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글로벌허브도시의 ‘스톡피시’ 전략
장하용 부산연구원 미래전략기획실장
중세 유럽에서 북해의 대구를 말려 만든 스톡피시(Stockfish)는 단순한 수산물이 아니었다. 소금 없이도 수년간 보관 가능한 이 혁신적 기술은 노르웨이를 북유럽 무역의 패권국으로 만들었고, 한자동맹은 스톡피시 유통망을 장악해 유럽 경제를 좌우했다. 당시 '스톡피시'라는 말은 곧 기술력과 경제력의 상징이었다.
미래 부산에도 '스톡피시'가 필요하다. 미중 패권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격변의 시대, 부산은 단순한 항만도시를 넘어 동북아 핵심 거점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 열쇠가 바로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제정, KDB산업은행 본사의 부산 이전, 그리고 가덕도신공항의 성공적 건설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의 글로벌허브도시들은 각자의 '스톡피시'로 세계 경제의 중심에 섰다. 싱가포르를 보라. 작은 도시국가에 불과했던 싱가포르는 전략적 항만 위치와 창이공항이라는 교통 인프라를 바탕으로, 과감한 금융특구정책과 규제완화를 통해 아시아의 금융·물류 중심지로 도약했다. 글로벌 금융기관 유치, 인재 확보, 기업 친화적 세제 도입 등 통합적 접근으로 단 한 세대 만에 세계적 도시로 부상했다.
두바이는 더욱 극적인 변신을 이뤄냈다. 사막 위의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이곳은 세계 최고 수준의 두바이 국제공항과 제벨 알리 자유무역지대를 핵심 인프라로 삼아 중동의 비즈니스·관광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외국인 기업에 100% 소유권을 허용하고, 법인세와 소득세를 면제하는 파격적 조치로 글로벌 기업들을 끌어들였다.
스톡피시가 중세 국가의 생존을 좌우했듯,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산업은행 이전, 가덕도신공항은 대한민국과 부산의 미래를 결정할 핵심 인프라다. 특별법은 부산에 규제혁파, 세제혜택, 특구지정 등의 권한을 부여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할 견고한 토대가 될 것이며, 산업은행 이전은 동북아 금융허브로의 도약을 가능케 할 촉매제가 될 것이다. 또 가덕도신공항은 부산을 세계와 연결하는 날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세 가지 핵심 과제 모두 난항을 겪고 있다. 특별법 제정과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정치권의 지역 이기주의로 지지부진한 형국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가덕도신공항 건설마저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최근 부지조성 공사를 맡은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당초 7년으로 계약된 공기보다 2년 연장된 9년의 공사 기간을 요구하면서, 2029년 개항 일정에 빨간불이 켜졌다. 국토교통부가 이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 정부와 건설사 간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다. 고난도 해상매립 공사의 기술적 난제, 수의계약으로 진행된 사업자 선정 과정, 그리고 접근 교통망 구축 사업의 무응찰 등 복합적 문제가 얽혀 있다.
총체적인 난국을 맞이한 상황에서 부산은 싱가포르와 두바이의 스톡피시 전략에 주목해야 한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총리는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이민사회를 통합하여 도시국가를 건설하는 장기적 비전을 추진했다. 리콴유 정부는 정원도시 계획부터 공공주택 정책, 영어 공용화, 산업육성까지 철저히 계획된 도시국가 발전 전략을 시행했다. 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모하메드 역시 석유 자원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다각화를 일관되게 추진했다. 금융, 관광, 물류, 부동산 등 다양한 산업을 육성하며 중동의 비즈니스 중심지로 변모했다. 두 도시 모두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혁신적 '스톡피시' 전략이 있었기에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에서 배울 점은 명확하다. 가덕도신공항은 단순한 토목 공사가 아니라 부산의 글로벌 경쟁력을 좌우할 전략적 자산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항을 갖추고 있는 싱가포르, 두바이, 인천이 모두 글로벌 허브로 도약했음을 상기해야 한다. 가덕도신공항은 단군 이래 최대 토목 공사로 불리는 10조 원 이상의 대형 프로젝트이지만, 그 의미는 단순한 숫자를 넘어선다. 동북아 관문이자 부산의 새로운 '스톡피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부산에 스톡피시가 없다면, 대한민국은 심각한 불균형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다.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KDB산업은행 본사 이전, 가덕도신공항 건설은 단순한 지역 현안이 아니다. 국가균형발전의 초석이자, 동북아시아 경제지도를 재편할 국가 전략의 일환인 것이다. 공항 건설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은 단기적 편의나 정치적 고려가 아닌, 장기적 국가 비전 속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특히 부산은 싱가포르나 두바이와 달리 강력한 제조업 배후단지와 세계적 수준의 항만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금융과 첨단산업, 관광이 결합된다면 기존 글로벌허브도시들과 차별화된 부산만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가덕도신공항까지 더해진다면, 해운·항만·공항을 아우르는 종합 물류 플랫폼으로서 독보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국회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중세 스톡피시가 유럽의 판도를 바꾼 것처럼, 글로벌허브도시로의 전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특별법 제정과 산업은행 완전 이전에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나서야 하며, 가덕도신공항 건설 문제 역시 정부와 건설사가 국가 백년대계의 관점에서 지혜롭게 해결해야 한다. 현재의 공기 연장 요구를 단순한 계약 분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완벽한 공항을 건설하면서도 국가 발전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하는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역사는 결단하는 자에게 기회를 준다.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이 제정되고, KDB산업은행 본사가 부산으로 이전되고, 가덕도신공항이 성공적으로 건설되는 날, 우리는 오늘의 결단을 대한민국과 부산의 역사적 전환점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