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휩쓰는 K콘텐츠, 현지 문화 존중해야 지속 성장 가능"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한-베트남 합작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공동제작 참여 베트남 현지 법인 최윤호 대표
베트남 관객 200만 돌파 흥행 업고 한국 개봉
"제목 느낌과는 달리 상당히 따뜻한 가족 영화"
부산 'FLY 영화제' 포럼에서 제작 경험 공유
"일방 투자 시대는 끝나…세밀한 현지화 중요"


지난 5일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베트남 공동 제작사 SATE 최윤호 대표. 그는 지난 3~6일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2025 FLY 영화제' 포럼에 초청받아 한-베트남 공동제작 사례를 소개했다. 김희돈 기자 지난 5일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베트남 공동 제작사 SATE 최윤호 대표. 그는 지난 3~6일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2025 FLY 영화제' 포럼에 초청받아 한-베트남 공동제작 사례를 소개했다. 김희돈 기자

“시나리오를 봤는데, 아~ 이건 되겠다는 느낌이 확 오더라고요.”

베트남 영화 제작사 SATE(SIDUS AND TEU ENTERTAINMENT) 최윤호 대표는 3년 전 모홍진 감독의 한국-베트남 합작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시나리오를 보고 첫눈에 성공 가능성을 알아봤다고 한다.

영화는 치매에 걸려 때론 자신마저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 레티한(홍다오)을 모시는 호찌민 거리의 이발사 환(뚜언쩐)이 한국에 사는 이부형에게 엄마를 데려다 주기 위해 서울로 오는 여정을 그렸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과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통해 베트남에서 인기가 높은 정일우가 레티한의 젊은 시절 한국인 남편 정민으로 출연한다.

대학에서 영화 동아리 활동을 한 최 대표는 졸업 후 CJ ENM에 입사해 배급팀, 투자팀, 기획제작팀을 거치며 영화인의 길을 걸었다. 10년쯤 ‘영화 밥’을 먹었을 무렵 회사에서 베트남 진출이 논의되자 과감히 새 시장 개척에 뛰어들었다. 그가 베트남에서 참여한 첫 작품은 황동혁 감독의 ‘수상한 그녀’ 리메이크작. 기획부터 현지 감독 선정까지 맡아 프로듀서로 참여한 베트남판 ‘내가 니 할매다’(2015)가 현지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대박’을 쳤다. 이를 계기로 최 대표는 정식 주재원으로 베트남에 상주하며 한국 흥행작 리메이크에 매달려 ‘써니’와 ‘오싹한 연애’ 등을 잇달아 히트시켰다.

한국-베트남 공동제작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스틸컷. 싸이더스 제공 한국-베트남 공동제작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스틸컷. 싸이더스 제공

이후 독립을 선택한 최 대표는 ‘내가 니 할매다’를 연출한 판지아녓린 감독의 안뜨스튜디오(Anh Teu Studio), 한국의 싸이더스와 합작법인 SATE를 설립했다. 최 대표는 SATE와 한국의 모티브픽쳐스(주)가 투자와 제작사로 공동 참여한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가 사실상 한-베트남의 공동제작 1호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전에도 한국 자본이 투입되거나 한국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은 여럿 있었지만, 양국 제작진이 기획 단계부터 제작 과정 전반에 걸쳐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한 것은 처음이라는 설명이다. 공동제작 원칙은 자본 투자와 참여 스태프 인원, 촬영 횟수(한국 12회, 베트남 13회) 등 모든 부분에서 지켜졌다.

지난 8월 베트남에서 개봉한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15일간 관객 수 1위를 달리며 200만 명을 돌파하는 흥행 성적을 얻었다. 연간 영화 관람객 수 5000만 명, 역대 관객 수 1위 영화가 800만 명 수준인 베트남 시장에서 200만 명 돌파는 ‘대박’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 문화 영향이 큰 베트남은 부모에 대한 효와 공경을 중시하는 사회다. 최 대표는 다소 패륜적으로 들리는 제목의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공동제작의 힘’이라고 말했다. 동등한 관계의 실질적인 공동제작을 통해 베트남의 문화나 정서와 차이가 나는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대사를 다듬거나 촬영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K팝이나 K드라마 등 한국 콘텐츠가 동남아 국가에서 인기가 높지만, 현지 문화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마케팅이 계속 통할 거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라면서 “상대 문화를 존중하는 자세로 한층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베트남 공동제작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스틸컷. 싸이더스 제공 한국-베트남 공동제작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스틸컷. 싸이더스 제공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베트남 흥행을 업고 미국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에서는 지난 5일부터 전국 CGV 상영관을 통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최 대표는 “자극적인 제목과 달리 상당히 따뜻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가족영화”라고 소개하며 “한-베트남 합작영화가 한국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최 대표는 지난 3~6일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진행된 ‘2025 FLY 영화제’에 초청받아 공동제작 과정을 소개하고 다시 베트남으로 향했다.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