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일필일침] 해외 작가 명성에 갇혀 버린 부산 디자인 정책
공공 디자인에서 중요한 요소는 사람
예술성보다 이용자 편의성 더 고려해야
지난해 이어 올해도 국제공모전하고
수십억 투입해 해외 작가 작품 설치
글로벌화 명목… 문화 식민지화 경계를
지역 정체성 담아야 도시 경쟁력 확보
거리를 걷다 보면 벤치나 가로등 등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가는 도시 시설물을 만난다. 우리는 이를 스트리트 퍼니처(street furniture)라 부른다. 공공 시설물로서 도시 및 공공 디자인의 주요 대상이기도 하다. 벤치, 가로등 외에도 버스 승강장, 교통 표지판, 신호등, 쓰레기통 등 다양한 시설물이 있다. 이들은 단순히 시설물을 넘어 도시 이미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를테면 프랑스 파리나 미국 뉴욕의 고풍스러운 가로등처럼 말이다. 특히 벤치는 단순히 앉아 쉬는 기능 외에도 사람들 간의 교류 공간으로 활용된다. 그래서 ‘도시를 보려면, 그곳의 벤치를 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만큼 벤치는 도시민 삶의 질을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로 평가된다. 일본 도쿄의 롯폰기힐스에는 사용자의 편익을 고려해 다양한 디자인과 높낮이의 벤치들이 배치돼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도시가 시민을 어떻게 대하는지 자연스럽게 읽어낸다.
부산디자인진흥원은 지난해 처음으로 추진한 부산형 우수 공공 디자인 국제공모전을 통해 광안리해수욕장에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한 가로등 2개와 벤치 2개를 설치한 바 있다. 라시드는 가구나 옷, 인테리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다. 한데 이곳에 설치된 그의 작품이 이용자 편의를 염두에 두고 설치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시민들은 선뜻 이 벤치에 다가가 앉질 못한다. 전문가들은 공공 디자인 설치 시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이용자의 편의성’를 꼽는다. 프랑스 작가 장 피에르 레노의 ‘생명의 원천’이라는 제목의 화분 모양 조형물이 근처에 있다 보니 벤치 보다는 예술 작품으로 먼저 다가온다. 누구나 쉽게 앉을 수 없다면 그건 이미 벤치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부산시는 지난해 11월 ‘빅 디자인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공공 디자인의 수준을 높여 부산을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공공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한다는 것이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설치하는 것이었는지 매우 궁금하다. 부산디자인진흥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억 원을 들여 부산형 우수 공공 디자인 국제공모전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시는 56억 원을 투입해 해외 유명 작가의 공공 시설물을 설치할 계획이다. 이 중에는 지방채도 포함돼 있다. 제대로 된 산업이 없어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떠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시기에 굳이 빚까지 얻어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을 거리에 설치해야 하는지 쉽게 납득이 가질 않는다. 침체된 도시를 깨어나게 하고 지루한 거리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데는 한 번의 자극으로 족하다. 공공 시설물을 언제까지 해외 유명 작가의 값비싼 작품으로 채울 것인가.
도시의 공공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이다. 성공한 도시는 공공 디자인의 중심에 사람을 두고 사람으로부터 디자인을 시작한다. 즉 물리적이고 시각적인 디자인 요소를 먼저 구축하고 이후에 사람을 맞추는 작업이 아니라 주민 또는 시민들의 요구와 형태를 먼저 분석해 디자인 결과물을 만든다. 아무리 훌륭한 무대 디자인도 배우가 연기하기 전까지는 완성되지 않는다. 연극도 관객 없이는 의미가 없다. 스트리트 퍼니처 같은 공공 디자인도 이를 이용하고 경험하는 사람들에 의해 완성되고 사람과의 교감에서 진가를 발휘한다는 것을 부산시가 깨달았으면 한다. 디자인은 다른 나라의 좋은 사례를 참고할 순 있다. 하지만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특성에 맞아야 한다. 우리는 종종 외부로부터의 ‘이식된 상징’을 강조하면서 엉뚱한 가치를 강요하기 일쑤다. 이 과정에서 도시의 정체성과 공공성은 소홀히 취급된다.
공공 디자인은 공공을 위한 디자인으로, 시민의 창조성을 활용하고 개발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하지만 부산시는 글로벌 허브도시를 추구하면서 지나치게 해외 작가의 명성에 의존하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설령 지역 작가들이 세계적인 수준에 조금 못 미치더라도 이를 끌어올릴 기회의 장을 제공하는 것은 지자체가 할 몫이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부산은 우리의 삶이 구현되는 소중한 장소다. 그렇기에 지역에 대한 애정과 지원이 더없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글로벌화라는 이름 아래 지역 문화는 점점 더 식민지화될 것이다.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탈리아 베네치아, 그리스 산토리니 등 지역성을 살려 성공한 도시는 많다. 공공 디자인이나 도시 디자인은 그 지역이나 도시의 고유성을 담아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자긍심이 되어야 한다. 이게 지속 가능한 도시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