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장미 대선, 아들의 선택은?
최세헌 편집국 부국장
각 후보들 재탕·선심성 공약 여전
국민들의 열망·기대감에 못 미쳐
TV 토론으론 대선 후보 검증 한계
본보, 후보들 지역 공약 철저 해부
부산 발전 위해 후보 공약 살펴야
지난 주말 대학생 아들과 식사 자리에서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누구를 뽑을지 슬쩍 물어봤다. 지난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는지 알고 있기에 이번에는 지지하는 당이 변했는지 궁금해서였다. 아들의 대답은 나중에 TV 토론을 몰아서 본 뒤 결정하겠다는 거였다.
정치 저관여자인 아들의 입장에서는 최소의 시간적 비용을 들여 검증하겠다는 의도였다. 그 또한 한 유권자의 선택이기에, 현재 TV 토론은 너무 이미지화됐다, 자극적이고 네거티브한 질문과 답변만이 난무한다, 품격 있는 태도보다는 공격적인 모습이 부각된다, 후보들의 공약을 심층적으로 검증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TV 토론 방식은 개선이 절실하다 등의 말을 미처 꺼낼 수가 없었다.
부모의 잔소리가 싫을 유권자를 위해 조용히 “그래도 공약 정도는 한번 보렴”이라는 말로 마무리 지었다. 나중에 〈부산일보〉에 게재된 대선 후보들의 공약 기사를 링크해서 보내 줄 생각이다.
최근 언론의 선거 보도를 보면 예전과 달리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검증하는 기사들이 눈에 많이 띈다. 바람직하다. 어쩌면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많이 나서 기존의 경마식 보도가 재미없고 3년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탄핵당한 전 대통령에 대한 견제 심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래도 국민의 눈높이에 많이 근접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한 마디 더 얹자면, 자화자찬일지 모르나 지금까지의 〈부산일보〉의 대선 보도는 소위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 미디어’들을 압도한다. 어느 정파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철저하게 공약을 검증해 오고 있다. 특히 지방지 답게 부산·울산·경남의 지역 공약에 대해서는 지역민의 입장에서 낱낱이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언론의 돋보기 검증에 비해 이번 대선 후보들의 공약은 설익은 부분들이 많다. 탄핵에 따른 조기 대선으로 미처 준비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면죄부를 주기에도 성의가 많이 부족하다. 주로 예전 공약의 ‘판박이, 재탕’에 불과한 것들이 다수여서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 경기 침체와 ‘잃어버린 3년’으로 국민들이 이번 조기 대선에 거는 기대감과 열망이 높음에도 대선 후보들은 준비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우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제정, 산업은행 본사 부산 이전 등 기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추진하던 정책들을 다시 내놨다. 전혀 새롭지도 않다. 지역 특화 전략도 부족하다.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이나 산은의 부산 이전은 번번이 국회에서 막혀왔지만, 이에 대한 해법은 없다. 특히 산은 이전의 경우 인력이나 시스템 이전에 대한 로드맵조차 없다.
또 GTX(광역급행철도) 전국 확대 공약은 부산만의 공약도 아닐뿐더러 이미 부산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부산형 광역급행철도(BuTX)와 겹친다. 기존 정권의 정책을 다듬은 수준에 불과하다. 막대한 재정과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실현 가능성마저 의문이 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HMM 본사의 부산 이전, 해사전문법원 신설 등 ‘해양수도 부산’ 비전을 중심으로 한 공약을 내놨다. 해수부와 HMM의 부산 이전은 그동안 지역 해양수산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던 현안이었다. 민주당에서 지역의 요구사항을 대폭 수용한 파격적인 공약이다. 덕분에 지역 공약의 주도권을 이 후보가 선점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후보 측의 ‘해양수도 부산’ 공약으로 그동안 지역에서 최대 현안이었던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과 산은 이전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또한 제기되고 있다. 또 해사법원의 경우 인천의 반발로 부산과 인천에 두 곳의 본원을 둔다는 것 또한 선심성 공약을 남발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금융중심지 부산’에 방점을 찍었다. 부산에 본점을 둔 금융기관에 증권거래세 인하 등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부여해 실질적인 금융중심지로 도약시키겠다는 것과 더불어 데이터 허브 도시 조성, 북항 바다 야구장 건립 등 신선한 공약을 제시했다. 어느 정도 고민을 한 흔적이 엿보인다. 다만 해수부, HMM, 산은 등의 이전에는 부정적인 입장이어서 지역 현안과는 동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후보들의 공약이 아쉽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공약을 ‘성의 있게’ 제시한 후보가 낫다. 대통령을 공약만 보고 뽑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공약도 보지 않고 뽑아서는 안 된다. 부산의 유권자라면 조금의 손품을 팔아서라도 후보들의 지역 공약을 살펴보길 권한다. 잔소리가 싫을 유권자 아들에게도 다시 한번 그렇게 권하겠다.
최세헌 기자 corni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