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수군통제사비 무더기 출토 통영 텃밭, 건축물 터였다
2014년 사적비 24기 발굴
작년 말 긴급발굴 조사 착수
공적 기리는 건출물터 확인
매장 표식 ‘매치처비’도 발굴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진행한 ‘통영 통제사비 정비사업 부지 내 유적 긴급발굴’ 조사 결과 ‘제170대 임성고 통제사 거사비’ 2기와 ‘매치처비’ 1기가 추가로 확인됐다. 독자 제공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사 사적비가 무더기로 출토된 경남 통영의 변두리 텃밭(부산일보 2024년 12월 24일 자 11면 등 보도)이 단순한 비석 매몰지가 아닌 통제사 공적을 기리려 세운 건축물 터라는 사실을 입증할 새로운 흔적들이 발굴됐다. 통제영과 통제사 관련 연구, 통제사길 활성화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보존·정비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7일 통영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진행한 ‘통영 통제사비 정비사업 부지 내 유적 긴급발굴’ 조사 결과 ‘제170대 임성고 통제사 거사비’ 2기와 ‘매치처비’ 1기가 추가로 확인됐다. 거사비는 수령이 떠난 뒤 그 선정을 기리기 위해 고을 백성들이 세운 비석이다. 매치처비는 해당 비석을 땅속에 묻은 자리임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거사비 중 1기는 공적만, 다른 1기에는 공적과 함께 비석 제작자를 기록했다. 건립 주체는 통영성 내 선창동, 서충동, 동충동 주민들이다. 여기에 통제영 군관인 정동필이 감독관을 맡았다. 정동필은 순조 28년(1828) 통영 충렬사 정당 석축 건축을 담당하기도 한 인물이다. 건립 시기는 1845년(헌종 1년)이다.
비석이 발굴된 무전동 786번지 일원은 조선시대 통제사길(삼도수군통제사가 한양에서 통영까지 부임과 퇴임을 하던 길)로 사용된 장소로 2014년 전의이씨 통제사 사적비 24기가 발견됐다. 사적비는 통제사 개인 행적과 연보가 상세히 기록된 유일한 흔적이다.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사 사적비가 무더기로 출토된 통영시 무전동 786번지 일원 정밀 발굴조사에서 조선 후기 통제사비 관련 비각(碑閣)이 나왔다. 비각은 역사적 비석이나 신도비, 능비 등 중요한 비문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로 이 일대가 단순한 비석 매몰지가 아닌 통제사 공적을 기리기는 건축물이 세워졌던 터로 추정된다. 부산일보DB
지금까지 확인된 비슷한 매장문화재 발굴 사례 중 가장 큰 규모인 데다 더 많은 사적비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아 역사학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통영시는 첫 발굴 이듬해 국가유산청에 ‘긴급 조사 지원’을 요청했다. 최초 발굴지 주변 330㎡에 대한 조사 예산 1억 7890만 원을 지원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국가유산청은 “긴급하지 않다”며 “필요시 통영시 재정으로 하라”고 회신했다. 이후 세관의 관심 수그러들면서 통영시도 덩달아 손을 놨다. 그사이 발굴지 주변 훼손은 가속했다. 경사가 심한 비탈이라 토사와 잡풀이 뒤엉켜 현장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주변엔 상가와 다가구 주택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일부 빈 땅은 인근 주민들이 텃밭으로 개간해 각종 농작물을 심었다. 이대로는 중요한 유적이 빛도 못 본 채 다시 사장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뒤늦게 심각성을 인지한 통영시는 유적 보호와 정비를 위해 지난해 국가유산청 공모를 통해 긴급 조사에 착수했다.
이후 (재)경상문화유산연구원 주도로 조사가 진행됐고 첫 발굴에서 제170대 통제사 임성고 선정비와 제184대 통제사 임태영 불망비 그리고 비각의 하부시설(초석, 기단석, 전돌 등)과 축대가 발견됐다. 불망비는 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어떤 사실을 적어 세우는 비석이다. 선정비는 관직에서 물러나 다른 지역으로 옮길 때 이를 기념하고자 세운다.
핵심은 비각이다. 비각은 역사적 비석이나 신도비, 능비 등 중요한 비문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을 가리킨다. 이 일대가 단순한 비석 매몰지가 아닌 비석을 보호하고 기념하기 위해 별도의 건축물이 조성됐던 장소임이 확인된 것이다. 여기에 이번에 매치처비까지 발굴되면서 이 일대가 ‘풍천임씨 통제사 비각’이 있던 자리였음을 확정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연구원 설명이다. 풍천임씨는 제49대 임률 통제사를 포함해 3대가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한 무관가문이다.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사 사적비가 무더기로 출토된 통영시 무전동 786번지 일원 정밀 발굴조사에서 조선 후기 통제사비 관련 비각(碑閣)이 나왔다. 비각은 역사적 비석이나 신도비, 능비 등 중요한 비문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로 이 일대가 단순한 비석 매몰지가 아닌 통제사 공적을 기리기는 건축물이 세워졌던 터로 추정된다. 부산일보DB
경상문화유산연구원 홍성우 조사실장은 “통제사 비석 제작과 건립이라는 전통과 비각의 존재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학술적·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연구원은 무전동 일대가 통영으로 진입하는 옛길인 ‘통영별로(일명 통제사길)’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통제사 공적을 기리기 위해 도로변에 비각과 비석이 체계적으로 조성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후 근대기 도로 정비나 개발 과정에서 비각이 해체되고 비석이 매몰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다.
2014년 첫 발견 당시부터 통제사 연구와 통제사길 활성화를 꾸준히 제안해 온 통영시의회 김미옥 의원은 “통제영과 통제사 위상을 학계뿐만 아니라 통영시민, 국민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서 “관련 연구와 함께 통제사길 활성화로도 이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