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검찰개혁에 지배된 더불어민주당
이동수 세대정치연구소 대표 공모 칼럼니스트
부작용 우려에도 사법개혁 밀어붙여
대법원장 고발·파렴치범들 재판 소원
혼란 가시화 국민들 원성 높아질 듯
평범한 삶 위협하는 현안엔 소극적
여 지지율 대통령 비해 20%P 낮아
민심 담지 못한 증거로 받아들이길
3월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선 검찰을 향한 민주·진보 진영의 구원(舊怨)이 엿보였다. 2003년 3월 ‘검사와의 대화’를 소환한 대목에서다. 당시 토론회에 참석한 검사들은 부산상고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에게 ‘학번’을 묻는 등 모멸적인 질문도 서슴지 않았다. 노무현과 검찰의 갈등은 퇴임 후에도 계속됐고, 급기야 그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이 사실은 지지자들에게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뿌리로 한다고는 하지만 오늘날 더불어민주당의 본류는 친노무현계다. 김 전 대통령을 따르던 동교동계 정치인들은 대부분 은퇴했거나 ‘수박’으로 찍혀 밀려났다. 당내 주류는 친노·친문으로 이어지는 86세대 운동권 그룹으로 채워졌다. 핵심 지지층 역시 20여 년 전 ‘노무현 신드롬’을 만들었던 이들이다. 이런 정당에서 검찰개혁이 지상과제로 떠오른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민주당에선 재벌개혁이나 골목상권 보호, 보편적 복지 등 다양한 아젠다가 공존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검찰개혁이 거의 유일한 의제로 자리매김했다. 2019년 조국 사태가 발단이었다. 거기에 지난해 5월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면서 사법개혁이 추가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갈등 의제일수록,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것일수록 진지하게 터놓고 숙의를 해야 된다”라며 신중론을 편다. 그러나 여권 강성파와 핵심 지지층은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에 관한 한 조금의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모양새다. 실제로 지난 1월 정부가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설치 법안을 입법예고 했을 당시에도 지지층은 크게 반발했다. 보완 수사권 폐지 결정을 뒤로 미루는 등 검찰개혁을 ‘확실하게’ 단행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공교롭게도 그 직후 정청래 대표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나 당내 의사결정 과정에 당원 권한을 확대하는 ‘1인 1표제’ 이슈를 띄웠다. 검찰개혁에 대한 선명성 여부는 계파 갈등의 불씨로도 작용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ABC론’, 그러니까 가치·이념에 충실한 원리주의자들과 실용·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을 분리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일단은 이재명 대통령이 진영 내 강성파에 밀린 형국이다. 여당은 각종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법왜곡죄 신설, 재판소원 도입, 대법관 증원을 골자로 하는 사법개혁을 밀어붙였다. 검찰개혁에 있어서도 특별사법경찰관에 대한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삭제하는 등 강성파 의원들의 요구가 상당 부분 수용됐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여권 지지층과 일반 국민의 요구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집단이 청년층이다. 2030은 참여정부 당시 10대 이하였다. 노무현에 대한 향수가 없는 이들은 검찰개혁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는다.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국정 우선 과제로 검찰개혁을 꼽는 경우도 거의 없다.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청년층의 지지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건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 청년뿐 아니라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살면서 검찰을 접할 일이 거의 없다. 이들의 삶을 위협하는 건 검사가 아니라 지역 격차라든가 인구 소멸, 노동시장 양극화 같은 것들이다. 균형발전만 하더라도 민주당이 검찰개혁에 쏟는 열정의 반만 여기에 쏟았다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가 이 정도로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개혁에 지배된 더불어민주당에서 이러한 의제들은 부차적인 걸로 여겨진다. 검찰이라는 단어로 가득한 대변인들의 논평이 그것을 방증한다.
민주당이 강성파 의원과 당원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검찰개혁·사법개혁을 밀어붙인 데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당장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판사들은 법왜곡죄로 고발당했고 파렴치범들은 대법원 유죄 판결에 불복하며 재판 소원을 벼르고 있다. 권한이 막강해진 경찰을 어떻게 견제할 것이며, 이들의 수사 전문성은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도 내려지지 않았다. 일상에서의 혼란이 가시화하면 국민의 원성이 높아질 테지만, 이미 당원들에게 의사결정 과정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민주당은 달리는 기관차를 멈추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은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자는 ‘검수완박’에 집중했다가 선거를 그르친 바 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도 선거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검찰개혁·사법개혁으로 떠들썩하다.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 행진하는데 여당 지지율은 그보다 20%포인트가량 낮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이 민심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적어도 그 20%만큼의 유권자는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 다만 지금은 국민의힘이 워낙 지리멸렬한 탓에 잠시 유예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