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연의 도시 공감] 지역산업, 관광 콘텐츠로 확장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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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컬바이로컬 대표

체험·스토리텔링, 도시 브랜드 형성
‘산업관광’으로 새로운 지역 성장 동력
소프트 파워 갖춘 도시로 발전 계기

2월은 졸업 시즌과 봄방학이 겹쳐 새로운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달이다. 설 연휴가 지나면서 다소 차분해질 즈음, 지역에서 초기 창업가들에게 투자하는 대표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국내 경기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이제는 ‘글로컬(Glocal)’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처음에는 다소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지만, 이내 궁금증이 생겼다. 글로컬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기준은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지역에서도 가능할까?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얼마 전, 미국 세인트마리대학(Saint Mary’s College)에서 2주간 기업 탐방 프로그램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20명의 학생이 대기업이 아닌, 지역의 스토리를 가진 기업을 방문하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다. 이에 부산 영도를 추천했다. 대평동 깡깡이 마을 주변의 수리조선 산업이 밀집한 공업소와 삼진어묵, 모모스커피, 스페이스 원지 등이 모여 있는 봉래동 물양장 지역을 소개했다.

학생들과 삼진어묵 매장 앞에서 만났을 때, 이들이 어묵을 잘 먹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여 ‘고로케’만 권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학생들은 매장 안으로 들어가 어묵을 직접 담기 시작했고, 직원이 “매운 고추튀김 어묵이 시그니처”라고 설명하자 즉시 집어 들고 맛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이어 어묵의 제조 과정, 판매량 등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고, 매장 카운터 앞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후 물양장 지역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모모스커피로 이동했다. 학생들은 커피 생산 과정과 이동 경로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유리창 너머에서 커피 제조 과정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리고 커피 드립백을 2~3박스씩 구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투어가 끝날 무렵, 한 학생이 “이곳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교수님은 “우선 한국어부터 배워야겠지”라며 웃었고, 내년에는 지역산업과 마케팅을 주제로 워크숍을 열고 싶다는 제안을 남겼다. 그 순간, 상품뿐만 아니라 지역의 전통산업 자체가 하나의 글로컬 산업관광 콘텐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산업관광은 교육이나 연구 목적으로 방문하는 관광객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반 관광객들도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체험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 뮌헨과 슈투트가르트에는 BMW, 벤츠, 포르쉐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들은 단순히 자동차 마니아들만 찾는 곳이 아니다. 자동차 관련 전공자뿐만 아니라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에게도 ‘성지’ 같은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서는 지역 경제의 역사, 기술 발전, 차량 연구뿐만 아니라 혁신적인 공간 디자인까지 함께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시 디자인과 굿즈들이 스토리와 함께 다채로운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어 방문객들의 몰입감을 높인다.

이뿐만이 아니다. 암스테르담, 삿포로, 칭다오, 더블린 등은 특정 산업과 도시 이미지를 연결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굴뚝이나 로고 앞이 자연스레 ‘포토존’이 되고, 내부에서는 맥주를 매개로 지역산업과 연계된 전시와 시음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이 과정에서 방문객들은 해당 도시를 찾는 명분을 얻는다.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월, 허쉬파크 등도 기업 브랜드와 도시 이미지를 결합한 성공 사례다. 결국, 이러한 도시들은 참여 기업과 지역 경제에 추가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부산은 제조업 기반의 다양한 산업군을 보유한 도시다. 100년 이상의 항만도시 역사를 지닌 부산은 물류 중심지로서 신발, 섬유, 수산가공, 주류, 식품가공, 자동차 등 경공업부터 중공업까지 폭넓은 산업군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산업관광 콘텐츠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물론, 당장 지역의 산업체들이 국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견학·시찰·체험을 제공하는 관광 형태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를 가능하게 할 테스트 프로젝트가 먼저 진행되었으면 한다. 우선 장소와 인적 자원을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부산상공회의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상공회의소에 전시된 내용과 발간된 자료만으로도 지역산업과 현장을 충분히 연결할 수 있다. 또한, 산업 유산, 기업 전시관, 구술 자료 등 흩어진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지역 대학과 협력해 ‘지산학(지역-산업-학계) 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산업관광 콘텐츠를 기획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했으면 한다. 아울러 특정 장소에 스토리를 부여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공공건축가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활동이 모이면, 부산은 단순한 관광도시를 넘어 지역산업을 기반으로 한 ‘소프트 파워’를 갖춘 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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