네스코에 등재된 병산서원 등이 유명한 관광명소로 안동을 기억하고 있다. 지난달에 이 서원들을 좀 자세히 볼 기회가 있어서 기억이 생생한데 화마가 할퀴고 간 이후에 다시 안동을 방문해야 할 일이 생겼다. 지난달 함께 도산서원을 거닐었던 수녀님과 여름이 오기 전에 두봉 주교님을 만나 뵈러 가자는 무언의 약속을 남긴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만 주교님께서 뇌경색으로 돌아가신 것이었다.
두봉 주교님의 장례식장 방문을 위해 찾은 안동의 화재피해 실상은 뉴스에서만 보던 것보다 처참했다. 군위를 지나면서부터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았다. 보통의 4월이면 연둣빛이 초록초록하게 빛나야 할 산들은 온통 검은색과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나무들도 잎새 색깔까지 초록이 지쳐버린 빛깔이 역력한 채 기둥도 검게 그을음으로 감싸져 있는 암울한 풍경이 남안동 톨게이트를 들어설 때까지 계속됐다. 요금소를 빠져나가자 여기저기 불타버린 건물, 아예 전소돼 폭삭 내려앉은 건물들이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했다. 창문을 여니 과민한 반응일지 모르나 아직도 탄내가 나는 것 같았다.
96세라는 노령의 나이에도 의성에서 농사일을 하시며 건강하게 신자들을 돌보셨던 두봉 주교님도 이 화마로 인한 충격 때문에 뇌경색이 와서 돌아가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두봉 주교님은 71년간 한국을 위해 일하셨는데 1969년부터는 초대 안동교구장으로서 안동교구의 농민들과 함께 남은 평생을 보내셨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외지인인 필자가 보기에도 이 참담한 현장을, 그 불타오르던 장면을 직접 목격하셨을 르네 뒤퐁 주교님. 두봉이라는 한국인 이름을 더 사랑하셨던 두봉 주교님 마음은 어떠셨을까? 이미 잔재만 남아있는 흔적만으로도 화재 당시 정말 생지옥이었을 것 같은 장면이 자동으로 상상될 만큼이었으니 안동을 누구보다 사랑하셨던 주교님의 마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리라 짐작됐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불현듯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건이 기억났다. 폭발 사건 이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후쿠시마의 너무나 달라졌던 풍경은 지금 안동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했다. 그런 절망 속에서도 후쿠시마에서는 블랙 투어리즘을 기반으로 도시 재건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었다. 국내 대표적 보물을 간직한 도시 안동. 가덕 신공항이 들어서게 되면 부산, 경주, 안동으로 이어지는 경상권 관광의 보고가 될 안동도 화마의 아픈 기억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것이라 확신한다. 두봉 주교님의 장례식장에서 끊이지 않았던 방문객들의 발길을 보며 주교님은 끝까지 안동을 위해 선물을 남기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에서 아름다운 안동 재건이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부산도 경상권 친구 도시로 안동 재건을 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웰니스 관광을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부산은 그 의미를 새롭게 다듬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회 가치를 실현하는 마케팅, 공존을 위한 상생 가치를 위한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안동을 도와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고민 좀 해보면 좋을 듯하다. 신체적 치유와 함께 정신적인 치유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 만들기를 제안해 본다.
2025-04-1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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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새로운 남성성을 찾아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클라우디아 골든 교수는 최근 ‘아기와 거시경제’라는 주제의 연구에서 남성이 가사노동에 덜 참여하는 국가에서 합계출산율이 낮다고 지적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을 지목하며 그는 “한국은 부부 평등 측면에서 과거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부부의 성역할에 대한 인식의 충돌이 출산율의 급격한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골딘 교수는 한국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 사회인지를 예상하지는 못한 듯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휴직 사용자 중 남성이 4만1829명으로 최초로 30%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2015년 남성 육아휴직자 수가 5.6%임을 감안하면 10년 사이에 9배나 증가한 것이다. 여전히 한국 여성은 남성보다 매일 3시간 더 많이 가사노동을 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지만 이 수치는 조만간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을 것이다.
그저 희망회로를 돌리는 것만은 아니다. 2024년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요즘 남편 없던 아빠’가 선정될 정도로 한국의 많은 남성들이 기존의 남성성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통념을 탈피해서 육아나 살림에 적극적인 주체가 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유튜브에서는 대세 이수지와 더불어 ‘아조씨’ 추성훈의 유튜브가 화제였다. ‘강한 남자’의 전형처럼 보이는 추성훈이 아내의 집에 셋방살이 하는 서열 꼴찌라는 반전(?)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크게 호응했다. 조금 맥락은 다르지만 가히 최고의 화제작이라 할 수 있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아내와 자식에게 한없이 헌신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 양관식 캐릭터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열광하는 이유도 단지 박보검이 젊은 시절 역할을 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는 인식의 충돌이다. 어쩌면 우리의 통념보다도 더 빠르게 현실이 변하고 있음에도, 남성성을 둘러싼 통념과 갈등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성착취나 성범죄 가해자를 둘러싼 문제가 범죄와 폭력에 대한 문제와 해결 모색으로 끝나지 않고 소위 ‘성별 갈등’의 문제로 번지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성범죄 피해가 모든 여성이 겪을 수 있는 피해라는 점을 강조한다고 해서, 가해자가 모든 남성을 대변하지 않는다.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남성성을 비판한다고 해서 그것이 남성성의 유일한 대안이 아님은 더더욱 명백하다. 그럼에도 성범죄 사건에 대한 문제 제기와 비판이 성별 갈등으로 이어지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선 이것은 갈등을 자양분 삼아 권력을 키우고자 한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선보였던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 공약이나 일부 정치인들의 성별 갈라치기 전략은 모두 갈등을 더욱 더 뾰족하게 만들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었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지역 사회의 유력 정치인에 의해 저질러진 성폭력 사건과 가해자의 죽음 앞에서 정치권이 보여준 기이한 침묵도 비상식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러한 권력형 성폭력 범죄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 점에서 반복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시민의 상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진짜 사나이’라는 비영리 단체의 운영자 잭슨 카츠는 미국에서 영향력이 큰 폭력 예방 멘토링 프로그램을 공동 설립한 교육자다. 스포츠계와 군대에서 시행하고 있는 성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그는 성폭력은 힘과 통제, 권력 남용과 관련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성폭력은 여성과 그들을 돕는 몇몇 선한 남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가장 우선적으로 남자들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러한 폭력에 침묵하지 않고 권력 남용에 단호한 대처를 하는 것이 진짜 추구해야 할 남성성이라는 것이다.
지난 4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소추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선고를 들으면서, 비로소 상식이 제자리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억지 논리와 억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시민들은 100일이 넘게 불안과 혼란의 날들을 보냈다. 그러나 그 동안의 극단적인 대립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일상을 회복해가는 시민들을 보면서 우리에게 상식이라는 공통감각이 있었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앞으로도 우리 시민은 변화하는 세상을 상식의 수준에서 받아들이고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고정관념과 편견보다 세상이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최소한 우리의 상식 수준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통념과 규범이 변화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미 수많은 지표들이 변화를 증명하고 있는 가운데, 낡은 인식과 통념 속에 갇혀 ‘젠더 갈등’이라는 허상을 좇지 말자. ‘폭싹 속았수다’의 캐릭터에 빗대어 말하자면, 현실에 양관식이 없다고 부상길이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2025-04-0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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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룡 칼럼] 나가사키에서 부산을 생각하다
지난달 중순, 일본 나가사키 대학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해양성 기후 탓에 자주 흐리고 비바람이 쳤다. 나가사키 출신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그의 첫 장편으로 〈창백한 언덕 풍경〉을 썼다. 전후 나가사키의 침울한 삶이 잿빛의 도시 풍경과 더불어 서술됐다. 여섯 살까지 지낸 유년의 기억이 그를 사로잡은 듯하다. 하지만 전후의 폐허를 넘어 빠르게 성장했기에 소설 속의 나가사키는 내게 그저 날씨로만 감각될 뿐이었다. 원폭이 투하된 우라카미 평화공원을 둘러보며 의사로서 부상자를 치료하다 생을 마감한 나가이 다카시가 혼신으로 쓴 수기인 〈나가사키의 종〉을 떠올리기도 했다. 앙상한 뼈대 하나로 그 흔적을 남긴 교회는 언덕 위에 다시 세워졌고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던 종은 평화공원의 종탑에 매달려 구원의 소리를 울릴 듯했는데 도시는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거대한 야영장’이라는 이탈리아 건축가 알도 로시의 말이 실감으로 다가왔다.
복잡계 과학자인 제프리 웨스트는 사물의 체계적인 규모 변화 법칙의 특성과 기원을 그의 책 〈스케일〉을 통해 설명했으며 생물과 기업은 대부분 죽거나 사라지지만 도시는 이와 다른 법칙에 의해 지속한다고 밝혔다. 그는 생물과 기업이 탄생과 소멸의 주기를 지닌다면 도시는 소멸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도시가 범죄, 오염, 가난, 질병, 에너지와 자원의 소비 등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지만 지구 도시화는 이러한 도시문제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방향이라는 의미이다. 그는 “인류의 미래와 지구의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은 우리 도시의 운명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얽혀 있다”라고 주장한다. 확실히 그의 주장처럼 재앙이나 최후의 심판과 같은 형국이 아니고서 도시가 완전하게 사라질 공산은 크지 않아 보인다. 제프리 웨스트가 불멸하는 도시의 예를 든 게 나가사키이다. 원폭 투하로 도시 전반이 마비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다시 번창하는 데 걸린 시간은 30년에 불과할 정도로 도시는 회복력을 지닌다. 물론 지금의 위상이 원폭 투하 이전만 하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말이다.
하시마 혹은 군칸지마(군함도)로 불리는 나가사키 해역의 섬에 강제노역으로 끌려온 조선인이나 원폭 피해를 입은 조선인에 관해 조사·연구하는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 있다는 사실에 어떤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나의 또 다른 관심은 네덜란드 상관(商館)이 있었던 데지마를 향했다. 이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있던 바타비아(지금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나가사키 데지마를 잇는 무역 루트를 상기하는데 일본과 쓰시마, 그리고 초량 왜관을 연계하는 우리의 무역 경로와 연관이 있다. 그 시기도 17세기 초반에서 19세기 중반으로 공통된다. 물론 두 루트 사이에서 진행된 상호 교섭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활동을 비교해 볼만한 평행의 지점이 적지 않다. 상관의 위치, 통역관의 지위, 무역의 형태, 분쟁과 사고, 의식주 등의 생활 문화에서 그렇다. 특히 쓰시마와 초량 왜관의 관계는 250년이 넘게 긴밀했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통신사의 사행 기록에서 볼 수 있고 초량왜관의 일본 측 관수가 기록한 〈관수 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쓰시마를 통해 조선으로 유입된 물품이 주로 일본과 동남아에서 생산되는 은, 납, 구리, 유석, 단목, 후추, 설탕 등이라면 초량 왜관을 경유해 쓰시마와 일본으로 간 조선의 상품은 쌀, 견직물, 인삼 등이다. 왜관을 연구한 다시로 가즈이는 중국 베이징에서 한성과 왜관을 거쳐 에도(도쿄)에 이르는 실크로드와 그 역방향의 실버로드가 있었다고 고증하기도 한다. 네덜란드가 쇠퇴하고 프랑스가 성장하며 영국이 패권을 갖는 시기인 19세기에 이르면 쓰시마와 초량 왜관의 루트는 점점 약화한다. 상하이와 나가사키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항로를 위시해 대항로가 형성되는 데다 범선에서 증기선으로 전환하면서 해항 네트워크가 획기적으로 변환하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초량 왜관의 지위도 우위의 위치에서 종속의 자리로 퇴각해 식민 도시 부산으로 추락한다. 하지만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고 근대 해항으로 거듭나면서 해항 부산의 위상도 괄목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가즈오 이시구로가 잿빛 나가사키의 변화를 한국전쟁기로 잡은 시야를 떠올릴 수 있다. 이웃 나라의 전쟁이 나가사키를 일으키는 계기가 된 셈인데 해항의 관계는 상호 역동적이다. 부산의 변화도 한국전쟁과 더불어 시작되었다는 역설이 있다. 그만큼 냉전체제와 연관하였었다. 그러나 오늘날 탈냉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아시아와 세계를 향한 해양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한다. 일국 차원의 시야에 갇히지 않고 글로벌한 차원과 교섭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도시에 부침은 있으나 결코 소멸은 없다.
2025-04-0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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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한국의 MAGA를 외쳐줄 정치인은 어디 있는가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는 걸 대서특필한 신문을 본 기억이 있다. 그땐 자유무역의 개념이 뭔지도 모를 중학교 1학년 때라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사건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엄청난 것이었다.
글로벌 분업 체계에 편입된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각국의 기업들이 값싼 인건비를 찾아 중국으로 향했다. 중국 제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들이 세계 제조업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까지만 해도 6% 수준에 머물렀다. 그런데 2010년엔 미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더니 2021년 30.9%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미국의 비중은 25%에서 16.3%로 축소됐다.
미 트럼프 “제조업 부활, 중산층 복원”
현대차 관세 피해 미국에 31조 원 투자
현지 생산 늘면 한국 일자리 위협 받아
정치권, 수출 물량 빼앗겨도 관심 없어
기업들 해외서 홀로 분투·서민 삶 후퇴
추락하는 국민 지켜줄 지도자 아쉬워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는 건 그보다 상위 레벨에 있는 국가들에서 그만큼 많은 공장이 빠져나갔다는 걸 의미한다. 일자리는 당연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미국만 해도 중국이 WTO에 가입한 뒤로 10년간 제조업 일자리 약 600만 개가 없어졌다. 미국의 노동자들은 중국의 값싼 인력에 대적할 수 없었다. 세계화라는 거대한 쓰나미 앞에 중산층 노동자 가정은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동부에선 월스트리트의 금융기업들이 돈을 쓸어 담고 서부에선 실리콘밸리의 혁신기업들이 나날이 빛나는 성취를 이루었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 놓인 공업지대들은 쇠락해 가기만 했다.
그런 시대였기에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그가 처음 당선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 이벤트가 일시적인 이변일 거라고 보았다. 아니었다. 이후의 사건들을 보니 그의 당선은 세계가 갈 수밖에 없었던 길목에 놓인 이정표 같은 것이었다. 공장이 떠나며 일자리를 잃고, 그나마 남은 일자리마저 밀려드는 불법 이민자로 인해 위협받는 사람들의 상실감과 분노가 서구 선진국들을 뒤흔들었다. 기성 정치권은 정서를 간파하지 못했다. 그것이 2010년대 중반부터 계속된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돌풍으로 이어졌다. 그들의 지지층은 대체로 비슷했다. 블루칼라, 서민, 지방. 모두 세계화가 가져온 번영에 소외된 이들이다.
얼마 전 현대차그룹이 미국에 31조 원을 투자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28년까지 완성차를 비롯한 부품·철강 등의 공장을 추가로 건설하고 자율주행·미래항공모빌리티(AAM) 등 신기술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다는 내용이다. 미국 판매량이 수출 물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현대차로선 관세를 피하기 위한 부득이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국내 일자리다. 미국에서의 생산은 국내 수출을 대체한다. 그에 비례해 일자리는 위협받는다. 부품 등 협력 업체들 역시 따라가거나 현지 업체로 대체될 수 있다. 미국이 5월부터 주요 자동차 부품에도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공장이 떠나면 지역 경제는 흔들린다. 전라북도 군산의 경제도 2018년 한국GM 공장이 문을 닫은 뒤 큰 침체를 겪었다. 당시 근로자와 협력업체 직원 3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들 덕분에 먹고 살던 ‘사장님들’도 덩달아 폐업의 길로 접어들었다. 군산의 제조업 생산액은 공장 폐쇄가 있기 전인 2017년엔 3조 3258억 원이었지만 공장이 문을 닫고 코로나19까지 겹쳤던 2020년엔 2조 7085억 원까지 감소했다. 공장 폐쇄 여파는 7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는 자국민들에게 외국으로 나간 공장을 불러들여 쇠퇴한 제조업을 부활시키고 무너진 중산층을 복원하겠다고, 그걸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로 표현되는 이 정신은 트럼프의 임기가 끝나도 계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바이든이 집권했을 때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하지 않았나. 차이가 있다면 보조금으로 구슬리느냐 관세로 협박하느냐 하는 정도일 게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미국에는 우리의 반도체와 배터리와 철강, 심지어 빵 공장까지 지어졌거나 지어질 계획이다.
이 엄청난 뉴스들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이것과 관련해 별다른 반응이 없다. 대한민국 국회는 트럼프가 우리 수출 물량을 어마어마하게 빼앗아 가는 것보다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 의결정족수에 더 많은 관심이 있어 보인다. 누구 하나 공장이 떠나는 걸 붙들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정치권이 지난한 탄핵심판 공방을 벌이는 동안 기업들은 해외에서 혈혈단신으로 싸우고 있고 그럴 힘마저 없는 서민들은 맥없이 삶의 후퇴를 기다리고 있다. 다시 분절되는 세계의 크레바스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손을 붙잡아 줄 정치인은 어디에 있는가. “차라리 트럼프 같은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정치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2025-04-02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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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동북아 해양수도 부산, 위기 넘어 도약으로
부산은 대한민국 경제의 관문이자 동북아 해양 물류의 중심이며, 수산업과 해양 과학 기술, 해운·금융, 관광·마이스 산업이 집약된 전략적 도시다. 부산항은 대규모 물류 시스템과 국제 해운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으며, 세계적 수준의 조선·수산업 인프라는 대한민국 해양산업을 오랫동안 견인해 왔다. 바다를 기반으로 성장해 온 부산은 단순한 해양 도시가 아니라, ‘동북아 해양수도’라는 확고한 위상을 구축해 온 도시다. 이 명칭은 단순한 수식이 아니라, 부산이 쌓아 온 역사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 부산의 위상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해양 도시 간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인천의 급속한 성장과 공격적인 해양 전략이 부산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해사법원 유치를 둘러싼 경쟁과 해양 정보산업 및 해양 과학기술 분야에서 인천이 적극적인 투자와 정책적 지원을 이어가면서, 부산의 해양수도 주도권이 흔들리고 있다. 부산은 과연 해양 강국 대한민국을 선도하는 중심지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해사법원 유치전, 정보산업·기술 추격
해양 강국 선도 도시 놓고 경쟁 격화
미래 신기술 인재 중심 도시 되려면
해운·수산·관광·조선 산업 연계 강화
R&D 투자·정책적 지원 균형 잡혀야
리더십·전략·혁신 구현에 미래 담보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선, 부산이 당면한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향한 전략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부산이 다시 동북아 해양수도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글로벌 해양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보다 주도적이고 통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해운·수산·관광·조선산업 간의 연계를 강화하고, 여기에 연구 개발(R&D) 투자와 정책 지원이 균형 있게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히, 지속 가능한 해양산업 발전을 위한 체계적인 정책 기반 구축이 시급하며, 이를 위해 독립적인 해양 정책 추진 조직의 설립과 과감한 예산 확대가 요구된다. 해양 관련 투자 비중이 현저히 낮은 지금, 중장기적인 로드맵 마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무엇보다 해사법원 유치는 부산이 국제 해양 비즈니스 중심지로 도약하는 데 핵심적인 출발점이다. 해운 금융, 해사 보험, 해양 분쟁 해결 등 고부가가치 산업의 집적은 부산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요소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해사법원 설립은 반드시 부산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 사회와 정치권이 긴밀히 협력하고, 지역 주도의 해양 거버넌스를 강화하여 중앙정부와의 전략적 협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부산은 해양 정보산업과 디지털 해양 기술 발전을 주도해야 한다. 해양 정보 시장은 자율 운항 선박, 해양 사이버 보안 등과 함께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며, 부산이 이 흐름을 선도하려면 스마트 해양 물류, 해상 안전 기술, 해양 빅데이터 분석 등 핵심 분야에서 연구 개발 환경을 체계적으로 조성해야 한다. 기업과 연구 기관이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을 체계적으로 마련한다면, 부산은 해양 디지털 전환의 거점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해양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도 중요하다. 독일의 함부르크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은 해양산업 클러스터를 통해 연구와 산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부산도 이러한 사례를 참고하여 해양산업 혁신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연구 개발과 신기술 창업을 적극 지원하는 ‘해양 혁신 허브’로 성장해 나가야 한다. 단순한 산업 중심 도시를 넘어서 기술 선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와 실효성 있는 정책 실행이 요구된다.
해양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기술 혁신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이를 이끌어 갈 전문 인재 양성 체계 역시 전략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부산에는 국립부경대학교, 한국해양대학교 등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교육기관과 함께, 동삼혁신지구 해양클러스터 내에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등 17개 기관 협의체가 구축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기관 간 협력과 연계는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이제는 학계, 연구 기관, 산업계가 실무 중심 교육과 공동 연구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해양 신기술 및 디지털 산업 수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맞춤형 인재를 길러내고, 산학연 협력 기반을 견고히 쌓아 부산을 해양 미래 산업의 인재 중심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부산이 해양수도로서의 주도권을 지키고, 미래를 선도할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그 기회는 단순한 기대나 과거의 영광만으로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 ‘동북아 해양수도 부산’의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결단력 있는 리더십과 실천 가능한 전략, 그리고 멈추지 않는 혁신이 절실하다. 인천이 빠르게 도약하며 부산을 추격하고 있는 지금, 부산은 해양수도의 위상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경쟁 속에 뒤처질 것인가. 지금 부산이 내리는 선택이, 해양수도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다.
2025-03-3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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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트럼프의 디지털자산 전략과 한국의 기회
미국이 디지털자산을 국가 전략의 중심에 배치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슬로건 아래, 비트코인과 스테이블 코인을 통해 국가 부채 해결과 글로벌 금융 패권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 이는 단순한 산업 육성을 넘어 미국의 경제 주권을 재정의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근본 목적은 천문학적 국가 부채 해결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창의적인 이중 전략을 구사한다. 첫째, 비트코인의 전략적 비축이다. 미국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 정책 차르 데이비드 색스는 “국가 차원의 비트코인 보유 계획이 디지털자산 정책 중 최우선 과제”라고 선언했다. 백악관 디지털자산 실무그룹은 미국의 금 보유량을 현재 시세로 재평가해 확보한 자금으로 비트코인을 대량 매입할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둘째,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한 미국 국채 수요 확대 전략이다. 미국 공화당 빌 헤거티 상원의원이 발의한 ‘스테이블 코인 법안’은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가 준비금으로 미국 국채를 보유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테더와 같은 주요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는 이미 상당량의 미 국채를 보유 중이다.
중국이 미중 갈등으로 미 국채를 대거 매도하는 상황에서,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는 ‘제2의 큰손’으로 국채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스테이블 코인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며,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향후 수조 달러 규모의 미 국채를 흡수할 잠재력을 가진다.
한때 세계 디지털자산 시장의 중심 국가로서 암호화폐 거래량 세계 1위를 기록했던 한국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미국이 비트코인을 전략적 자산으로 격상시키고, 일본이 자금결제법 개정을 통해 스테이블 코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동안, 우리는 규제에 막혀 정체되고 있다.
부산 블록체인 특구는 한국형 디지털자산 생태계 구축의 최적지다. 대한민국 제2 도시로서, 세계적인 항만과 물류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이미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되어 다양한 블록체인 서비스를 실험할 수 있는 법적 기반도 마련되어 있다. 우리는 미국의 비트코인 비축 전략이나 중국의 CBDC(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중심 전략과는 다른 ‘제3의 길’을 걸어야 한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글로벌 통화체계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CBDC를 적극 추진하며, 미국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을 통해 기존 금융 패권을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하려 한다.
한국은 실사용 중심의 블록체인 도시 모델을 구축함으로써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를 중심으로 세 가지 핵심 전략을 제안한다.
첫째, 블록체인 기반 ‘동백전’을 도시 페이먼트 시스템으로 재설계한다. 지역화폐인 동백전을 블록체인 기술과 결합하여 시민들의 일상 경제활동이 투명하게 기록되는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는 이 시스템의 핵심 인프라로 기능하며, 유동성 공급과 안정적인 가치 보장을 담당한다. 둘째, 블록체인 기반 시민 커뮤니티와 투표 시스템을 구축한다.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술로 시민들의 의견이 왜곡 없이 도시 정책에 반영되는 참여 민주주의 플랫폼을 구현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시민들이 도시 예산 집행과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셋째, 첨단 보안 기술을 활용한 프라이버시 보호 시스템을 구축한다. 의료기록은 보험사, 환자, 병원 등 이해관계자에 따라 접근 권한을 차등화하고, 행정문서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 영지식 증명 기술은 원본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도 정보의 진위만 검증할 수 있어,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활용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부산이 블록체인 도시로 진화한다면, 시민들의 일상에서 생성되는 실증 데이터는 글로벌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대규모 블록체인 실증 사례는 기술의 성능과 확장성, 보안성을 검증하고 개선하는 데 필수적인 자산이 될 것이다. 도시 운영 과정에서 쌓이는 노하우는 블록체인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솔루션으로 발전한다.
우리는 미국이나 중국과는 다른, 실생활에 블록체인을 접목한 도시 모델을 통해 디지털자산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이 디지털자산을 국가 전략으로 활용하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디지털자산은 단순한 투기 수단이 아닌, 국가 경쟁력과 금융 주권이 걸린 전략적 영역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암호화폐를 통해 국가 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금, 우리도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일 전략을 세워야 한다. 부산 블록체인 특구를 중심으로 과감한 디지털자산 진흥 정책을 펼칠 때, 한국만의 제3의 길이 열릴 것이다. 미래를 위한 선택, 그 중심에 부산 블록체인 특구가 있다.
2025-03-2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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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각하(閣下)와 각하(却下) 사이
요즘 매스컴에서 대통령 각하라는 소리도 들리고, 탄핵심판 각하·기각이라는 말도 들린다. 모두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용어인데다, 작금의 사회는 한자어에 대한 문해력이 대단히 낮아진 상태이므로, 아무런 설명 없이 그냥 넘어가기 어려울 듯하다. 각하(閣下)는 폐하(陛下), 전하(殿下), 저하(邸下), 각하(閣下), 합하(閤下), 대하(臺下), 궤하(机下), 안하(案下), 슬하(膝下), 족하(足下), 귀하(貴下) 계통의 용어 중 하나이다.
폐(陛)는 섬돌이라는 뜻으로 황제가 있는 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가리킨다. 신하가 황제를 처음 대할 때 섬돌 아래에 엎드려 있어야 한다. 폐하는 나를 낮춤으로써 남을 높이는 구조를 가진 말이다. 전하는 경복궁 근정전(勤政殿)을 정전으로 하는 국왕을 지칭하는 용어이자, 근정전 아래에 도열한 신하의 위치를 표시한다. 불교에서도 대웅전·팔상전(八相殿)·대적광전(大寂光殿)·비로전(毘盧殿)·용화전(龍華殿)·미륵전(彌勒殿)과 같이 부처님을 모신 곳을 전이라고 하고, 절 안에서 가장 격이 높은 건물이다. 다음으로 저하가 있는데, 같은 논리로 저(邸)에 사는 존귀한 존재인 조선시대 세자를 가리켰다. 그런데 동궁의 거처는 자선당(資善堂)·계조당(繼照堂)·시민당(時敏堂) 등이 있었으므로, 저하는 당하(堂下)와 동격인 셈이다. 스님들의 영정을 모신 조사당(祖師堂)이나 유교의 성현들을 모신 명륜당(明倫堂) 등이 모두 같은 격을 가진 건물이다.
'부친상' 잘못 이해 '수상 축하' 대꾸
한자어 몰라 '심심한 사과' 오해 예사
문해력 위기는 한문·한글 마찬가지
책·신문 대신 유튜브 익숙해진 탓
글 쓸 줄 모르고 말만 하는 사회
글 읽기·글쓰기 가치 되새겨야
각(閣)·합(閤)·대(臺)가 그 뒤를 잇는 건물이다. 각이라는 이름을 가진 건물로는 궁궐에는 규장각·장서각·동십자각·서십자각, 한양 도성에는 보신각, 민간에는 효자각·열녀각, 절에는 범종각·삼성각·칠성각이 있었다. 합이라는 이름을 가진 예로는 조선 궁궐 내에 사현합(思賢閤)·체원합(體元閤)·공묵합(恭默閤)·곤녕합(坤寧閤)과 같은 부속 건물들이 있었다. 합하라는 말은 대원군을 부를 때 대원위 합하라고도 하였다. 대(臺)는 태종대·신선대·이기대·몰운대처럼 경관이 빼어난 곳에 세운 건물을 뜻하는데, 경무대·청와대처럼 대통령의 관저 이름으로도 쓰였다. 궤하와 안하는 모두 책상 아래라는 뜻으로 학식이 뛰어난 사람이 앉아 있는 책상 아래에 있다는 뜻으로 쓰였다. 슬하와 족하는 상대에 대한 나의 위치를 무릎과 발로 본 것인데, 족하가 슬하보다 상대를 조금 더 높이는 말인 셈이다. 과거에 청와대에 사는 대통령을 각하라고 하였으니 썩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는 곳은 대통령 관저라고 하였으니 격에 맞지 않는 말이다.
한편 탄핵심판 각하(却下)의 각하는 청구 또는 신청이 형식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거나 심리할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 내리는 결정이다. 기각(棄却)은 청구 또는 신청 내용에 이유가 없다고 판단될 때 내리는 결정이다.
우리말 어휘의 약 70%가 한자어이고 특히 개념·행정·법률과 관련된 용어들이 대부분 한자어이다. 그런데도 오랫동안 한자와 한자어 교육을 등한시한 결과, 적잖은 사람들이 한자에서 비롯된 어휘들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간혹 소소한 논쟁을 야기하기도 한다.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는 말에 ‘사과를 왜 심심하게 하느냐, 제대로 해야지’ 혹은 ‘왜 달콤한 사과를 주지 않고 심심한 사과를 주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심심(甚深)하다’와 ‘사과(謝過)’라는 말이 한자어인 줄 모르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부친상을 당했다’고 하자, ‘무슨 상인지 모르겠지만 축하한다’고 하거나, 교수가 ‘금일’이라고 하자 ‘금요일’이라고 생각한 학생이,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금일’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용어를 사용하면 되겠느냐고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한자어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사흘을 4일이라는 뜻으로 알기도 하고, 자격을 나타내는 ‘로서’와 도구를 나타내는 ‘로써’는 거의 구별하기를 포기한 상태이다. ‘학생으로서 공부를 게을리해서 되겠느냐’라는 말을 대부분 ‘학생으로써’라고 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문해력 저하는 단순히 한자어를 가르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글 읽기와 글쓰기를 하지 않은 구조적인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책이나 신문 같은 글자로 된 미디어보다는 유튜브와 같은 말로 된 미디어에 익숙해진 탓이다.
사회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휘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또한 전제 군주 시대, 군사 독재 시대에 쓰던 각하라는 말과 기각과 각하의 각하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글은 쓸 줄 모르고 말만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건 우리 사회가 우중(愚衆)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조짐이 아닐까? 입시이든 취업이든 글쓰기 능력, 개념어를 이해하는 능력을 시험하는 비상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2025-03-2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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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미성년자와의 교제, 괜찮은가요?
한 유명 배우가 과거 상대가 미성년자인 시절부터 교제를 했다는 유튜버의 폭로로 연일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식당에서 뉴스를 보던 옆 테이블 사람들도 이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다. "서로 좋아서 연애한 게 뭐가 문제냐"는 의견과 "성인이 미성년자와 사귀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반응이 팽팽히 맞섰다. 한 사람을 극도로 몰아가는 분위기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 논란을 계기로 미성년자와 성인의 교제에 대한 법적 기준과 사회적 책임을 다시금 짚어볼 필요가 있다.
현행 형법은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으면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범죄로 본다. 이는 13세 미만인 경우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0년 'N번방 사건' 이후 미성년자 보호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면서,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이 기존 13세에서 16세로 상향되었다. 13세 이상 16세 미만의 미성년자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하기 어렵다고 보고, 성인이 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 개정 당시에도 연령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많았으며, 이는 여전히 법적, 사회적 쟁점으로 남아 있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주로 SNS를 통해서 청소년과 성인이 알게 되어 만남을 가진 사례다. 두 사람이 합의에 의해 성관계를 맺은 경우, 통상 미성년자의 부모가 알기 전까지는 수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부모가 나서 형사고소를 한 경우에도 미성년 당사자는 적극적인 고소 의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미성년자와의 합의 하에 성행위를 한 경우, 피해자의 연령에 따라 처벌 여부가 정해지다 보니, 행위자들은 일단 피해자가 16세 이상인 줄 알았다고 주장하고 나선다. 심지어 피해 미성년자들에게 "나이를 속였다"고 진술해달라고 종용하기도 한다. 물론 성숙한 외모만 보고 상대방의 나이를 오인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를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필자가 대리를 맡았던 한 사건에서도 가해자는 피해자가 중학생인지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CCTV 영상에서 피해자가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확인되며 법정 구속이 되었다.
특히 문제되는 사례는 청소년 간 교제 중 한 명이 성인이 된 경우다. 두 사람이 16세 미만일 때 교제를 시작했더라도, 한쪽이 19세가 되면 법적으로 성인-미성년자 관계가 되어 성관계가 있을 경우, 미성년자강간죄로 의제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보면서 일각에서는 미성년자의제강간죄를 연령을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있다. 미성년자도 성장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지는데, 특정 연령을 기준으로 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미성년자의 자율성과 인격권을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령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과 미성년자 보호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특히 미성년자의제강간죄와 같은 성범죄에서 개인별 성숙도를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이를 허용할 경우 오히려 성범죄에 대한 법적 불안정성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청소년과 성인의 관계를 보다 명확히 규제하거나,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고려하여 법을 개정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성인과 미성년자의 관계가 일정한 나이 차이 이내일 경우, 강간죄 처벌을 면제하는 '로미오와 줄리엣 조항'을 두고 있다. 비슷한 연령대의 청소년들 간에 합의된 성관계를 범죄화하지 않기 위해 마련된 법적 예외 규정이다. 영국은 16세 미만과 성관계를 맺을 경우 강력한 처벌을 내리며, 16~18세 청소년의 경우에도 교사나 보호자 등 권력 관계가 있는 성인과의 관계는 법적 책임을 묻는다. 프랑스 또한 15세 미만과의 성관계를 강간으로 간주하여 보호를 더욱 강화했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성적 동의 연령을 상향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단순히 연령 기준만 두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 간 합의된 관계는 예외로 인정하면서도, 교사나 보호자 등 신뢰관계에 있는 성인에게는 더욱 엄격한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차등화하는 흐름이다. 이러한 변화는 성인이 청소년을 성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을 더욱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청소년을 보호하는 법적 기준을 단순히 규제의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청소년이 건전하게 성숙할 수 있도록 성인들이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이번 논란은 청소년 성 보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청소년이 올바른 성 가치관을 형성하고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2025-03-1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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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비트코인과 금의 세계관 대결
최근 비트코인과 금은 엎치락뒤치락하며 금융시장의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비트코인과 금의 관계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먼저 비트코인이 위험자산이라면 금은 안전자산이라는 대립 구도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암호화폐는 대개 위험자산으로 분류되고 비트코인은 암호화폐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상장지수펀드(ETF)가 출시되었고 국가들도 일부 보유하고 있는 만큼 위험자산으로만 단순히 치부하기엔 그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는 것 같다. 반면 금은 안전자산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한편 비트코인은 가상자산이고 금은 실물자산이라는 차이점도 있다. 비트코인은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는 없지만 서버에 디지털 형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금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실물 형태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반짝이는 금이다.
필자가 보기에 비트코인과 금의 관계는 점점 더 치열해지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과 화폐전쟁 속에 숨겨진 세계관의 대결로 보인다.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비트코인과 금을 다르게 해석하고 또 다르게 가치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대상의 존재 방식과 정의가 달라지고 그 정의에 따라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가 달라지는 사유 과정과 다르지 않다.
앞서 비트코인과 금의 구별로서 비트코인은 비가시적이고 무형적이며 금은 가시적이고 유형적이라는 특성을 언급했다. 이는 인류의 다양한 문명 중 현시점에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두 문명으로만 거칠게 요약해본다면 유대인과 중국인의 세계관 대립, 유대기독교 문명과 중화 문명의 세계관 대립, 곧 둘의 철학적 입장 차이처럼 보인다. 유대기독교 문화는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한다. 신과 성령은 시각적으로 감각될 수 없다. 그러나 참된 신앙을 통해서 마침내 말씀과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시각보다 비시각적, 청각적 요소가 매우 중요한 문화적 특징을 지닌다. 중세 기독교에는 교육 목적으로 시각적 요소가 다수 첨가되었지만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우상숭배를 금지한 유대 율법의 영향으로 성상을 엄격히 금지했다. 반면 중국 문화는 보이는 것에 주목한다. 자연에서 발견하는 질서들이 도(道)가 되고 도를 깨우쳐 순리를 따르기 위해서는 외부 세계를 관찰하는 일부터 시작하기에 시각적인 요소가 중요해진다.
청각과 시각은 주관과 객관의 인식적 차이도 가지고 있다. 녹음 기술이 생겨나기 전까지 소리는 고정적으로 담아둘 수 없기에 흘러가는 형태로만 존재했다. 또한 소리는 음량에 따라 누구에게는 들리지만 누구에게는 들리지 않아 보다 소규모의 사적인 범위에서만 감각될 수 있었다. 따라서 과거에 청각을 통해서 어떤 존재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시각은 시력을 지니고 있다면 대상의 존재를 증명하기가 청각보다 용이하다. 밤하늘에 뜬 달을 보는 시각적 경험은 거리와 범위에 제한 없이 보편적으로 지각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각은 청각보다 객관적인 성격을 가진다.
감각의 차이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경험적 인식과도 유관하게 작용한다. 시간을 내재적 직관, 공간을 외재적 직관으로 정의한 칸트의 구분에 비추어 보면 청각은 상대적으로 유량의 주관적이고 시간적인 특성을 담고 있는 반면 시각은 저량의 객관적이고 공간적인 특성을 담고 있다. 이렇게 청각 중심 감각관과 시간 우선 세계관, 시각 중심 감각관과 공간 우선 세계관은 두 문명의 인식론부터 존재론,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에 이르기까지 상이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물론 고대문명사에서 출발하는 분기의 유래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차이 등은 글에서 생략하고 단순화한 점이 있다. 종교개혁을 이끈 루터의 ‘오직 믿음으로’라는 모토는 교회라는 공간을 지우고 시각적 성례 의식들을 배제시킴으로써 내적 주관의 무형성을 세계 인식의 중심으로 다시 위치시켰다. 프로테스탄티즘과 유대 문명은 보이지 않는 손과 믿음에서 신용으로 대체된 비가시적 가치, 끊임없이 유통되어야 하는 돈과 자본의 흐름, 형상의 제거와 물리적 공간성의 부재 등 현대 사회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비트코인과 금은 대결하는 두 문명의 토대가 된 세계관의 차이를 함축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두 화폐의 특성이 내포하고 있는 감각 인식적 근원은 양자역학의 미시세계 속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닮았다. 현대물리학에 따르면 입자와 파동은 동시 관측이 불가능하지만 둘은 공존하며 이중성의 구조를 갖는다. 또한 두 성질의 행동은 궁극에 불확정성의 원리와 확률로 나타난다. 그래서일까, 한국인은 비트코인과 금 모두에 ‘김치프리미엄’를 더해가며 두 자산에 열심히 투자하고 있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한국은 대결하는 두 국가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기를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2025-03-1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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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우크라이나를 망친 젤렌스키
올 것이 오고 말았다. 100만~150만 명의 국민을 희생시키며 3년을 끌어온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의 패전이 굳어져 간다. 나라가 거덜 났다. 국토의 20%는 이미 러시아에 넘어가 버렸고, 우방이라고 믿었던 미국도 등을 돌렸다. 트럼프는 “젤렌스키와는 앞으로 어떤 협상도, 회담도 없다”라며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고까지 한다. 미국은 100조 원어치를 퍼부었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도 전면 중단했다. 광물 협정이 어렵사리 성사된다고 해도 우크라이나 국민은 앞으로 10세대 250년에 걸쳐 3500억 달러 혹은 그 이상을 미국에 내야 한다.
유럽이 일견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며 젤렌스키를 돕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것도 남을 제물로 자신을 방어하고자 하는 유럽의 ‘술책’이고, 게다가 미국이 빠진 유럽이 무슨 힘이 있을까. 프랑스의 평화유지군 파병, 영국의 4조 원 차관 약속이라는 것도 국제 정세와 역내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지난 2월의 나토 합동 군사훈련에도 32개 나토 회원국 가운데 겨우 9개국만 참가했다.
전황 정보를 종합해보면, 미국의 무기 지원과 정보 중단 훨씬 이전부터 우크라이나의 패전은 명확했다. 살아날 불씨가 없다. 4개의 큰 전선 가운데 북쪽의 루간스크, 동남쪽의 자포리자와 헤르손은 이미 오래전에 러시아에 넘어갔고, 도네츠크, 그중에서도 포크로우스크 전선만 우크라이나군이 겨우 버티고 있을 뿐이다. 이곳은 희토류 등이 많은 광산 지대로 엄폐물이 의외로 많고, 전차전을 펼 수 있는 평야 지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초의 점령지에서 36%만 남은 서북쪽의 쿠르스크에서도 백악관 회담 결렬 이후 러시아 쪽의 공세가 심해졌다. 이러다간 수도 키예프와 서부 등 나라 전체가 없어질 판이다. 경제도 완전히 망가졌다. 그런데도 젤렌스키는 거꾸로 간다. 승산 없는 전쟁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계속 이어가려 하고, 징집 나이도 25세에서 18세로 확 낮추려 한다. 사업가들을 쥐어짜 정치자금을 더 불리고, 전 대통령과 군 최고사령관 등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는 국내 정적들을 미리미리 제거하느라 바쁘다. 거의 내란 수준이다. 이건 지도자가 갈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초부터 무모하고 잘못된 선택이었다. 작은 나라의 국가 지도자라면 전쟁보다는 균형 외교를 택했어야 했다. 핵 재무장론도 해결책이 아니다. 외세를 끌어들여 강대국과 전쟁을 벌이기엔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국가 기반이 너무나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변방’이라는 뜻의 우크라이나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독립의 역사가 겨우 3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키예프 러시아(882~1240)도 바이킹과 노브고로드 귀족들이 내려와 세운 고대 러시아국가였고, 오랫동안 우크라이나 서부는 주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지배를 받았다. 동부는 세금과 부역을 피해 이곳으로 도망쳐와 살았던 러시아 하층계급 코사크의 자치구역이었다. 돈바스 지역에 지금까지 러시아 뿌리가 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에 맞서 1654년에 러시아 제국에 영토 병합을 스스로 요청한다. 소련이 300년 뒤인 1954년에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서류상으로 할양한 것도 사실은 이 사건을 다시 자축하기 위한 이벤트였다. 1917년 2월의 러시아 부르주아혁명 혼란기에 잠깐 독립을 했다지만, 우크라이나가 실제로 독립한 건 소련 붕괴기인 1991년 8월 24일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안고 있고 국력도 약한 나라가 왜 갑자기 한쪽으로 기울며 침몰을 자초하는지, 우크라이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몹시 안타깝다.
지도자의 죄가 크다. 서방은 떡 줄 생각조차 안 하는데 전임자인 포로센코 대통령은 말기에 헌법까지 고쳐가며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을 국가 목표로 설정하더니, 젤렌스키는 더했다. 2019년 5월 집권 초기엔 균형 외교를 잠깐 취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내 미군을 국토로 끌어들여 포 사격 등 도발을 먼저 감행하고 아예 중립과 등거리 외교를 포기해버렸다. 물론 우크라이나 비극이 젤렌스키 탓만은 아니고, 1990년 10월 독일 통일 때의 부시-고르바초프 약속을 어기고 미국이 계속 동진해오고 러시아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2022년 2월에 사방에서 내려온 탓도 크다. 그러나 지도자가 잘했으면 우크라이나가 오늘날의 이런 꼴은 당할 리 만무하다.
탄핵 정국이 올봄에 어떻게 정리되어 대한민국호가 어떤 새 출발을 할지 모르지만, 우리도 앞으로 국가 지도자를 잘 세워야 한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정보다 권력욕, 모험주의, 화려한 언변을 앞세우는 자들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엔 젤렌스키 동정론이 의외로 강한 듯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당하는 비극을 보면서 그저 약소국 지도자의 비애, 비정한 국제관계만 읽는다면 숱한 희생을 치른 비극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지혜가 아닐 것이다.
2025-03-1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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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2기 트럼프 미 행정부와 한국 외교 안보 정책
지난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워싱턴의 아웃사이드로 제45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트럼프는 제46대 대통령직을 민주당의 조 바이든에게 내준 뒤, 2024년 11월 대선에서 역사적 승리를 거두고 백악관에 재입성했다. 트럼프에서 바이든으로 그리고 다시 트럼프로 이어지는 미국 정치의 변화는 미국의 외교 안보 정책에 그대로 반영된다. 즉 이익, 거래, 양자주의에 집중하는 트럼프의 외교 정책이 바이든의 이념, 규범, 다자주의로 이행했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트럼프의 대통령으로의 귀환과 함께 출범한 2기 트럼프 행정부는 대통령 당선인 시절 트럼프의 파나마 운하도 그린란드도 미국 땅이며 합병을 위해서는 군대 투입도 가능하다는 발언에서 볼 수 있듯이 1기 트럼프 행정부 이상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면서 미국의 국익을 추구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대해서는 한미동맹을 흔들면서 막대한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고,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는 직접 협상을 재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한반도에 트럼프 폭풍이 밀려오고 있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가 초래한 국정 공백의 장기화와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정치 세력 간 대립 격화를 배경으로 한국의 외교는 거의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냉전 붕괴 이후 30년 가까운 패권 유지 과정에서 소진된 미국의 국력과 국민들의 피로감을 회복시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자 한다. 이것이 2017년 제45대 대통령 취임사와 2025년 제47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변함없이 ‘미국 우선주의’를 천명한 이유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절체절명의 과제인 미국의 재건을 위해 미국 우선주의 외교 안보 정책을 추진한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경쟁국인 중국을 압박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온 일련의 국제기구에서 탈퇴하며, NATO를 포함한 동맹국들에게 방위비 증액을 강요하면서, 미국의 군사력은 한층 강화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강한 미국의 힘을 이용해 협상에서의 우위 확보, 정상 대 정상에 의한 톱다운 결정 그리고 불확실성을 극대화해 유리한 거래를 확보하는 ‘미치광이 전략’을 빈번히 사용한다.
2기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기간 자신이 호언장담했던 가자지구 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을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해 추진하고 있다. 사실 두 지역은 지리적으로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와 지정학, 지경학적으로 연계돼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 북한이 러시아와 군사 동맹을 체결하고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군대를 파병한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의 대북 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지난 2월 4일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가장 먼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백악관에 초청해 정상회담을 행했다. 그리고 미국이 가자지구를 장악해 소유하고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다음 지중해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이른바 ‘가자 구상’을 제시했다. 1기 행정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영토 제국주의적 양태를 나타낸 것이다. 이어 같은 달 28일에는 러시아와 3년 이상 전면전을 행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불렀다. 그리고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우크라이나의 안전 확보를 명시적으로 약속하지 않은 채 종전협정 및 미국과의 광물협정에 서명할 것을 종용했다. 미국의 국익과 무관한 유럽의 전쟁에 바이든 행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했다고 인식하는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이 낭비이며 이미 제공한 지원을 우크라이나로부터 회수하고자 한다. 이에 더해 트럼프는 젤렌스키 대통령보다 강력한 권력을 소지하고 장기 집권을 행하고 있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친밀감을 표명해 왔다.
가자지구 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단락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에서 실패했으나 지속적으로 우호 관계를 과시해 온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협상을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트럼프는 김정은이 지난 10년간 공을 들여온 강원도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에 대한 자본 투자권과 광물 채굴권을 확보하고 김정은은 부분적 비핵화를 행하는 스몰딜부터 북미 관계 개선이 이루어지는 빅딜까지도 이루어질 수 있다. 한국이 소외되지 않고 안보와 국익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의 실익에 근거한 한국의 전략적 가치와 한미 공조의 중요성을 설득해야 한다. 더 나아가 2기 트럼프 행정부 다음까지 염두에 둔 장기적 관점에서 한미동맹과 함께 한국의 군사력을 강화하고 외교적 시야와 공간을 확장해야 한다. 이를 위한 전제 조건이 정치 세력들과 국민들의 국익과 안전 보장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라는 점은 새삼 지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2025-03-1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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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미국의 가상자산 비축 선언과 금융 질서 변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전략적 비축 자산 목록에 가상자산을 포함하겠다고 발표해 금융 시장과 경제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리플(XRP), 솔라나(SOL), 카르다노(ADA)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도 전략적 비축 자산의 중심에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결정은 그동안 가상자산에 대해 거리감을 두어왔던 미국 정부의 입장이 전향적으로 변화한 것을 의미하며 가상자산의 위상이 미국 정부 차원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공식화되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글로벌 경제와 금융 질서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략적 비축 자산이란 국가가 경제적, 안보적 이유로 비축하는 필수 자산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로 원유, 천연가스, 금, 일부 농산물 등이 있으며 이러한 자산은 시장 변동성이나 외부 충격으로부터 국가 경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은 전략적 비축을 통해 국제 분쟁, 공급망 교란, 금융위기 등의 위기 상황에 대비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가 실제로 정책에 반영된다면, 가상자산은 전통적인 전략적 비축 자산의 역할을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우선, 기존 금융 시스템 내에서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가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매입이 이루어지면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등 전략자산으로 특정된 가상자산의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연기금, 은행, 대형 자산운용사 등 전통적인 금융 기관들의 가상자산 시장 진입이 가속화될 것이다. 기존 전략적 비축 자산은 대부분 실물 자산 중심이었으나 가상자산의 포함으로 국가 간 경제적 역학 관계가 변할 수 있다. 요컨대 미국이 대규모 가상자산을 보유하면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달러의 패권과 함께 가상자산의 패권까지 차지할 수도 있다. 중국과의 패권 전쟁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미국 입장에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던 가상자산 시장에서 주도권을 가져오고 금융 분야에서 절대적인 통제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가능성은 더욱 커 보인다.
가상자산은 가격 변동성이 극심해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으로 보기 어려워 그동안 전략적 비축 자산으로 고려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각국 정부는 오랜 기간 가상자산을 법적으로 어떻게 다룰지 고민해 왔다. 금융 자산인지, 상품인지, 화폐인지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상자산은 비축 대상에서 제외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상자산을 전략적 비축 자산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제 이러한 문제들이 점차 해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으로 보안이 강화되고, 각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규제 체계를 마련하고 있으며 금융기관도 가상자산 시장에 참여함으로써 인프라가 마련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24년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에 이어 금융위원회가 지난 2월 14일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진입을 단계적으로 허용한다는 로드맵을 발표한 것도 이러한 세계적 흐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제일의 패권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미 공화당이 상원과 하원까지 장악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는 이제 미국 정부가 가상자산을 본격적으로 비축할 것이라는 보증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미국이 먼저 전략 자산 비축에 나서게 되면 중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들도 경쟁적으로 가상자산을 비축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의 성장과 함께 관련된 금융산업의 발전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발행에 반대하는 트럼프 정부 입장에 비추어 본다면 가상자산 외에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코인도 급격하게 성장하게 될 것이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은 결국 미국 국채 매입 수요 증가로 이어져 가상자산으로 인해 위축되었던 미국 달러화의 위상을 강화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앞서 언급된 가상자산들과 함께 국제 무역과 금융거래에서 새로운 결제 방식의 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가상자산의 시세 변동에 관심을 두었던 투자자뿐만 아니라 각국 정부와 기업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디지털화된 새로운 유형의 자산이 출현함으로써 이를 기반으로 한 각종 금융 서비스와 거래가 기존의 금융 시스템을 혁신할 것이다. 이제 가상자산에 대한 시각이 어떤지는 부수적인 문제다. 우리는 글로벌 금융의 거대화 변화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우리 인생에 한 번 볼 수 있을지 모를 엄청난 변화에 벌써 흥분된다.
2025-03-0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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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직업에 귀천이 없을까
‘노동(勞動)’이라는 낱말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몸을 움직여 일을 함’이라고 되어 있다.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살기 위해서다. 현대 사회에서 노동은 다름 아닌 먹고 사는 수단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가끔 머리를 어지럽게 할 때가 있다. 이 간결한 단어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가 첨가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은 단순히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생활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이자 사회적 지위를 암시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개인적인 이름인 동시에 매우 사회적인 명칭이라는 뜻이다.
노동은 사회적 지위 드러내는 지표
직업에 따른 귀천 없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차별 의식은 엄연히 존재
삶의 다양한 층위는 구조적 문제
사회가 나누는 기준에 따르지 말고
자기 일의 소중함 느끼는 게 중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서울’ 명문대 학생들을 볼 때면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예컨대 ‘나보다 더 노력했으니까 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겠지’ 혹은 ‘저들은 선망받는 직업에 금세 올라서겠지’, ‘내가 그렇게도 갖고 싶어 했던 이름들을 갖게 되겠지’ 같은 생각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감정이 이렇게 불거지곤 한다.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그런데도 종종 나보다 잘난 것 같은 이를 보면 이렇듯 부끄러운 생각에 빠지는 것이었다.
나는 자립할 만한 임금을 받으며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서 있는 사회적 위치를 조금 부끄러워할 때가 있었다. 어릴 때는 ‘이곳은 한시적인 직장이고 아직 장래를 고민하는 중’이라는 핑계로 내 노동의 가치를 폄훼했다. 현재 내 위치를 자꾸 타인에게 설득하려 한다는 건, 내가 나를 떳떳하게 여기고 있지 못하다는 걸 방증한다. 그런가 하면 대학생 때의 아르바이트 경험은 잘도 늘어놓았다. 과거의 아르바이트 경험은 어린 나이에도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내려 했다는, 자랑할 만한 훈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이 말은 어쩌면 엉터리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면 아파트 경비원들을 마음대로 부리는 사람은 무엇인가. 음식점에서 종업원에게 진상을 부리는 사람은 또 뭔가.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데, 계급을 나누는 사람들이 문제야!” 이런 말은 형식적이고 겉치레의 말일 뿐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도덕책에나 있을 법한 이 문구는 세상에서 어떠한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악착같이 살아서 성공해야지’, ‘더 열심히 공부해서 취직해야지’라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 자유로운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의 입시, 취업, 결혼, 노후 등 모든 것이 그렇다. 삶 전체가 계급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언제까지 구조가 아닌 개인의 탓을 할 수는 없다.
한편으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때 묻은 양심을 덜어내고 싶을 때 자주 인용되는 듯하다. 나는 초등학교에서 처음 이 개념을 배웠다. 생각해 보면, 귀천이 없다는 관념을 아이들에게 학습시키려 한다는 건 오히려 직업의 귀천이 엄연한 지금의 현실을 부정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학교라는 곳부터가 직업에 귀천 의식을 부여하는 대표적인 사회조직이었다. 선생님들은 윤리 시간에 노동의 평등함을 가르치면서도 댄서를 꿈꾼다는 아이는 은근히 괄시했다. 의대에 진학할 거라는 아이에게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 학교 현장이 이러니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어떻게 하면 사회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개인의 계급적 상황에 따라 사람을 구분하고 괄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면죄부도 너무 많다. 모두가 기를 쓰고 위로 올라가려 하는 모양을 보고 있자니 살아남으려는 모든 행위가 어떨 때는 다 가엾게 여겨지기도 한다.
모든 노동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의 ‘이상’이다. 이런 이상이 실현되는 그런 때가 오기는 할까. 어쩌면 나도 지위나 신분의 상승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직 지위랄 것도 없는 나는 오늘 깨끗하고 순수한 내 스펙을 조금 부끄러워하면서도, 잔인한 세상의 기준에 혼란을 겪는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 일기장에 ‘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며 수많은 꿈들을 적는다. 어린 시절에는 되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중 몇 가지를 이루어가고 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나는, 요령이 없어서 힘들었지만 여기저기 부딪히니 이제야 내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알 것 같다. 이제 나는 되고 싶은 것은 없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게 많아졌다. 꿈이란 건 반짝하는 순간이 아니라, 내가 계속 써 내려가야 하는 역동적인 드라마 한 편임을 깨닫는다. 더이상은 사회가 나누는 기준으로 나의 직업을 규정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껴갈 뿐이다.
2025-03-0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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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부산 관광에도 봄이 오려나
최근 몇 차례의 비가 내리더니 봄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영하로 떨어지는 날씨 소식을 들으면 요즘의 관광 경기가 떠오른다. 통계청 데이터에 따르면 부산의 소상공인 및 자영업 지표는 여전히 부진하다. 이를 반영하듯, 매년 2월 14일이면 초콜릿 판매로 활기를 띠던 거리가 올해는 유난히 조용했다. 해운대나 광안리를 둘러봐도 예전만큼 관광객이 보이지 않는다. 관광 경기가 얼어붙은 듯했지만, 얼마 전 방문한 포항과 경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부산에서 사라진 관광객들이 경주에 몰려 있는 듯했다.
포항에서 우연히 방문한 딸기 체험 농장은 겉보기에는 한산해 보였지만, 예약 앱을 통해 끊임없이 체험객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이 농장은 아들이 아버지의 여덟 동 딸기 하우스를 물려받아 열두 동으로 확장했다. 주요 체험 방문객인 어린이들을 고려해 재배시설을 바꾸고, 인건비 절감을 위해 자동화 시설을 도입하며 안정적인 운영을 이어가고 있었다. 또한,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활용한 홍보 전략을 통해 직거래 판매를 활성화하며 인기 체험농장으로 자리 잡았다.
경주 또한 놀라운 변화를 보였다. 기존의 유명한 황남빵과 경주빵 가게들이 식품 공장으로 이전하면서, 그 자리는 새로운 경주빵 가게들이 차지했다. 평범했던 골목들은 활기찬 상권으로 변모했고, 주막처럼 꾸며진 술집, 소담스러운 밥집,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기념품 가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방문하려던 식당에 전화했더니 예약 앱을 통해 예약하라고 안내를 받았다. 이 앱은 대기 팀 수와 예상 대기 시간을 상세히 알려주며, 대기자 수가 줄어들 때마다 알림을 보내주었다. 덕분에 줄을 서지 않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경주의 거리에는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여행객,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까지 활발하게 오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돌담집을 개조한 한 점집을 발견했는데, 점괘를 봐주는 사람이 아닌 자판기가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방문객들은 오늘의 운세부터 재물운, 학업운, 취업운, 연애운 등등 다양한 고민거리마다 버튼을 누르도록 되어있는 자판기에서 운세를 뽑고, 고민과 결심을 메모지에 적어 벽에 붙였다. 아마도 이곳은 점괘를 통해 자신의 고민거리를 털고 말 못 하는 사연을 여기 벽에다 붙여놓는 소통방식으로 MZ세대들에게는 먹히는 핫플이 된 것 같았다. 부담 없는 500원의 가격으로 초등학생부터 청년들까지 사로잡으며 인기 명소가 되었다. 관광지가 젊은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얼마나 창의적으로 변화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오십 대인 나는 경주 관광지에선 보기 드문 ‘노땅’이었다.
경주가 젊은 여행객들로 가득 차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경주는 낮은 집들과 전통 한식 위주의 메뉴가 전부였지만, 이제는 퓨전 음식부터 스테이크, 화로구이, 파스타, 피자까지 다양한 메뉴를 제공한다. 게다가 맛집을 도착 전에 예약하여 대기 시간을 줄이고, 주변을 구경하다가 알람이 울리면 식당으로 이동하는 시스템 덕분에 더욱 편리한 여행이 가능해졌다. 맛집 식당에 줄 서다 하루를 허비할 뻔했지만, 예약 앱 덕분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관광과 미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었다. 이렇게 경주는 통일신라시대를 넘어 현대적인 관광지로 변모하고 있었다.
한편, 부산의 숨겨진 노포 맛집들도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비대면 기술을 익히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웠던 시기에, 2세대들이 1세대와 함께 배달앱을 도입하고 포장 기술을 개발하며 살아남았다. 그 결과, 현재는 SNS 홍보와 함께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반면, 2세대가 가업을 이어받았지만, 과거의 명성으로만 유지될 뿐 대표메뉴는 정체성을 잃고, 유행하는 메뉴로 바뀌면서 다른 식당의 맛이 더 낫다는 혹평을 받으며 경쟁력을 잃어가는 맛집들도 있다.
오늘날 소비 트렌드는 효용 가치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서울에서 부산, 부산에서 강릉까지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교통 인프라가 발전한 상황에서, 관광객들은 이동 시간보다 체류 시간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관광지에서 불필요한 대기 시간을 줄이고, 효율적인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디테일한 기술의 접목이 필수적이다. 단순한 정보 검색을 넘어 실질적인 생활 기술로 관광의 세부적인 부분을 개선할 때, 부산 관광도 명품 관광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부산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고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이유를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제 관광에도 디테일한 기술을 적용해야 할 때다. 생활 속 기술이 세밀하게 적용될 때, 부산 관광은 다시 명품 관광으로 태어날 것이다.
2025-02-26 [1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