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사후 역주행 인기곡 '엘리제' 후보는 누구?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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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있어서 명곡입니다/장금

부산이 바야흐로 클래식 시대로 접어든다. 부산시민공원에 들어선 클래식 전용 공연장 ‘부산콘서트홀’을 보노라면 괜한 자부심마저 느껴지는 이 기분의 정체는 뭘까. 클래식 애호가라서가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공연장을 찾은 횟수가 두 손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한데도 어느 순간부터 정명훈을 검색하고 조성진을 듣는 설렘의 정체 말이다.

그 이유가 궁금하던 때 눈에 쏙 들어온 책이 <이유가 있어서 명곡입니다>이다. 우선 피아노 그림이 인쇄된 표지의 문구가 눈길을 붙잡았다. ‘반짝반짝 작은 별’에서 ‘엘리제를 위하여’까지 (중략)명곡 뒤의 이야기. 어릴 때부터 흥얼거렸거나 더듬더듬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던 곡명이 반가워 스스럼없이 책장을 넘겼다.

‘바가텔 25번 가단조.’ 이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곡명이 베토벤의 대표작이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곡 ‘엘리제를 위하여’의 정식 이름이다. 저자는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이 상상력 자극 여부에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엘리제 후보군’ 여인들을 일일이 소개한다. 이 곡은 2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연주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베토벤은 이 곡이 이렇게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할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엘리제를 위하여’ 악보는 베토벤 사후 40년 만에 발견됐기 때문이다. 역주행도 모자라 사후주행까지 제대로 한 셈이다.

미국에서는 ‘ABC송’, 우리나라에서는 ‘반짝반짝 작은 별’로 알려진 모차르트의 ‘작은 별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 사실은 250년 전 프랑스 아기의 ‘사탕 타령’이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저자는 이 곡을 원곡은 프랑스 동요이고, 가사는 영국의 한 마을 다락방에서 태어난 시구이며,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불멸의 교재로 탈바꿈한 ‘다국적 음악 상품’으로 정의하며 계보를 정리한다.

<이유가 있어서 명곡입니다>는 이처럼 월광 소나타(베토벤), 터키 행진곡(모차르트), 캐논 변주곡(파헬벨), 트로이메라이(슈만), 아라베스크 1번(드뷔시), 헝가리 무곡 5번(브람스), 미뉴에트 G장조(바흐), 결혼행진곡(바그너), 유머레스크(드보르자크), 녹턴(쇼팽) 등 피아노 명곡 스무 편의 음표와 악보 사이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어떻게 명곡으로 남을 수 있었는지 분석하는 클래식 음악 교양서이다.

대학에서 작곡 이론을 전공하고 프랑스에서 음악학 석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학교 울타리를 넘어 팟캐스트 ‘클래식빵’을 7년째 운영하는 등 클래식 대중화에 진심인 교육자이자 연구자이다. 이 책 역시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람이 클래식을 즐길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교양서라고 해서 소소하고 얕은 읽을거리에 그칠 거라는 생각은 말자. 책장을 넘기다 보면 소주제마다 빼놓지 않고 배치한 악보를 만나게 된다. 귀로 들었을 때 잘 모를 수 있는 ‘추상 언어’를 눈앞의 실체로 전달하고픈 저자의 교육자 본능이 느껴지는 배려이다. 악보에 더해진 해설까지 읽다 보면 공연장을 찾는 ‘클래식 부심’이 조금 더 커질 것 같은 기분이다.

‘Minute Waltz, 그 무모한 도전’ ‘하농 취급 설명서’ ‘잘 치고 싶다면 밀당을 배워라!’ ‘I Got Rhythm의 또 다른 이름-리듬 체인지’ ‘모르덴트’ 등 중간중간 숨겨둔 쪽지 상식은 바위틈에서 보물을 발견하던 어릴 적 추억을 선사한다. 장금 지음/북피움/336쪽/2만 6000원.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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