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재연된 필리버스터와 ‘살라미’…이재명 정부 시작부터 극한 충돌
민주당, 방송법 상정…“쟁점 법안 순차 처리”
국민의힘, 필리버스터 총력…법안 저지 나서
이재명 ‘통합’ 강조에도…여야 강대강 대치
7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4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쟁점 법안 처리를 두고 정면 충돌했다. 민주당은 방송법 개정안을 시작으로 윤석열 정부 시절 거부권으로 무산됐던 법안들을 순차적으로 다시 상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국민의힘은 전면 필리버스터로 맞섰다. 이재명 대통령이 출범 초부터 협치를 강조했지만, 여야는 쟁점 법안마다 강경 대치로 맞서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중 방송법 개정안을 우선 상정했다. 단일 법안인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과 방송3법 중 방송법을 먼저 처리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노란봉투법 △2차 상법 개정안 △방송 관련 법안 등 나머지 쟁점 법안들은 8월 임시국회에서 순차적으로 처리할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추진 중인 쟁점 법안 5건 모두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예고한 상태다.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비상대책회의에서 “장기적인 주가 상승은 단순한 돈 풀기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라며 “더 쎈 상법이나 노란봉투법 강행으로 더더욱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이어 “최소한 기업을 옥죄는 입법 강행이 있어선 안된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의 세금폭탄으로부터 대한민국 주식시장과 경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날 의원총회에서는 민주당을 겨냥해 “의회민주주의를 송두리째 파괴하고 있다”며 “어느 법이 올라오든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로 싸우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방송3법을 ‘방송 장악법’,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안 등을 ‘기업 죽이기 법안’으로 규정하고, 본회의 발언을 통해 국민 설득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7월에도 채상병특검법, 노란봉투법, 방송법 등을 놓고 같은 방식의 필리버스터를 펼친 바 있다. 방송3법은 각각 독립된 법률로 구성돼 있어 모두 개별적으로 필리버스터 대상이 된다.
이날 필리버스터 첫 주자로 나선 신동욱 의원은 민주당 정청래 신임 대표를 겨냥해 “새로 뽑힌 여당 대표는 야당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이는 곧 국민과의 전쟁 선언”이라며 “야당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악수하지 않겠단 말을 무슨 뜻으로 해석해야 하느냐. 저희도 여당을 여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4일 상정한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5일 종료하고 표결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재적의원 5분의 3(180석) 이상 찬성으로 필리버스터 강제 종료가 가능하다. 국민의힘이 5개 법안 모두에 필리버스터를 걸 경우, 하나씩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이른바 ‘살라미 전략’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여름 휴가 등의 일정으로 8월 본회의는 21일부터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국민의힘을 “내란 세력”으로 규정하고, “검찰·언론·사법 개혁을 추석 전까지 완료하겠다”고 밝혀 속도전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여야 간 충돌이 한층 격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에도 여야의 극한 대치는 좀처럼 완화되지 않고 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출범 직후부터 야당과의 협치를 거듭 강조해 왔다. 취임 첫 일정으로 여야 대표들과의 오찬 회동을 마련했고, 메뉴로는 통합의 의미를 담은 ‘비빔밥’을 선택했다. 지난달 3일, 취임 30일을 맞아 진행한 첫 기자회견에서는 “마음에 드는, 또는 색깔이 같은 쪽만 쭉 쓰면 위험하다”며 “차이는 불편한 것이기도 하지만 시너지의 원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야당 대표 또는 여당 대표가 아니고 이제는 대한민국 전체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국민이 하나로 모일 수 있는 통합의 국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의 기조에도 불구하고 여야의 대치 정국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극한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