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블록체인 도시 부산, 이제 '돈 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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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준식 비온미디어 대표

관광·공공안전·의료 분야서 실증사업
가능성 보였지만 수익 증명 사례 의문

제도·예산·시설 등 완비된 인프라 바탕
강점 지닌 커피·수산 분야서 접근 필요

실증 성과를 산업 성과로 전환 중요
'도입한 도시' 넘어 '주도하는 도시'로

부산은 국내에서 가장 먼저 블록체인을 정책으로 끌어올린 도시다. 규제자유특구 지정 이후 물류, 관광, 공공안전, 금융,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증 사업이 이어졌고, b-space와 기술혁신지원센터 같은 공간도 갖춰졌다. 제도, 예산, 시설 모두 준비됐다. 형식적으로는 인프라가 완비된 상태에 가깝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블록체인 기업은 왜 부산으로 오지 않는가. 인프라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눈에 보이는 공간과 시설, 특구 지정이나 규제 완화 같은 제도, 그리고 기업이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 사업 구조다. 부산은 앞의 두 가지는 갖추었다. 하지만 세 번째가 없다. 고객이 있고 거래가 반복되며 수익이 쌓이는 생태계, ‘여기서 사업하면 돈이 된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구조 말이다. 기업은 공간이 아니라 기회를 따라 이동한다. 지난 몇 년간의 실증사업들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관광 통합 플랫폼, 공공안전 영상 제보 시스템, 디지털 바우처, 의료 데이터 활용 사업은 블록체인이 실제 서비스에 적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가능성을 증명한 PoC(개념검증)는 많았지만, 수익을 증명한 사례는 과연 얼마나 되는가. 실증 이후 민간 고객이 붙었는가. 부산이 아니면 안 되는 사업이 만들어졌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구조적 문제는 더 있다. 특구 사업에 참여한 기업 중 상당수가 부산에 본사를 두지 않는다. 참여는 했지만 정착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특구의 성과가 지역 경제에 얼마나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지점이다. 이제는 접근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블록체인 실증 자체를 목적으로 사업을 설계한 결과, 실증을 수행한 기업에는 도움이 됐지만 부산 블록체인 특구에는 별다른 변화가 남지 않은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블록체인 기업을 유치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부산이 이미 강점을 가진 산업에서 블록체인이 진짜 필요한 곳을 먼저 찾는 것이다. 기술이 산업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산업이 기술을 불러오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산업은 커피다. 국내 커피 수입의 대부분이 부산항을 거친다. 그런데 부가가치는 수도권에서 만들어진다. 콜롬비아, 과테말라, 온두라스 농장을 떠난 커피가 부산 창고에 도착하기까지 물류는 이미 실시간으로 추적된다. 그런데 정작 대금 정산은 여러 나라의 은행을 거치며 수일이 걸리고, 수수료가 쌓이며 거래 위험도 남는다. 화물은 도착했는데 돈은 아직 은행 어딘가에 묶여 있는 구조다. 블록체인 스마트 계약을 활용하면 선적이 확인되는 순간 대금 일부가 자동 지급되고, 화물이 부산항에 도착하면 나머지가 즉시 정산된다. 부산이 커피의 관문에서 무역 금융 정산의 플랫폼으로 올라서는 순간, 데이터 흐름을 쥔 도시가 돈의 흐름도 쥔다.

부산의 또 다른 핵심 산업인 수산도 블록체인이 절실한 분야다. 부산은 국내 수산업의 중심 도시로, AI를 접목한 스마트 양식 빅데이터 센터를 추진 중이다. 그런데 양식장이 스마트해질수록 보안 위협도 함께 커진다. AI가 사료 공급과 수온·산소 관리를 자동화할수록, 해커가 시스템에 침투해 이를 조작하면 어류가 집단 폐사할 수 있다. 단순한 경제적 손실이 아니라 어족 자원 고갈과 식량 안보 위협으로 이어지는 문제다. 부산시가 추진 중인 AI 데이터 센터도 마찬가지다. 대규모 데이터 인프라일수록 사이버 공격 표적이 되기 쉽다. 블록체인 기반 분산 보안 구조는 단일 장애 지점을 없애고 데이터 무결성을 보장하는 유효한 대안이 된다. 생산부터 수출까지의 이력을 검증 가능한 형태로 연결하면, 부산 수산업은 단순 이력 관리를 넘어 신뢰를 수출하는 산업이 될 수 있다.

항만은 이미 블록체인 도입이 진행 중인 영역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별 서비스가 아니라 선사·터미널·통관·보험·정산을 하나로 묶는 데이터 연합 구조다. 부산항이 물류 거점을 넘어 신뢰 데이터의 거점이 될 때, 기업이 부산에 와야 할 이유가 비로소 생긴다.

정책의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몇 건의 실증을 완료했는지가 아니라, 반복되는 매출이 얼마나 생겼는지, 부산에 정착한 기업이 몇 곳인지를 봐야 한다. 블록체인 특구, 디지털금융 정책, 스타트업 투자 및 육성, AI·데이터 인프라 사업이 각자 따로 움직이면 산업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부산은 블록체인을 위한 도시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이제 넘어야 할 단계는 하나다. 블록체인이 필요한 도시를 만드는 것. 실증 성과를 산업 성과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 지금 부산 블록체인 특구 앞에 놓인 진짜 숙제다. 부산이 블록체인을 ‘도입한 도시’를 넘어 ‘주도하는 도시’로 갈 수 있을지는, 바로 이 전환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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