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이해하고 자신이 만족하는 삶 살아야 [마음 산책]
김철권 정신과 전문의
직업관 다른 자녀와 부모
제대로 된 직장 갖지 못한 20대
알바로 돈만 모이면 여행 다녀
부모 직장 기준, 안정성·지속성
자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 원해
서로 다른 욕망 충돌로 갈등 빚어
자식 걱정하는 부모 마음 헤아려야
클립아트코리아
서른을 앞둔 직장인입니다. 사실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진 적은 없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돈이 모이면 여행을 떠납니다. 그렇다고 여행에만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여행 사진이나 여행 관련 노하우 등을 SNS나 인터넷 카페에 공유하고 관련 댓글이나 DM에 답글을 다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합니다. SNS에선 적어도 여행 전문가라 자부합니다. 하지만 그럴싸한 직장도 없이 빈둥거리는 걸로만 생각하시는 부모님은 저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좋은 학벌을 그런 식으로 쓰면 뒷바라지한 부모는 뭐가 되겠느냐고 한탄하십니다. 부모님께 손만 벌리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부모님은 남들의 시선이 더 신경 쓰이는 듯합니다. 과연 제가 문제인가요?
이번 사례는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부모의 욕망의 대상’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대로 된 직장’, ‘그럴싸한 직장’,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좋은 학벌’, ‘저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남들의 시선이 더 신경 쓰이는 듯’ 이라는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먼저,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남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욕망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로부터의 인정입니다. 부모로부터의 인정을 통해 인간은 자아(나)를 형성합니다.
프랑스 정신분석가 라캉에 따르면 아기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자신과 동일시해서 자아를 형성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거울 속에 비친 그 이미지가 자신인지 알지 못하고 타자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다가 어머니(혹은 어머니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가 보내는 ‘그게 바로 너야’라는 인정의 신호를 통해 거울 속에 비친 그 이미지가 자신임을 알게 되고 바로 그때 자아가 탄생한다고 합니다. 생후 6~18개월 시기의 일입니다.
부모의 욕망의 대상이란 부모가 자식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못 한 것을 자식이 대신 성취해 주기를 바라고, 자기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방향으로 자식이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 역시 모든 부모가 갖고 있는 공통적인 욕망입니다. 문제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욕망이 너무 강해서 자식의 욕망을 압도할 때 발생합니다. 이런 충돌은 결혼과 직업 부분에서 자주 발생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그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선택한 결혼 대상자가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혹은 자식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부모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때 부모의 욕망과 자식의 욕망은 서로 충돌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무수히 많은 영화나 연극, 책의 소재로 등장하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그 결말은 때로는 비극으로 때로는 해피 엔딩으로 끝납니다.
이번 사례는 직업에 대한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입니다. 서른을 앞두고 있는 직장인과 그(그녀)의 부모 간에는 직업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 세대에서 중시하는 직장의 기준은 안정성과 지속성입니다. 돈이 근본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직장은 대기업과 전문직입니다. 그에 반해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직장은 불안정하더라도 재미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 나갈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런 점에서 기성세대의 직장관이 아날로그 정착민이라면 젊은 세대의 직장관은 디지털 유목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식으로 생각해야 할 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부모님이 진정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해입니다. 부모 세대는 그럴싸한 직장,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좋은 학벌이 미래를 보장한다고 믿는 세대입니다. 부모님이 자식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시고 남들의 시선에 더 신경 쓰이는 듯이 보일지라도 사실은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자식으로써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부모의 인정보다 자기 자신의 인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인정하면 굳이 부모에게 인정받는 것이 필요 없습니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산다면 그게 부모 눈에도 보입니다. 부모가 바라는 것은 오직 자식의 행복일 뿐입니다. gomin119@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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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