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전체가 무대… '디자인 수도' 밀라노의 경쟁력 [부산을 디자인 도시로]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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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디자인 위크’ 현장 취재

세계 최대 규모 가구박람회 개최
39개국서 2103개 업체 참여해
18개 지역서 장외 전시도 진행
작년 4500억 원 경제 효과 창출
“도시 문제 해결책” 공감대 갖춰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본 전시장인 피에라 밀라노 외에도 도시 공간을 활용한 여러 장외 전시를 선보였다. 브레라궁 중정에서 운영된 설치 작품 ‘빛의 도서관’(위)과 토르타나 지구의 옛 공장을 재생한 ‘슈퍼스튜디오 피우’에서 열린 ‘슈퍼디자인쇼’ 현장. 부산시 제공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본 전시장인 피에라 밀라노 외에도 도시 공간을 활용한 여러 장외 전시를 선보였다. 브레라궁 중정에서 운영된 설치 작품 ‘빛의 도서관’(위)과 토르타나 지구의 옛 공장을 재생한 ‘슈퍼스튜디오 피우’에서 열린 ‘슈퍼디자인쇼’ 현장. 부산시 제공

지난 12일, 이탈리아 밀라노의 유서 깊은 브레라궁에 들어서자 중정 광장에 나폴레옹 동상을 가운데 두고 원형 경기장을 사선으로 잘라낸 듯한 모양의 거대한 책장 모양 설치 작품이 시선을 압도했다. 유리 선반은 중정으로 쏟아지는 봄날의 햇살을 반사했고, 알아차리기 힘들 만한 속도로 회전하는 작품 속에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야외 독서를 즐기고 있었다.

■30만 명 방문하는 디자인의 성전

‘빛의 도서관’이라는 제목의 이 조각품은 세계 최대 가구 박람회인 ‘살로네 델 모빌레’가 영국의 무대 디자이너 에스 데블린에게 의뢰한 작품이다. ‘인간을 위한 생각’이라는 주제로 지난 8일부터 13일까지 열린 올해 박람회는 전시장 피에라 밀라노와 더불어 밀라노의 문화유산인 이 곳을 또 다른 전시의 장으로 활용했다. 작품을 위해 선정된 장서 2000권은 행사 이후 지역 도서관에 기증됐다.

〈부산일보〉 취재진은 세계의 디자인 수도 밀라노의 경쟁력을 살펴보기 위해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 현장을 찾았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살로네 델 모빌레(가구 박람회)와 이 기간 도시 전역에서 독립적으로 열린 ‘푸오리살로네(장외 전시)’를 통칭한다. 지난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약 2억 7500만 유로(한화 약 4500억 원)의 경제 효과를 창출한 것으로 분석됐다.

개막 사흘째 찾은 살로네 델 모빌레는 전 세계 가구와 인테리어 브랜드의 각축장이자 디자인의 성전이었다. 하이엔드 브랜드를 포함해 39개국 2103개 업체가 벡스코 7배 규모의 전시장 피에라 밀라노를 가득 채웠다. 격납고처럼 층고가 높은 전시 부스는 단순한 제품을 넘어 브랜드의 혁신과 창의성을 전시했다. 박람회 측은 올해 방문객이 30만 2548명으로, 68%가 해외에서 왔다고 밝혔다.

유로쿠치나(주방 가전·가구전)와 격년으로 열리는 유로루체(조명전), 35세 미만 신진 디자이너들의 ‘꿈의 무대’인 살로네사텔리테도 살로네 델 모빌레의 일부다. 백열전구 제조 회사로 시작해 국내 MZ 세대 사이에서 ‘감성 조명’으로 주목을 받은 일광전구는 시그니처 상품인 눈사람 조명을 들고 올해 유로루체 무대에 데뷔했다. 살로네사텔리테에는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 5명도 참가했다.

■폐공장부터 궁전까지 전시장으로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무대는 도시 전체다. 1980년대부터 자생적으로 생겨난 푸오리살로네는 갈수록 몸집을 불려 올해는 18개 지역에서 1650개 행사가 숨가쁘게 열렸다. 이탈리아 명품 가구 몰테니와 아르마니 까사를 비롯해 204개 브랜드의 상설 쇼룸과 갤러리 등이 밀집한 브레라 지구와 과거 공업지역의 빈 공장을 창작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토르토나 지구 등이 대표적인 전시 지역이다.

한국의 자동차 브랜드 기아도 브레라 지구에서 해외 작가와 협업해 단독 전시를 선보였다. 자동 장치가 거대한 거품을 내뿜고 동굴에서 원시의 소리가 울리는 설치 작품들은 ‘자동차’를 등장시키지 않고 브랜드의 혁신과 모험 정신을 전달했다. 동료들과 전시를 관람한 그래픽 디자이너 라우라 씨는 “올해 꼭 봐야 될 전시라는 추천을 받고 방문했다”면서 “빛의 움직임이 시각적인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브레라 지구의 디자인 행사를 조직하고 소개하는 ‘브레라 디스트릭트’의 파울로 카스티 대표는 “브레라 디스트릭트는 작게 출발했지만 16년 동안 브랜드화되면서 지금은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중심이자 행사가 끝나도 지속되는 도시의 문화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도시의 문화유산은 전시의 일부가 된다. 이탈리아 문화부가 운영하는 바로크 양식의 역사적인 건물 리타궁(팔라초 리타)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한국의 조병수 건축가가 이곳의 중정 ‘명예의 안뜰’ 초청 건축가로 선정돼 땅과 숲, 막사발을 테마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풀어냈다. 관람객들은 직사각형 플랫폼에 맨발로 올라 붉은 흙을 밟으면서 땅과 연결되는 감각을 만끽했다.

이탈리아 디자인 산업의 산실인 밀라노공대의 프란체스코 즐로 디자인대 학장은 “밀라노가 디자인 도시로 성장한 배경에는 디자이너와 건축가, 기관과 대학 등의 네트워크 자원와 함께 디자인이 도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해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산업디자인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황금콤파스상을 운영하는 이탈리아산업디자인협회(ADI)의 루치아노 갈림베르티 회장 또한 “디자인 도시는 민과 관, 산업계와 학계 등 다양한 주체가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협력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밀 라노(이탈리아)=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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