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물쇠에 담긴 노부부 ‘사랑’, 사진으로 남은 초등 동창 ‘추억’
대구 팔공산
1985년 문 연 케이블카 올해 40주년
해발 820m 전망대 오르니 눈이 시원
수백 개 걸린 자물쇠엔 오랜 인연 가득
건립 역사 1600년 넘는 고찰 동화사
높이 33m 통일약사여래대불 인기코스
봄 맞아 몰린 관광객 추억 담느라 분주
봄인 데다 사월초파일을 앞두고 대구 팔공산과 동화사를 둘러보기로 했다. 예전에 꽤 멋졌다는 추억이 남아 있었던 터라 기대가 컸다. 마침 날씨도 좋아 초여름 같은 분위기여서 출발할 때부터 오랜만에 여행하는 기분이 컸다.
■팔공산 케이블카
팔공산 케이블카는 1985년 개통했다고 하니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당시만 해도 케이블카가 지금처럼 많지 않아 이곳은 큰 인기를 끌었다. 그 덕분에 주변은 관광단지로 조성됐고, 식당과 호텔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4년 전 대구를 찾은 외국인 대상으로 대구 관광지 선호도 조사를 실시했더니 팔공산 케이블카가 2위로 나타난 게 이곳의 인기를 잘 보여준다.
케이블카에 탑승하기 전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된 산채비빔밥 맛집에서 점심부터 챙겼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면 팔공산도 식후경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기대를 뛰어넘은 음식 맛에 케이블카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평일 낮이어서인지 케이블카 이용객은 많지 않았다. 5~10명씩 무리를 이룬 단체관광객이 오가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 덕분에 붐비지 않아 탑승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왕복 1만 3000원짜리 입장권을 사니 벽에 ‘6개월 이내 재방문하면 20% 할인’이라는 문구가 붙었다. 이런 혜택을 받으려면 입장권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연식이 있어서인지 케이블카는 약간 낡아 보인다. 땅에서 아주 높지도 않아서 그다지 무섭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케이블카 아래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곳곳에 피었다. 팔공산은 산 아래보다 평균기온이 10도 정도 낮다는데 아직 꽃이 만개하지 않은 모양이다. 팔공산의 5월은 꽃잔치라고 한다. 노란 개나리에 이어 진달래를 시작으로 철쭉과 산철쭉이 피어나면서 분홍색의 봄이 된다.
케이블카 정상역에 내리면 먼저 소원바위부터 찾아야 한다. 이 바위는 팔공산 3대 소원 성취 코스로 인기가 높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이 붙인 동전이 한두 개가 아니다. 바위 틈새에 잘 붙여 세운 동전도 있지만 대부분 껌이나 접착제를 붙여 떨어지지 않게 했다. 다들 이렇게라도 해서 소원을 성취했을까. 물어볼 수 없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소원바위에게 마음속 희망을 전달했으면 이번에는 반대편 전망대로 가야 한다. 전망대에는 이곳 높이가 820m라는 표지가 붙었다. 바위 위에 설치된 전망대에 서면 눈이 시원하다. 아직 완벽한 초록색은 아니지만 지금은 봄이라는 걸 알리는 푸른 잎이 온 산을 뒤덮었다. 한 남성은 높이 표지 앞에서 사업 관련 전화를 하느라 목소리가 크다. 여기까지 와서 꼭 산 아래 일 때문에 남의 여행까지 방해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 사람이야 일 때문에 떠들든 말든 다른 사람들은 시원한 풍경을 사진에 담느라 바쁘다. 멋진 한 컷을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오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족, 친구 사진을 찍어주면서 즐겁게 웃는 사람도 보인다.
한 노부부가 손을 잡고 러브가든이라는 곳으로 내려간다. 가만히 가서 안내판을 읽어보니 정자가 있고 사랑의 자물쇠 포토존이 있는 곳이다. 왜 애써 그곳으로 내려가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기도 해서 따라가 본다.
러브가든 입구에는 사랑터널이 설치됐는데 수십 개의 자물쇠와 각종 쪽지가 붙어 있다. 자물쇠에 녹이 슨 걸 봐서는 꽤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쪽지는 물론 플라스틱 명찰에 새겨진 글자도 비와 햇살에 바랜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자물쇠는 사랑터널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정자까지 100여m 산책로 곳곳에 자물쇠를 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한 모퉁이에 노부부가 나란히 섰는데 눈이 잘 안 보이는지 안경을 벗고 자물쇠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우리가 30년 전에 자물쇠를 건 곳이 여기 맞겠지?”
“그건 것 같아. 이것 같기도 하고 저것 같기도 하고.”
가만히 들어보니 오래 전 사랑을 속삭이면서 팔공산 케이블카에 데이트를 하러 왔고, 올라온 김에 이곳에 자물쇠를 걸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당시 두 사람이 건 자물쇠는 다음 사람이 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이미 철거됐을 게 뻔하다. 그래도 노부부는 젊었을 적 추억을 잊지 못해 다시 올라와 자물쇠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자물쇠는 없어졌겠지만 사랑만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아직까지 둘을 이어주고 있다.
■동화사
노부부의 사랑에서 뿜어져 나온 보랏빛 향기가 코끝에서 감도는 걸 느끼면서 동화사로 발길을 돌린다. 팔공산 케이블카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이니 지척이라거나,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동화사는 삼국시대이던 5세기에 만든 절이니 역사만 해도 1600년을 넘는 엄청난 고찰이다. 물론 이후 여러 차례 중창했으니 그때 모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상상할 수도 없는 오랜 세월을 인고한 고찰이어서인지 팔공산 케이블카와는 달리 평일인데도 동화사에는 방문객이 꽤 많다. 걸음걸이를 조심하지 않으면 몸이 부딪힐 정도다.
동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1992년에 만들어진 세계 최대 석조 약사여래불인 통일약사여래대불이다. 부처님 도움을 받아 통일을 앞당기자면서 만들었고 높이가 33m에 이른다는데 많은 사람이 동화사에 가면 꼭 찾는 이곳의 랜드마크다. 실제로 가까이 가서 보면 규모가 정말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통일약사여래대불 앞에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수천 개의 화려한 연등이 설치됐고, 연등 아래에는 맨발로 올라가 예불을 드릴 수 있게 자리가 깔렸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대불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물론 이들은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를 올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정의 행복을,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러 왔을 뿐이다.
사월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둬서인지 동화사 대웅전 앞마당은 물론 곳곳에 수천 개의 화려한 연등이 설치돼 하늘까지 가린다. 그 풍경이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아서 단체로 찾아온 많은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여기서도 찰칵, 저기서도 찰칵 하는 소리에 절에서 생활하는 것 같은 고양이는 편안하게 쉬지도 못한다.
한 스님이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지나가는 사이 초등학교 동창 사이라는 남녀 8명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나이로 봐서는 60대 중반은 넘은 것 같으니 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어언 50년이 다 돼 가는 셈이다.
어릴 때에는 다들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을 경제적 여유도 없었으리라. 깊은 추억을 남기기 위해 찍는 사진이 앞으로 10년 뒤 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기자도 나이가 비슷해지고 있으니.
팔공산 케이블카에서 노부부의 자물쇠를 만나고 동화사에서 초등학교 동창들의 사진도 구경하고 나니 더욱 실감나는 말이 있다. 여행은 직접 다닐 때에는 삶의 활력소이고, 세월이 흐른 뒤에는 인생의 추억이라는 말이다. 이것만으로도 앞으로 여행을 더 자주, 많이 다녀야 할 충분한 이유가 아닐까.
남태우 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