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3색 性이야기] 사랑이 잠시 멈춘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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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현 성 심리학자

“우리, 잠시 떨어져 살아보는 거 어때?” 예전 같으면 이 말을 듣는 순간 불안이 높아지면서 머리에 ‘이혼'이라는 단어가 스치고 둘의 관계는 위기의 시작으로 접어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중년 부부 사이에서도 ‘포즈’(Pause, 멈춤), 즉 관계의 일시정지가 점점 자연스러운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이건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연인관계에서 권태를 느낄 때 하는 생각할 시간을 갖자의 중년 버전쯤일 것이다. 한 가족으로 같이 살았지만, 딱히 말로 설명되지 않는 불편, 권태를 느끼며 변화를 원할 때 생각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포즈를 선택하는 이유는 대개 명확하지 않다. 누구 하나가 잘못한 것도, 크고 격렬한 싸움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어느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감정 없는 역할’처럼 느껴질 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친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잠깐, 쉬어야겠다.”

‘멈춤’은 이혼도, 냉전도 아니다. 말하자면 사랑의 숨 고르기, 관계의 피로를 조용히 인식하고 나 자신을 되찾기 위한 시간이다. 함께 사는 세월 동안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고, 집안의 많은 책임을 나누다 보면 정작 ‘나’는 점점 희미해진다. 포즈는 그 희미해진 나를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이고, 동시에 그토록 익숙한 상대를 낯설게 다시 바라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심리학적으로 중년은 삶의 두 번째 전환기다. 결혼 초부터 새롭게 맡게 된 역할 중심의 삶에서 존재 중심의 삶으로 옮겨가야 하는 시기여서 부부관계 역시 재정비가 필요하다. 포즈는 그런 재정비를 위한 시도일 수 있다. 단, 이 ‘멈춤’이 진짜 쉼이 되기 위해선 전제가 있다. 서로의 동의, 그리고 돌아올 약속이 그것이다.

혼자만 멈춤을 원하면, 상대는 외면당했다 느낄 수 있다. 동의가 없는 멈춤은 ‘당신은 쉬는 중이라 했지만, 사실 나는 계속 기다리는 중’이라는 감정이 들어서 둘 사이의 틈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러니 포즈를 선언할 땐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다시 마주 앉을 준비는 어떻게 할지를 함께 이야기하고 약속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포즈는 위험한 카드일 수도 있다. 너무 오래 멈추면, 멈춘 줄도 모르게 사이가 멀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적절한 ‘멈춤’은 꺼져가던 관계에 산소호흡기 같은 역할이 될 수도 있다. 꼭 상대가 없는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좋다. 같은 집에서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가끔은 따로 자고, 따로 먹고, 따로 생각하는 것이 서로를 놓지 않기 위한 ‘간격’이 될 수 있다.

중년의 사랑은 불꽃같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꼭 불꽃같지 않아도 좋다. 다만, 꺼지지 않도록 돌보아야 한다. 그저 둘 다 지쳐서 식었거나 사라졌다고 여길 수 있는데, 그 땐 잠시 멈춰보는 것도 괜찮다. 꼭 다시 걷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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