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극우의 무거움
김형 편집부 차장
참 무거워 보인다. 자신만의 신념과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 족쇄에 채여 감옥에 갇힌 듯한 느낌마저 든다. 탄핵 정국에서 극우 세력이 보인 태도가 그렇다. ‘계엄 정당성’ ‘탄핵 반대’ 라는 주장에 매몰돼 다양한 관점이나 의견을 수용해야 하는 여유를 잃어버렸다.
극우 세력의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테레자가 떠오른다. 쿤데라는 이 작품에서 “가벼운 삶과 무거운 삶 중 무엇이 더 나은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무거움’ 은 고집스럽게 신념과 규범을 절대적으로 숭배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특정한 가치관을 절대적으로 고수하다 보면 결국 다른 의견을 받아들일 여지가 사라진다는 것이 쿤데라의 메시지다.
소설 속 테레자는 사랑을 삶의 필연적이고 절대적인 책임으로 받아들인다. 그녀는 이를 숙명으로 여기며, 관계 속에서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짊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랑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결국 자유를 찾지 못하고, 삶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며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오늘날 한국의 극우 세력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절대적 정당성으로 간주하며, 특히 비상 계엄의 타당성을 주장하고 탄핵 반대를 외친다. 그들의 태도는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시지푸스를 연상시킨다. 시지푸스가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바위를 끝없이 밀어 올리는 것처럼, 극우 세력은 편협한 사고라는 무거운 바위를 짊어지고 간다.
신념이 지나치게 무거우면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에서 테레자는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한국의 극우들은 사회적 폭력으로 그 무게를 표출한다. 폭동과 난동을 일으키며, 심지어 다른 사회 구성원을 향한 가학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쌓아온 헌법과 사법 체계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역사에서 이러한 극단적 사고가 파시즘과 나치즘 같은 광란의 시대를 불러온다는 점은 이미 증명됐다. 이런 경직된 사고방식이 집단적으로 확산되면 개인의 신념이 절대적 진리가 되고, 이는 강경한 이념 대립으로 이어져 전체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 문제는 극우 세력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도 사고의 경직성은 개인을 무너뜨린다. 흔히 말하는 ‘꼰대’ 와 ‘갑질’ 같은 용어도 여기서 비롯됐다. 자신의 가치관만을 기준으로 삼아 타인을 평가하고 억압하는 태도가 이러한 문제를 낳는다. 이러한 경직성이 심화되면 직장 내 폭력, 권위주의적 조직 문화, 수직적 구조 강화 등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극우 세력이나 꼰대들이 스스로 잘못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가해자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오로지 자신의 신념에 짓눌려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지속되면 결국 피해자들만 상처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집단은 사회와 조직, 그리고 개인에게 짐이 될 뿐이다.
좀 가벼워지자. 가벼워지면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을 볼 수 있다. 가벼움은 절대성에서 벗어나는 첫 걸음이다. 지나친 신념의 무게는 극단주의를 낳지만,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다양한 시각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신념의 무게를 내려놓을 때, 우리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김형 기자 m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