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바다를 읽고, 세상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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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삼 국립해양조사원장

정규삼 국립해양조사원장 정규삼 국립해양조사원장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근대 세계사를 좌우했던 서구 열강은 바다를 통해 세상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그들에게는 두려움과 미지의 공간이었던 바다를 조사하고 바닷길을 탐험하며 세계를 연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1720년 프랑스 정부가 처음으로 수로국을 창설한 이래 영국은 1795년에, 미국은 1807년에 각각 수로국을 설립하여 근대적 바다 조사와 해도 제작을 시작하며 바다를 향한 경쟁은 본격화되었다.

우리나라의 해양조사는 1949년 해군본부 수로국을 시작으로 1963년 교통부 수로국을 거쳐 1996년 해양수산부 출범 이후 국립해양조사원에서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업무 변화에 따라 해양조사의 역할과 지향점도 변화해 왔다. 1950년대에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군함 작전을 지원했으나, 무역 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대형화되는 수출입 선박의 안전한 항로를 확보하는 역할로 기능이 확대됐다. 특히, 2000년대부터는 천리안2B호 인공위성 등 첨단 장비를 활용해 해양 기후변화 예측, 해안 재해 예방 등 해양에서 발생하는 각종 데이터까지 측정·수집하고 있으며, 인공지능 등 최첨단 기술의 등장으로 해양조사 기술은 더욱 고도화되고 있다.

UN에서는 해양조사의 중요성을 알리고 지속 가능한 해양의 활용을 위해 6월 21일을 ‘세계 수로의 날’로 지정했다. 우리나라는 2021년 ‘해양조사와 해양정보 활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같은 날을 ‘해양조사의 날’로 지정했다.

최근 급속히 발전하는 기술 혁신과 함께 해양조사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수중로봇과 자율운항선박 같은 무인 장비를 활용, 위험한 해역에서도 정밀하고 지속적인 조사가 가능해져 해양 안전 확보에 기여하고 있고,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해양예측모델 정확도를 높이고, 해무, 수온, 해수 유동, 이안류 등 다양한 해양 예측 정보를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분석하여 해양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해양공간을 3차원으로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해양의 효율적 관리와 지속 가능한 이용을 위한 새로운 정책 수립이 가능해지고 있다.

국립해양조사원도 해양조사 분야 기술혁신과 더불어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해나갈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해양조사 기술력은 국제사회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제수로기구(IHO)는 하나의 장비에서 전자해도뿐 아니라 실시간 해양 정보, 3차원 해저 지형 등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차세대 전자해도(해도 및 항행정보 통합표출) 도입을 앞두고 필요한 기술 검증과 교육을 담당할 거점 기구를 우리나라에 설립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또 IHO 위탁을 받아 개발도상국 해양조사 인력을 대상으로 매년 해양조사 및 해도제작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국립해양조사원은 지난 70여 년 동안 축적해 온 방대한 해양 조사 정보를 토대로 바다경제 활성화도 지원하고 있다. 지난 1월 미국에서 열린 2025 CES(국제 가전 박람회)에서 국내 업체가 국립해양조사원이 생산한 해도를 기반으로 개발한 앱으로 해양빅데이터 스타트업 분야에서 혁신상을 수상한 것은 해양조사 자료를 이용한 산업화의 첫걸음을 내디딘 사례라고 생각한다. 낚시, 서핑 등 해양 레저 활동과 관련한 스타트업 창업이 앞으로 더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국립해양조사원이 추진 중인 전국 연안 3차원 해저 공간 조사가 2027년 완료되면, 해상풍력과 해양자원 개발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창업도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해양조사는 단순히 해양의 물리적 정보수집에 그치지 않는다. 기후변화의 신호, 해류와 조수의 흐름, 바다 속 지형과 생태계의 숨겨진 역학 등 바다의 모든 것을 읽고 해독하여 사람과 바다를 연결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지난 6월 21일은 다섯 번째 해양조사의 날이었다. 국립해양조사원(부산 영도구 소재)에서는 ‘바다를 읽고 세상을 잇다’라는 주제로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정부는 정확한 해양조사를 통해 해양에 대한 이해를 넓히며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왔다. 우리의 미래는 바다를 어떻게 읽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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