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골목을 걷다
김정화 수필가
오래된 골목 앞에 서면 비단 나만 그러할까. 이웃집 담장이 다닥다닥 어깨를 겯고 당목 이불 홑청이 햇살을 되쏘던 곳, 녹슨 대문 앞에 ‘개조심’이란 팻말이 문패같이 걸렸고, ‘셋방 있씀’처럼 맞춤법 한두 군데 틀린 광고지가 담벼락에 붙어있던 곳, 덜 마른 보릿대에 보리까락을 섞어 태운 모깃불 연기가 초저녁달을 향해 사라지던 곳, 큰소리로 순덕, 말남, 금자를 부르면 땟국물 절은 옷소매를 걷으며 맨발로 뛰쳐나올 것만 같은 곳. 옛 골목들은 언제나 휘황 다단한 현대의 삶도 한갓되이 무화시켜버린다.
오늘은 꽃구경 대신 골목을 걷기로 한다. 이왕 걷는 길은 낡고 한적하면 좋겠다. 빈 의자가 보이면 잠시 앉아도 되고, 낯선 집 처마 밑의 제비집 사진을 찍어도 나무라지 않는 인심이 있고, 창문 사이로 흘러나오는 유행가 몇 소절쯤 귀동냥으로 들을 수도 있으니까. 어디서 날아온 씨앗들이 잎을 틔웠는지 모르지만 냉이꽃 더미에 실핏줄 같은 거미줄이 엉켜 있고, 길고양이 한 마리쯤은 돌옹벽 아래에 널브러져 오수를 즐기며, 털빛 빤지르르한 검둥이도 남의 집 문간에 오줌을 갈기고 도망을 가야 제법 골목답다.
휘어져 여유롭고 느려서 편안
막다른 골목 앞에서 울어본 사람
굴곡진 삶을 살아온 사람을 닮은 길
구불구불 곡선 길을 뒤돌아보니
골목길 벗어나던 한때의 내가 있다
주례동 뒷골목에 하늘처럼 높고 용 같은 기상을 의미하는 하늘미릇길이 있다. 지하철역으로는 냉정역 2번 출구와 가깝고 위로는 동서고가가 우뚝하며 주변에는 위풍당당한 고층 아파트가 솟았다. 그 현대식 건물 아래 옛 마을이 납작 엎드린 채 골목을 거느리고 있다. 물줄기가 흘렀을 법한 움푹 꺼진 땅에도 골 따라 축대를 세우고 지붕을 올렸다. 하천을 그대로 남긴 채 한쪽 옆으로 옹벽을 쌓고 다다닥 들어선 집들은 마치 현대판 수상가옥처럼 보인다. 젊은 사람들은 아파트로 떠나고 토박이 노인들만 남았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편견일까. 헤드셋을 머리에 얹은 소년이 쪽문을 열고 나온다. 낯선 이방인의 호기심도 이미 익숙해졌다는 눈빛이다.
엉킨 전선이 머리 위로 지나가고 담장 위로 널린 빨래들이 주인을 대신해 봄바람에 펄럭인다. 어떤 집은 얼룩진 석벽 중간에 작은 화분으로 눈가림을 해두었고 어떤 집은 활짝 열어 빈속을 드러내었다. 고만고만한 담벼락 앞에도 흙 채운 붉은 고무통이 즐비하다. 쪽파와 상추와 봄동배추가 동백 화분 사이로 키를 키웠다. 귀한 생명들이다. 뿌리 내린 곳에서는 기꺼이 버티고 살아내야 하리라.
골목이라고 모두 퀴퀴하고 암울하기만 할까. 현대 골목은 급격하게 변신하고 있다. 무채색 벽들은 연두 초록 분홍 노랑 파란색으로 각자의 색깔을 내고, 구도심의 골목은 역사와 문화를 재생시키고 스토리를 입히며 각종 페스티벌과 야행 축제를 개최한다. 예쁜 카페들이 문을 열고 아담하고 소박한 빵집과 밥집과 책방과 옷집도 감성을 더하니 화려한 골목길은 입소문을 통해 빠르게 번져간다. 부산만 하더라도 해리단길, 청리단길, 전리단길, 망리단길, 덕리단길 등이 핫 플레이스라는 명칭을 얻어 골목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삶을 가꾸고 생을 지켜내는 골목도 남아 있다. 집이 안이고 골목이 바깥이라는 사실을 무너뜨리게 만드는 길. 돗자리 하나만 깔면 골목 거실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 온기가 남은 곳. 이곳도 어떤 이에게는 가슴 뛰던 옛사랑의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길을 벗어나면 반듯한 도로가 나오겠지만, 태생이 깡촌이라 그런지 나는 후미지고 구부러지고 옆구리가 울퉁불퉁 불거져 나온 좁은 골목길이 좋다. 휘어져 여유롭고 느려서 편안하다. 무엇보다 막다른 골목 앞에서 울어본 사람들과 골목길처럼 굴곡진 삶을 살아온 자들을 닮은 길이니까. 구불구불 곡선의 길을 뒤돌아본다. 어둑한 골목길을 총총 벗어나던 한때의 내가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