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동 전쟁 틈탄 '미친 기름값' 시장 안정 대책 필요
L당 1822원 3년 7개월 만에 최고
유통 단속 강화 부당 폭리 막아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여파로 국내 주유소와 휘발유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5일 오후 대전 최저가 주유소인 중구 안영동 한 주유소에서 한 시민이 차량에 주유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의 중동 전쟁으로 국제유가 변동성이 높아지면서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5일 오후 3시 기준 1822원을 기록했다. 휘발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건 2022년 8월 12일(1805.9원) 이후 3년 7개월 만이다. 특히 사흘 새 부산 휘발윳값은 L당 141원, 경유 가격은 L당 226원이나 폭등했다. 그야말로 ‘미친 휘발윳값’이다. 증시가 최근 단기 급등했지만, 성장률은 1%대에 머물고 실질 소비 지출도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등 실물 경제 부진은 여전하다. 특히 고환율로 물가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기름값 폭등은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 경제 주름살만 늘릴 우려가 크다.
국제 유가 상승이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기까지 통상 2주가 걸린다.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유통하는 과정에서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원유가 국내에 공급되기도 전에 주유소 판매가격이 먼저 오르는 모양새다. 정유사들이 불안한 국제 정세를 빌미로 기름값을 올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 간 무력 충돌로 국제 유가 불확실성이 커졌을 때도 국내 휘발유 판매가격은 L당 1800원에 육박했다. 현재 국내 석유 비축일수는 208일분, 세계 6위 수준으로 단기 재고량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불안한 민심 수요를 악용해 기름값이 ‘오를 때는 빠르게, 내릴 때는 천천히’라는 관행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도 강경 대응에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임시 국무회의에서 폭등하는 휘발유 가격에 대해 ‘최고가격 지정제’ 시행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지역별·유류 종류별로 적용하는 등 현실적 방법을 찾아 신속하게 지정하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최고가격 지정은 2004년 관련법률 제정 이후 처음 시행하는 것이다. 또 주유소의 바가지 행위를 제재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유가가 오르는 틈을 타 매점매석이나 가격 인상은 파렴치하다”며 상응하는 처벌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어려운 시장 상황을 악용해 폭리를 취하려는 시도에 정부가 단호한 대응을 천명한 것은 합당하다.
중동 전쟁이 장기화한다면 국제 석유 시장 변동성이 증가하고 에너지 수급 불안이 현실화할 수 있다. 국제 유가가 치솟으면 국내 경제에 상당한 파장을 미치고, 자가용·생계용 운전자 등의 부담은 더 커진다. 정부도 에너지 수급 우려가 커지자 5일 석유·가스에 ‘관심’ 단계의 자원 안보 위기 경보를 발령했다. 수급 위기에 대비한 원유 추가 물량 확보, 비축유 방출 준비, 석유 유통 시장 단속 강화 등을 차질없이 해야 한다. 가짜 석유, 정량 미달 등 불법 유통 행위 관리도 강화해 부당하게 폭리를 취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적극적인 석유 시장 안정 대책을 통해 서민 부담을 줄이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