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소녀’였던 최말자 씨, 61년 만에 무죄… 재심 최초로 ‘정당방위’ 인정(종합)
부산지법 10일 최말자 씨 재심 무죄 선고
61년 전 성폭행 남성 혀 깨물어 ‘징역형’
재판부 “중상해 증거 부족, 정당방위 인정”
사과 없는 무죄 선고 아쉽다는 반응도
60여 년 전 성폭행범의 혀를 깨물어 징역형을 선고받은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 당사자 최말자(79) 씨가 재심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성폭행 사건 재심으로 피해자 정당방위가 인정된 첫 사례다.
10일 부산지법 형사5부(김현순 부장판사)는 중상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 씨 사건 재심 선고기일에서 최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하자 법정에서도 순간 환호가 터져나왔다.
최 씨가 정당방위가 아닌 중상해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부산지법에서 60년 만에 뒤바뀐 선고 결과가 나온 순간이었다. 부산지검도 이날 항소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최 씨는 무죄가 사실상 확정됐다.
재판부는 이날 “중상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상해죄 여부도) 정당방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강제 키스 시도에 혀를 깨문 행위를 ‘위법한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행위’라고 판단했다.
앞선 결심공판에서 검찰도 “성폭력 범죄에 대한 정당방위”라며 “최 씨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당시 정명원 공판검사는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줬다”며 최 씨에게 고개를 숙였다.
최 씨는 재심 무죄 선고 이후 부산변호사회 대강당에서 “나와 같은 운명을 가진 피해자들의 희망이 되고 싶었다”며 “(당시 수사와 판결은) 직권남용으로 약자를 짓밟고 법을 악용한 권력자들의 잘못이라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최 씨를 대리한 법무법인 지향 김수정 변호사는 “61년 전 재판 과정에서 모욕을 당했는데 (재판부가) 사과를 하면서 무죄를 선고했다면 바로잡힌 판결이 조금 더 빛났을 것”이라며 “기록이 사라져도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판단해 재심을 개시한 역사적 판결”이라고 말했다.
부산여성의전화 배은하 성·가정폭력상담소장은 “최말자 선생님은 ‘이제는 어린 소녀가 아닌 호랑이가 돼 똑바로 세상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며 “함께한 6년 중 오늘이 가장 기쁜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오늘 판결이 앞으로 수사와 재판을 하는 분들에게 큰 교훈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1964년 5월 6일 당시 18세였던 최 씨는 자신에게 강제 키스를 시도한 노 모(당시 21세) 씨 혀를 깨물어 1.5cm 정도를 절단했다는 이유로 구속기소 됐다.
약 6개월간 옥살이를 한 최 씨는1965년 1월 부산지법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노 씨에겐 최 씨보다 더 가벼운 판결이 내려졌다. 법원은 강간미수가 아닌 특수 주거침입·특수협박죄를 적용해 노 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노 씨는 현재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 씨는 사건 56년이 지난 2020년 5월 재심을 청구했지만,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반세기 전 사건을 성차별 인식과 가치관이 변화된 지금의 잣대로 판단해 단정하기 어렵다”고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3년 넘는 심리 끝에 최 씨 재심 청구를 기각한 원심 결정을 파기했고, 올해 2월 재심 절차가 시작되면서 이날 무죄 판결로 이어졌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