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하얼빈 빛낸 '태극전사들'
변현철 스포츠부장
쇼트트랙·빙속·피겨·설상 종목 선전
2017년 삿포로 대회 이어 종합 2위
최민정·김민선·차준환 예상대로 금
김길리·이나현 등 스타 재발견 성과
빙속 장거리 종목 세대교체 큰 숙제
피겨 남자 싱글 선수층 확대도 과제
8년의 기다림 끝에 찾아온 아시아 최대의 겨울 스포츠 축제인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이 8일간의 열전을 끝으로 지난 14일 막을 내렸다.
‘겨울의 꿈, 아시아의 사랑’을 슬로건으로 내건 이번 대회엔 역대 동계 아시안게임 중 가장 많은 34개국, 1200여 명의 선수들이 출전했다. 6개 종목 222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대한민국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16개, 은메달 15개, 동메달 14개를 획득해 종합 2위를 확정했다. 우리나라가 역대 동계 아시안게임 최다 금메달을 획득한 2017년 삿포로 대회(금 16·은 18·동 16개)에 버금가는 성적이다.
대한체육회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경기 단체의 분석 등을 토대로 우리 선수단의 목표 금메달 수를 11개로 잡았는데 태극전사들이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치며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은 삿포로 대회에 이어 종합 2위를 수성해 1년 앞으로 다가온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의 기대감도 더욱 커졌다.
태극전사들의 종합 2위 수성을 이끈 일등공신 종목은 역시 쇼트트랙이었다. 한국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 걸린 9개 금메달 가운데 6개를 수확하며 역대 동계 아시안게임 쇼트트랙 최다 금메달 타이기록을 썼다.
1999년 강원 대회와 2003년 아오모리 대회에서도 한국은 6개 금메달을 가져온 바 있다. 한국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6개 외에도 은메달 4개와 동메달 3개를 목에 걸어 총 13개 메달을 따냈다.
아시안게임 기록을 두 차례나 경신한 최민정은 한국 여자 선수 최초로 대회 3관왕에 올라 쇼트트랙 강국다운 위용을 뽐내는 데 앞장섰다. 또 지난 시즌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김길리는 첫 국제종합대회 무대에서 2관왕에 등극하는 뛰어난 기량을 과시했다.
다만 쇼트트랙 마지막 종목이었던 남녀 계주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남녀 모두 결승선을 앞두고 중국 선수들과 충돌해 메달 획득에 실패한 것이다.
스피드 스케이팅에선 ‘신빙속여제’ 김민선이 예상대로 2관왕을 차지했고, 2005년생 ‘샛별’ 이나현도 처음 출전한 아시안게임 무대에서 2관왕에 오르며 쾌속 질주를 함께 이끌었다. 김민선과 이나현의 맹활약으로 한국 빙속은 금메달 3개, 은메달 5개, 동메달 4개를 따내 쇼트트랙과 더불어 메달 사냥을 주도했다.
특히 한국 빙속의 간판으로 부상한 이나현을 재발견한 것이 큰 성과였다. 이나현은 노원고 재학 중이던 2024년 1월 여자 500m 주니어 한국 신기록, 주니어 세계 신기록을 연거푸 갈아치우며 한국 빙속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그는 조명을 받은 지 1년 만에 출전한 국제종합대회에서 굵직한 성과를 내며 내년 동계 올림픽 전망을 밝게 했다.
설상 종목의 선전도 특히 빛났다. 스노보드 슬로프스타일에서 이채운, 하프파이프에서 김건희가 정상에 올랐고,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 우승 후보로 꼽혔던 이승훈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를 비롯해 스키·스노보드를 통틀어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 동메달 6개가 나왔다. 러시아 출신의 귀화 선수 예카테리나 압바꾸모바는 한국 바이애슬론에 사상 첫 동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안기기도 했다.
하지만 빙속 장거리 종목 세대교체 숙제는 이번 대회에서도 드러났다. 만 36세 이승훈이 여전히 대표팀 장거리 선수들을 이끌었다. 이승훈은 남자 팀 추월에서 후배들과 은메달을 획득하며 역대 한국 선수 아시안게임 최다 메달(9개) 금자탑을 쌓았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나를 넘어설 기대주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우수한 선수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국내 훈련 환경이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에서 유일한 스피드 스케이팅장은 낡은 태릉 빙상장뿐이다. 이마저도 철거 이슈가 맞물리면서 제대로 된 보수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피겨 스케이팅에선 차준환과 김채연이 일본 출신 아시아 최고 피겨 스케이터인 가기야마 유마, 사카모토 가오리를 꺾고 극적으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차준환은 이번 대회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아 문제없이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이제 ‘포스트 차준환’ 찾기는 한국 피겨의 당면한 과제가 됐다. 차준환과 함께 출전한 김현겸은 국제 무대와 큰 격차를 보였다. 어린 유망주가 많은 여자 싱글과 비교했을 때 남자 싱글의 선수층은 너무 얇고 허약하다.
차준환의 컨디션에 따라 한국 피겨 남자 싱글의 성적이 좌지우지될 수 있는 환경이다. 당장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국가별 쿼터가 다음 달에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결과에 따라 배분된다. 차준환의 몸 상태에 쿼터 확보 수가 달렸다. 대한빙상경기연맹 차원에서 좀 더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