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라벨 피아노 협주곡 2악장이 흐르는 밤
음악평론가
올해는 어느 때보다 풍성한 라벨 연주회가 기다리고 있다. 7일은 라벨(Maurice Ravel, 1875~1937)이 탄생한 지 정확히 150주년 되는 날이다. 조성진이 라벨 피아노 솔로 작품으로 해외 공연을 하고 있으며, 손열음과 고잉홈 프로젝트는 라벨 교향악 전곡 시리즈를 올리고 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도 라벨의 ‘라 발스’로 정기 연주회를 장식해 놓았으며, 부산에도 캐나다 국립아트센터 오케스트라가 내한해 손열음과 함께 라벨 협주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라벨은 드뷔시와 함께 인상주의 음악가로 분류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았다. 음악평론가 해럴드 숀버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드뷔시는 쇼팽, 구노, 마스네의 계보를 잇는 관능주의 작곡가였다. 반면 라벨은 리스트, 생상스, 포레처럼 객관적이고 정확한 음악을 썼다. 드뷔시의 음악은 공중을 두둥실 떠다닌다. 라벨의 음악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딱거리는 메트로놈 같다.” 동시대에 활동했지만 두 사람은 거의 교류가 없었다. 드뷔시는 두 명의 여인이 자살 소동을 일으켰을 정도로 요란한 연애사로 유명했던 반면, 라벨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그저 말쑥하게 잘 차려입은 신사의 품위를 항상 유지했을 뿐, 흔한 사랑 이야기조차도 남아 있지 않다.
라벨은 1929년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한 곡은 제1차 세계대전에 오른손을 잃어버린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위해서 작곡한 ‘왼손을 위한 협주곡’ D장조였고, 다른 한 곡은 협주곡 G장조였다. 라벨은 두 곡을 초연한 그해 10월에 자동차 사고를 당해 뇌를 크게 다쳤다. 그 후 투병 생활을 하다가 1937년 뇌수술을 받은 후 깨어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피아노 협주곡 G장조는 1932년 마르게리트 롱의 피아노와 작곡가 자신이 지휘한 파리 라무뢰 오케스트라 연주로 초연했다. 라벨은 평소 협주곡에 대해 “유쾌하고 화려해야 하며, 너무 심각하거나 극적인 효과를 겨냥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 왔는데 그 심정이 잘 나타난다. 모차르트적인 쾌활함이 1, 3악장에 가득 차 있고, 그 사이에 서정적인 2악장이 배치돼 있어 대비를 준다.
아다지오로 흐르는 2악장은 이 협주곡의 심장과 같은 부분이다. 라벨은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 2악장을 모델로 썼다고 했다. 피아노의 긴 독백으로 시작되는 솔로 부분의 멜로디부터 가슴이 먹먹해진다. 후반부에 오보에가 주제 선율을 받고 피아노가 아르페지오를 연주할 때쯤 되면, 시간이 이대로 계속 흘러가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바람에 부서지는 햇살처럼, 구름 사이 흐르는 달빛처럼, 음악이 몸을 감싼다. ‘몽환적’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사용하는 단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