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바람, 소리로 여는 새로운 공간-‘스페이스 다’ 개관 기획전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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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화·정만영·안재국 작가 3인
낙동강 하구 특정 장소 배경으로
시각·청각·공간적 경험으로 풀어

새 전시 공간 연 박태홍 목공예가
“서부산 문화공간 자리매김할 터”

부산의 설치미술가인 김경화, 정만영, 안재국이 지난 3일부터 한 달간 사하구 스페이스 다(SPACE-DA, 空間-多)에서 ‘숨, 바람, 소리’ 3인 기획전을 열고 있다. 사진은 설치 전경. 스페이스 다 제공 부산의 설치미술가인 김경화, 정만영, 안재국이 지난 3일부터 한 달간 사하구 스페이스 다(SPACE-DA, 空間-多)에서 ‘숨, 바람, 소리’ 3인 기획전을 열고 있다. 사진은 설치 전경. 스페이스 다 제공
지난 3일 설치 작업이 한창인 안재국, 정만영, 김경화(왼쪽부터)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은영 기자 key66@ 지난 3일 설치 작업이 한창인 안재국, 정만영, 김경화(왼쪽부터)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 사하구 다산로 12-4(다대동) 일대는 과거 홍티마을(현재 무지개공단으로 홍티포구 일대)의 서쪽 끝단 구역에 포함된다. 윤경혜 대표와 박태홍 목공예가가 운영하는 (주)한디자인그룹이 지난해 이곳으로 사무실을 이전한 데 이어 2층 공간을 ‘스페이스 다(SPACE-DA, 空間-多)’라는 이름을 내건 전시장으로 탈바꿈시켰다.

부산의 설치미술가인 김경화, 정만영, 안재국이 한디자인그룹 초대로 지난 3일부터 한 달간 ‘숨, 바람, 소리’ 3인 기획전을 열고 있다. ‘무지개 홍(虹)’에 고개를 뜻하는 우리말 ‘언덕 치(峙)’가 합쳐진 옛 홍티마을 포구에서 열리는 기획전이다. 낙동강 하구라는 특정 장소를 배경으로, 사라져가는 생명, 이동과 노동의 기억, 인간과 자연의 연결 구조를 시각·청각·공간적 경험으로 풀어낸다. 공간의 첫 소개를 기념하는 장소 선언적 전시로는 안성맞춤이다.

다만, 내비게이션 주소를 찍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일대가 공장지대여서 살짝 당황할 수 있다. 전혀 전시 공간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지만, 한디자인그룹 1층의 육중한 철문을 밀고 들어선 뒤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면 딴 세상이다.

부산의 설치미술가인 김경화, 정만영, 안재국이 지난 3일부터 한 달간 사하구 스페이스 다(SPACE-DA, 空間-多)에서 ‘숨, 바람, 소리’ 3인 기획전을 열고 있다. 사진은 설치 전경. 스페이스 다 제공 부산의 설치미술가인 김경화, 정만영, 안재국이 지난 3일부터 한 달간 사하구 스페이스 다(SPACE-DA, 空間-多)에서 ‘숨, 바람, 소리’ 3인 기획전을 열고 있다. 사진은 설치 전경. 스페이스 다 제공
부산의 설치미술가인 김경화, 정만영, 안재국이 지난 3일부터 한 달간 사하구 스페이스 다(SPACE-DA, 空間-多)에서 ‘숨, 바람, 소리’ 3인 기획전을 열고 있다. 사진은 설치 전경. 스페이스 다 제공 부산의 설치미술가인 김경화, 정만영, 안재국이 지난 3일부터 한 달간 사하구 스페이스 다(SPACE-DA, 空間-多)에서 ‘숨, 바람, 소리’ 3인 기획전을 열고 있다. 사진은 설치 전경. 스페이스 다 제공
낚싯줄로 만든 안재국의 ‘공간유희’(2025) 작품 일부. 김은영 기자 key66@ 낚싯줄로 만든 안재국의 ‘공간유희’(2025) 작품 일부. 김은영 기자 key66@

1층 입구서부터 눈길을 사로잡은 건 안재국의 ‘공간유희’(2025) 작업이다. 길이 30m에 달하는 이 작품은 지름 3㎜ 낚싯줄을 엮어 그물 형태로 만든 조형물이다. 지난해 중구 동광동 한성1918에서 열린 ‘2025 기후 위기 탄소중립 with 비치코밍’(이하 한성1918 비치코밍) 기획 전시에서 선보였던 작품이다. 설치 공간이 달라지니 또 다른 느낌이다. 해양 생물을 연상시키는 형태는 인간과 자연을 잇는 연결의 세포, 생명의 원형과 태생의 시간을 상상하게 만든다. 노동 집약적 대형 조형물인 만큼 작업 과정도 지난했던 것 같다. “30m를 완성하려면 하루에 1m씩 한 달을 꼬박 매달려야 해요. 하루 종일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낚싯줄 엮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깜빡깜빡 졸기도 해서 의자에 앉은 채 넘어지기도 하고….” 안 작가는 웃으며 말했지만, 원양어선 그물 작업이나 진배없겠다 싶었다.

‘바람아 불어라’ 작품을 설치 중인 정만영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바람아 불어라’ 작품을 설치 중인 정만영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지난 3일 설치 작업이 한창인 ‘스페이스 다(SPACE-DA, 空間-多)’ 현장. 김은영 기자 key66@ 지난 3일 설치 작업이 한창인 ‘스페이스 다(SPACE-DA, 空間-多)’ 현장. 김은영 기자 key66@

2층 공간에 올라서면 어디선가 ‘쏴 쏴-’ 파도 소리가 메아리친다. 한쪽 벽면을 차지한 대형 모니터에는 진우도 풍경이 펼쳐진다. 그 앞엔 낙동강 하류 모래톱과 황포돛배·소금배의 이야기를 사운드로 풀어낸 정만영의 ‘바람아 불어라’(2025, 나무와 앰프, 스피커, 컴퓨터 등)가 설치돼 있다. 지난해 가을 스페이스 원지에서 열린 부산판화가협회의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전시와 한성1918 비치코밍 기획전에서도 만났지만, ‘스페이스 다’ 3인전으로 다시 뭉치니 반갑다. 이 작품은 관람객이 직접 노를 저어 바람을 일으키는 순간, 스피커를 통해 파도 소리가 거세게 울려 퍼지도록 만들어졌다. 체험형 사운드 설치 작업을 선보여 온 정 작가는 “소리는 과거의 노동과 이동의 흔적을 현재의 공간으로 불러오며 관람객을 시간의 흐름 속으로 이끈다”고 설명한다.

옆에 있던 김경화 작가가 거들었다. “한성1918 비치코밍 전시 때 정 작가 작품이 낙동강 지역의 깃대종과 멸종위기종을 주제로 작업한 제 작품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2025, 천과 실) 바로 옆에 있었는데, 파도 소리에 섞여서 간간이 들리는 새소리가 진짜 좋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새소리는 옆자리 김 작가 작품을 배려해 정 작가가 뒤늦게 추가한 것이었다. “부산에서 활동을 오래 같이하다 보니 자기 작품뿐 아니라 옆 사람 작품도 챙기게 되나 봐요.”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깃대종을 설명하는 김경화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깃대종을 설명하는 김경화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김경화 작가의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작품 일부. 한가운데 낙동강 깃대종 대모잠자리가 보인다. 김은영 기자 key66@ 김경화 작가의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작품 일부. 한가운데 낙동강 깃대종 대모잠자리가 보인다. 김은영 기자 key66@
김경화 작가의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작품 일부. 한가운데 낙동강 깃대종 큰고니 모습이 보인다. 김은영 기자 key66@ 김경화 작가의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작품 일부. 한가운데 낙동강 깃대종 큰고니 모습이 보인다. 김은영 기자 key66@

김 작가의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지름 400㎝에 달하는 대형 구 작업으로, 낙동강의 대표적인 깃대종인 고니류(큰고니 등)와 대모잠자리를 비롯해 남생이, 수달, 상괭이, 반달곰, 큰오색딱따구리, 노랑부리저어새, 매, 먹황새, 동백나무, 변산바람꽃 등 다양한 동식물로 구성됐다. 작가는 생태 기록을 넘어, 인간의 시선에서 밀려난 생명을 조형 언어로 호출하며 사라짐과 기억 공존의 윤리를 질문한다. 김 작가는 이 작업 후에 낙동강에 날아온 큰고니 지킴이를 자처했고, 얼마 전에는 ‘큰고니 환송제’에도 참여했다. 작업이 작업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김 작가 작업도 ‘노가다’의 연속이다. “지구 생명 덩어리처럼 여겨지는 큰 구 하나를 만드는 데 두 달 반 정도 걸렸어요. 무명천을 염색한 뒤 동식물 모양을 하나하나 만들어서 오리고 붙이고 일일이 박음질을 했지요. 앞뒤를 다 볼 수 있도록, 안감까지 총 4번의 그림을 그렸어요. 작품 앞면만 보지 말고 이면도 꼭 봐주세요. 그림자까지 보면 더 좋고요.”

지난 3일 설치 작업이 한창인 ‘스페이스 다(SPACE-DA, 空間-多)’를 찾았을 때 박태홍, 안재국, 김경화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지난 3일 설치 작업이 한창인 ‘스페이스 다(SPACE-DA, 空間-多)’를 찾았을 때 박태홍, 안재국, 김경화 작가. 김은영 기자 key66@

세 사람이 전시를 통해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세 사람만으로 이뤄진 전시는 처음이다. ‘스페이스 다’를 실제 운영할 박태홍 작가의 선택(pick)인 셈이다. 박 작가는 “연 2~3회 환경 관련 설치전과 다양한 인문학 강좌와 음악회 개최를 계획 중”이라며 “서부산권에서 주목받는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전시는 4월 3일까지.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토·일요일 휴관). 문의 051-262-4177.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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