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빼고 광 낸 동네 목욕탕··· 폐업 후 ‘핫플’로 변신
김해시 등록 목욕장업 수 57건
코로나19 팬데믹 전 절반 수준
매매도 안 돼 목욕탕 콘셉트로
음식점·카페·술집 등 속속 개업
철거 비용·업종 변경 용이 이유
“MZ 성향 맞물려 시장성 형성”
“목욕 안 합니다.”
경남 김해시 전하동의 한 목욕탕 앞 입간판에 쓰인 글귀다. 분명 청수탕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고 출입문도 열려 있는데 영업을 안 한다는 거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목욕탕 굴뚝이 보인다. 그런데 이게 웬걸. 하늘 높이 뻗은 굴뚝엔 ‘청수탕 뒷고기’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목욕장업 폐업이 늘면서 김해시에서는 이를 활용한 이색적인 공간들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지난 2월 부모님이 35년간 운영하시던 목욕탕을 임대해 기존 인테리어를 그대로 살려 개업한 주경희 사장의 고깃집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주 사장이 운영하는 고깃집의 동선은 카운터와 탈의실, 욕탕 순으로 이어진다. 옷 보관함을 갖춘 탈의실에서도, 두 개의 온탕이 있는 내부 공간에서도 고기를 먹을 수 있다.
뉴트로 감성을 즐기는 MZ세대들은 SNS 등에 게재할 인생샷을 찍으며 웃음꽃을 피운다.
주 사장은 “지난해 목욕탕을 폐업하고 내놨는데 안 팔려서 고깃집을 차리게 됐다. 인테리어를 완전히 새롭게 할 게 아니라면 목욕탕 콘셉트를 살리는 게 낫다고 생각해 그대로 뒀다”며 “처음에는 손님들이 헷갈린다고 했는데 이제는 입소문이 나 대기 손님도 생겼다”고 말했다.
23일 김해시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김해시에 등록된 목욕탕은 57곳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인 2019년 2월 106곳에 비하면 거의 반토막 수준이다.
개점휴업 상태인 곳을 포함하면 더 적어진다. 생활양식 변화로 이용객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코로나 직격탄까지 맞은 탓이다.
전국적으로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행정안전부 목욕장업 현황을 보면 지난 5월 기준 전국 목욕탕 수는 5688곳이다. 최전성기로 불리던 2003년에는 목욕탕 1만 여개 업소가 성업을 이뤘다.
한국목욕업중앙회는 팬데믹 후 3년간 전국에서 목욕탕 1000여 개 업소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한다.
폐업한 목욕탕이 핫플로 변신한 김해의 사례는 청수탕 뒷고기뿐만이 아니다. 봉황동의 서부탕은 ‘카페’로 바뀌었고, 삼정동의 남산탕은 ‘맥줏집’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서부탕을 카페 ‘서부로스터스’로 바꾼 김병관 사장은 “이곳에서 서부탕이 40년 정도 영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19가 유행할 때 목욕업이 잘 안돼 내놓으신 걸로 안다”며 “가까운 곳에서 카페를 운영하다가 사업 확장을 위해 2022년 이곳으로 옮겨와 다시 문을 열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폐업 후에도 제 모습을 간직한 목욕탕 콘셉트 가게가 많은 이유로 건축 구조와 설비 상황, 비싼 철거 비용, 다양한 업종이 가능한 건축물 용도 등을 꼽았다. 비교적 크지 않다고 분류되는 목욕탕도 철거 시 수천만 원에서 1억 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제대 김민재(도시계획학 박사) 교수는 “목욕탕을 철거하려면 콘크리트 등 폐기물처리를 해야 해 비용이 많이 든다. 개조해 다시 사용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며 “목욕탕이 제2종 근린생활시설이다 보니 업종 전환이 쉽다는 점도 매우 큰 영향을 준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험과 감성을 중시하고 SNS를 즐겨 사용하는 MZ세대들의 성향과 맞물려 시장성이 생기는 것도 역할을 한다”며 “목욕탕은 정감 있는 동네 커뮤니티 공간이었다. 세대는 바뀌었지만 옛것을 현대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해 소비하는 양상이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경민 기자 mi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