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보통 사람의 갈등과 동시대인의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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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화평론가

지난해 말, 영화 ‘하얼빈’이 개봉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한 사건을 다룬 영화였고 이전부터 기대를 모아온 영화였다. 실제로 이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연일 신기록을 세우며 흥행 가도를 끌어 올리는 듯했다. 하지만 어느새 영화는 예상과는 달리 주춤한 흥행 기세를 보이고 있다.

영화를 판단하는 기준이 관객 수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천만이라는 관객 수를 기록한 영화였지만 훗날 다시 보기 민망한 영화였다는 사실을 확인한 적도 있었고, 개봉 시점에서는 흥행몰이에 실패했지만 볼수록 아름다운 영화였다는 확신을 얻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얼빈’은 어떤 경우일까. 이 영화는 당대의 흥미를 끌어모은 경우이지만, 기대와는 퍽 다른 영화였던 것은 분명하다.

우민호 감독 영화 '하얼빈'

독립군의 고민과 어둠 담아

"오늘날의 어둠과도 맞닿아"

한국인들에게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울분과 격변의 소치로 각인되어 있다. 불법과 강압으로 조선을 패망시키고도 이를 인의와 합법으로 가장한 일제의 소행은, 분명 공분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악행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현재만 해도 그렇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난 이후 한국의 외교 방향과 대외 정책은 ‘친일’을 넘어 ‘숭일’로 돌아섰고, 그때마다 미래 화합이나 국가 연대와 같은 그럴듯한 논리로 치장되었다. 상대는 강제 병합과 무력 침탈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자세로 돌아섰고, 한국은 그러한 자세마저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돌아갔다. 강제 병합의 직전인 1909년 그때나, 굴욕적 대일 정책의 전성기 2020년대 한 시점에서, 안중근은 치욕과 비분을 씻어낼 강력한 상징이 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하얼빈’은 의거의 위대함보다는 그 과정의 어둠을 더욱 많이 그리고자 했다. 안중근은 좀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 황량한 강 위를 홀로 걸어야 하는 인물이었고, 그를 둘러싼 지사들은 표정에서 어둠을 지울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과연 ‘그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하는 의심도 무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역사를 알고 있고 안중근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어둠을 밀어낼 한 줄기 빛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는 있었지만, 영화 속 그 빛은 우리가 알던 안중근의 영웅적 풍모에 비해 미약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우민호 감독이 보고자 한 것은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이기도 했고, 영웅적 행적보다는 그 밑에 도사린 고민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얼어붙은 강을 당장 녹일 막연한 햇살보다는 그 시간에도 작은 어둠이라도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힘겨운 마음의 풍경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적지 않은 관객이 그 어둠을 무작정 반기지는 않는 것 같다. 비록 일시적 희망과 달콤한 위안일지라도, 모든 어둠을 해소할 수 있다는 믿음을 영화에서만이라도 원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분명 안중근의 의거와 그 이유를 보여 주었지만, 그를 통해 막연한 희망을 부풀리는 데에는 조심스러웠고, 오히려 그 희망 너머에 도사린 어둠과 고민을 보여 주는 데에 더 간절했다. 그리고 그 어둠은 2024~2025년의 어둠과 통하고 있다. 시대를 역행하는 폭력과 아집의 그림자는 지금도 한국 땅에 살아 있었고, 자기 뜻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위선적 지배자는 동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하얼빈’의 안중근은 비단 100년 이전의 사람만은 아니었고, 반드시 역사 속 영웅만도 아니었다. 회의와 고민과 의심과 불안을 여전히 떠안은 채 또 한 시대를 건너야 했던 보통 사람일 수 있고,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이어진 동시대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어둠을 보고자 한 것일 게다, ‘하얼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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