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픽셀 라이프' 시대, 우리에겐 '버디'가 필요해
유버디 대기업 프로 재택러
글로벌 IT 기업인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에는 ‘버디’라는 온보딩(조직 안착) 제도가 있다. 사수와 부사수라는 수직적 위계를 넘어, 먼저 입사해 조직 문화를 익힌 동료가 신입 사원의 짝꿍이 되어 조직 생활의 꿀팁을 다정하게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5년 전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 적응을 마쳤을 무렵, 나 역시 나보다 10년 차 이상인 실무자의 버디가 되어드린 적이 있다. 나이와 연차를 불문하고 ‘먼저 가본 길’에 대한 사소한 경험을 나누는 행위가 긴장을 얼마나 따뜻하게 녹여내는지, 그분께 받은 정성 어린 감사 편지로 체감했다. 일하며 처음 받아본 긴 편지는 업무를 돕는 역할을 넘어, 누군가에게 실질적 힘이 되어 주는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었다.
최근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단연 ‘픽셀 라이프’다. 김난도 교수팀의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26〉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거대한 메가 트렌드에 몸을 싣기보다 개개인이 독립된 픽셀처럼 파편화돼 자신만의 마이크로 트렌드를 짧은 주기로 소비하고 빠르게 전환한다. 이러한 흐름은 일터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특히 재택근무는 조직이라는 거대한 화면에서 하나의 ‘픽셀’로 분리되어 나온 상태에 가깝다. 사무실이라는 물리적 울타리 안의 구성원이 아니라, 각자의 독립된 공간에서 자신을 스스로 경영해야 하는 개별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업무 능률을 높여줄 도구를 찾거나 온라인에서 동료를 찾는 행위는, 이 파편화한 일상에서 나만의 단단한 업무 환경을 구축하려는 노력이다.
개개인은 독립 픽셀 같이 파편화
재택근무는 이 같은 현상의 정점
수직적 위계 아닌 짝꿍의 중요성
훈계보다 넘어져 본 경험 나누면
치열한 삶에서도 연대·성장 가능
그런 짝꿍 같은 '버디'가 내 목표
문제는 이처럼 ‘분리된 픽셀’로 지내는 일상이 생각보다 날카로운 부작용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나 역시 재택 2년 반 만에 번아웃을 겪으며 휴직을 선택해야 했다. 마냥 편해 보이기만 하는 재택근무였지만, 홀로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과 정서적 소통의 부재는 나를 서서히 갉아먹었다. 휴직 기간 내내 마음 한구석에는 ‘이대로 뒤처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자리 잡았다. 그때 읽은 구본형 저자의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는 서늘한 각성을 주었다. 진정한 위기는 직책의 상실이 아니라, 스스로의 방향을 잃은 채 고립되는 데 있다는 지적이었다. 당시 내게 간절했던 것은 지시를 내리는 권위적인 멘토가 아니라, 파편화한 일상 속에서 삶의 속도를 조절해 줄 ‘버디’였다.
복직과 함께 누군가 나의 궤도를 수정해 주길 기다리기보다, 스스로가 버디를 찾아 나설 환경을 직접 구축하기로 결심했다. 회사라는 시스템이 챙겨주지 못하는 일상의 리듬을 스스로 관리하되, 그 과정을 혼자가 아닌 ‘느슨한 연대’ 속에서 해결하려고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시도가 비단 나만의 고군분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2026년 현재, 우리 사회는 이른바 ‘삶잘러(삶을 잘 살아내는 사람)’를 추구하는 활기로 가득하다. 모니터 앞에서 고립되는 대신 SMCC(서울 모닝 커피 클럽) 같은 커뮤니티를 통해 느슨하게 연결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러닝을 하며, 때로는 아침 커피 한 잔과 함께 DJ 음악에 맞춰 파티를 즐긴다. 누군가는 이를 유난스러운 유행이라 볼지 모르나, 사실 우리는 픽셀처럼 쪼개진 일상 속에서 나처럼 애쓰는 타인의 존재를 확인하며 위로받고 싶을 뿐이다. 정답을 훈계하는 스승보다, 먼저 넘어져 본 경험을 담담하게 나눠줄 버디를 서로에게서 찾는 셈이다. 픽셀과 픽셀이 만나 더 선명한 화질을 이루듯,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개인들이 그렇게 연대하기 시작했다.
재택근무 6년 차가 된 지금, 과거와는 전혀 다른 리듬을 갖게 되었다. 점심시간이면 SNS를 통해 재택러들을 위한 ‘일잘러 꿀팁’을 공유하고, 영어 챌린지에 참여하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온보딩한다. 이는 단순히 N잡러가 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고립된 환경에서 존재 이유를 확인하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한 치열한 과정이다.
내가 유버디라는 필명으로 〈부산일보〉 독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30 세대가 픽셀처럼 분절된 삶 속에서 느끼는 불안과 감정의 파고를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기성세대에게는 새로운 시대의 일터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진심을 전하고, 동료 세대에게는 다정한 지지자가 되고자 한다. 자기만의 고독한 방에서 새 도전을 시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나의 글이 하루를 버티게 할 작은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 버디의 진정한 역할은 성공 신화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가 본 길의 걸림돌을 살짝 치워주는 다정함에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닿아 삶의 리듬을 되찾는 데 작은 보탬이 되었다면, 오늘 버디로서의 할 일 하나는 끝냈다고 믿는다. 이제 당신의 다정한 버디로서, 차가운 모니터 속 뜨거운 세계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