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RWA 혁명, 부산의 '인프라 금융'을 깨우다
류홍열 비댁스 대표·변호사
최근 금융위원회가 혁신금융 일환으로 주요 금융기관들과 핀테크 기업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대해 조각투자 거래소 설립을 승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자본시장법의 테두리 안에서 디지털 자산이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되는 중요한 변곡점이다. 그동안 뜬구름처럼 여겨졌던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자산이 실질적인 투자 상품으로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음을 의미한다.
이런 흐름의 중심에는 RWA(Real World Asset, 실물 기반 토큰화 자산)가 있다. RWA란 부동산, 미술품, 채권 등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유무형의 자산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토큰화한 것이다. 자산을 잘게 쪼개 디지털 증권 형태로 발행함으로써 과거에는 기관투자자나 자산가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우량 자산에 일반 개인들도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금융위, 조각투자 거래소 설립 승인
디지털 자산 제도권 금융 편입 전환점
해운·물류 인프라, 블록체인 결합 부산
‘선박 RWA’ 등 새 금융 모델 구현 가능
가덕신공항 등 사업에 이 방식 적용 땐
자금 조달, 사회적 합의 이끌 수 있어
사실 조각투자라는 개념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강남의 빌딩, 유명 작가의 미술품, 심지어 한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초자산을 바탕으로 한 상품들이 출시됐다. 그러나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지금까지의 성적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기초자산의 매력도’와 ‘수익성’의 한계였다.
이제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RWA의 진정한 혁신은 기존에 이미 활발히 거래되던 자산이 아니라, 수익성은 확실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거대 인프라 영역에서 일어나야 한다. SOC(사회간접자본) 사업, 선박, 항공기, 터널, 교량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이러한 자산은 운영 기간이 길고 현금 흐름이 안정적이지만, 단위 당 투자 금액이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에 달해 일반인의 투자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만약 RWA를 통해 이 거대한 자산을 소액 단위로 쪼개어 유통한다면, 금융시장에는 전례 없는 리테일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해양수도인 부산은 이러한 ‘인프라 RWA’의 최적지다. 부산이 가진 독보적인 강점인 해운과 물류 인프라는 RWA 혁신의 가장 강력한 병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박 금융은 대표적인 ‘그들만의 리그’였다. 수천억 원을 호가하는 컨테이너선 한 척을 건조하기 위해선 대형 은행과 정책 금융기관의 복잡한 신용 공여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부산의 선박 금융 노하우와 블록체인 기술이 결합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부산은 이미 해양수산부를 비롯해 한국해양진흥공사(KOBC)와 다수의 해운사가 집결해 있는 동북아 물류의 허브다. 여기에 선박의 소유권이나 용선료 수익권을 토큰화해 유통하는 ‘선박 RWA’ 모델이 더해진다면, 부산은 단순히 배가 드나드는 항구를 넘어 ‘선박의 가치가 거래되는 글로벌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다. 선박 건조 자산의 일부를 리테일 투자자로부터 조달하고, 투자자들은 선박 운영 수익을 투명하게 배당받는 모델은 부산만이 시도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RWA의 미래다.
필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덕신공항 건설과 배후 단지 조성 자금의 일부를 RWA 방식으로 조달할 것을 제안한다. 기존의 국책 사업이 정부 예산이나 대규모 채권에만 의존했다면, 이제는 ‘시민 참여형 디지털 인프라 펀드’를 구축할 때다.
이를테면 신공항의 핵심 수익원인 여객 터미널 면세점 입점 수익권이나 공항 주차장 운영권, 혹은 배후 물류 단지의 창고 부지 등을 자산화하여 토큰으로 발행하는 모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부산 시민들이 매달 적금을 붓듯 자신이 이용할 공항의 지분을 소액으로 소유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이용료와 면세점 매출의 일부를 디지털 지갑을 통해 실시간 배당받는 구조다. 이는 자본 조달을 넘어 신공항에 대한 시민들의 ‘주인 의식’을 고취하고, 국책 사업을 둘러싼 지역 내 갈등을 상생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사회적 합의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세 가지 측면에서 효과를 낸다. 첫째, 금융의 민주화다. 국가나 지자체 주도의 우량 인프라 성과를 특정 자본가가 아닌 시민이 공유하게 된다. 둘째, 자산 유동화의 가속이다. SOC 사업에 민간 자금을 원활히 유입해 재정 부담을 줄이고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셋째, 부산의 정체성 강화다. 블록체인 특구 부산이 시민과 기간시설을 공유하는 ‘디지털 금융 허브’ 사례를 제시할 수 있다.
RWA는 단순한 기술적 수단이 아니다. 자산의 소유 구조를 재정의하고 부의 분배 방식을 혁신하는 도구다. 부산의 거대한 항만이, 그리고 새로 지어질 신공항의 활주로가 디지털 토큰을 통해 시민들의 자산으로 연결될 때, 부산은 비로소 명실상부한 글로벌 디지털 금융 도시로 도약할 것이다. 이제 ‘무엇을 쪼갤 것인가’에 대한 답은 명확해졌다. 작고 사소한 자산에서 벗어나 도시의 뼈대를 이루는 거대한 자산에 디지털의 숨결을 불어 넣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