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내 아이는 학폭 피해자다!
김효정 젠더데스크
고1 때 학폭 당한 후 학교 자퇴
1년 방황 끝 수능 준비 시작
학교 밖 청소년 삶 고난 연속
누구나 약자 될 수 있다는 사실
오늘 칼럼은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연팔이’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의도치 않게 지난 2년여 동안 소수자(?)의 삶을 경험했고,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나의 아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폭 피해를 당했고, 결국 2학년이 시작되며 자퇴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개근할 정도로 학교를 좋아했던 아이가 고등학교 입학하며 결석이 잦아졌다. 억지로 교복을 입혀 학교에 보내려던 순간, 아이는 과호흡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그제야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아이는 어렵게 말을 시작했다. 학교에 심하게 놀리며 몸을 부딪치는 무리가 있다고 했다. 하지 말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가해 학생들은 모두 상위권 성적으로, 공부 면에서는 학교에서 인정받는 기대주였다. 담임은 가해 학생의 자술서를 받고 적당히 화해시키는 걸로 사건을 끝냈다. 학교와 가해 학생에 대한 분노가 컸지만, 결론적으로 우린 아무것도 못했다. 학폭위를 열고자 했지만 “빨리 여기를 떠나고 싶다”는 아이의 호소에, 피해자인 우리가 되레 도망치듯 그 학교를 나왔다.
병원에서 받은 아이의 병명은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공황장애’ ‘(환청·환시) 조현병’ ‘대인기피증’이었다. 그 후 1년간 아이는 스스로를 방에 가두고 자책과 자해를 반복했다. 힘든 시간을 견딘 후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학교에 소속되지 않은 청소년의 삶은 쉽지 않았다. 다수, 주류가 아닌 소수자로 산다는 건 또래 친구가 받는 복지와 정보에서 외면돼 뭐든 혼자 해결해야 했다.
대한민국에서 10대 후반 모든 청소년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학교에서 공부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평일 낮 학교가 아닌 곳에 있는 아이는 자주 의뭉스러운 시선을 견뎌야 했다. 일반 고3들은 지역 교육청, 학력평가원의 모의고사로 수능 전까지 성적을 점검하고 최신 정보를 바탕으로 담임과 수시·정시 전략을 준비하지만, 아이는 그 모든 것에서 제외된다. 당장 학교 밖 청소년은 모의고사 응시조차 고난이다. 학평 모의고사만 응시할 수 있고, 그마저 남은 자리를 찾기 위해 학원마다 전화를 돌려야 한다. 어렵게 자리를 찾으면 마감될까 싶어 당장 돈을 들고 뛰어야 했다.
물론 모의고사도 수능시험도 모두 비용을 내야 한다. 또래의 친구들이 무료로 급식을 먹고 예고된 날에 모의고사를 응시하는 게 당연하다지만, 학교 밖 아이에겐 당연한 게 없다. 청소년 센터에 등록하면 식사 쿠폰을 받을 수 있다기에 찾아가니 예산 부족으로 이번 달은 식사 지원이 힘들다는 답을 들었다. 예산 문제로 학교가 급식을 주지 않았다면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현역 지원자의 특권이라고 불리는 수시 모집은 생기부가 없는 우리 아이에겐 논술 빼고는 가능한 선택이 없었다. 100점의 검정고시 성적표를 받았지만, 아이가 희망하는 서울의 대학들엔 쓸모없었다. 자퇴 소식을 들은 주변에선 “의대에 가기 위한 전략이네”라며 속 모르는 소리로 마음을 찔렀고, 그야말로 ‘할많하않’이었다. 코로나로 중학교 수학여행이 취소됐고, 자퇴로 고등학교 수학여행조차 가지 못한 아이에게 “수학여행은 어디로 갔냐”라는 질문들이 아프게 꽂혔다.
차별과 편견으로 힘든 삶을 산 소수자에 비해 배부른 투정처럼 들릴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다’라는 사실이다. 나조차 생각하지 못했고, 대부분 자신은 그저 보통의 다수라고 생각하겠지만, 어느 장소 어떤 상황이 닥치면 순식간에 외로운 약자가 된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모른 체하면 안되는 이유이다.
지난 겨울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는 친구가 갑자기 다리를 다쳐 목발에 의지해야 했다. 약자를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며 집회를 연 친구였는데, 윤석열 탄핵 집회 후 이어진 거리 행진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 다른 이의 보폭을 맞출 수가 없었다. 친구는 그때 처음으로 가쁜 숨을 쉬며 자신처럼 낙오된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배리어프리 관점에서 장애인도, 몸이 아픈 사람도 시위에 참여하는 방법을 준비해야 한다는 걸 몸소 경험한 것이다.
언론사를 비롯해 정부 기관들이 젠더데스크, 인권데스크, 다양성데스크를 운영하는 것도 소수자가 느낄 수 있는 차별을 지적하고 그들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는 데 노력하겠다는 의미이다. 부산일보는 국내 언론사로선 두 번째로 젠더데스크를 설치해 지난 5년간 운영했고, 현재 여러 기자가 참여하는 젠더위원회로 확대 운영할 것을 고민하고 있다. 윤리와 인권, 다양성 존중은 기자와 ‘기레기’를 구분하는 최소한의 장치이지 않을까 싶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