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제자리 찾기
서정아 소설가
보이는 것을 외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성실히 하고
가치를 끝까지 지켜내려 애쓸 때
모든 일은 결국 제자리를 찾고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다고 믿어
언제부터인가 아이가 어지럽다는 말을 한 번씩 했었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유튜브 너무 오래 봐서 그래. 일어나서 창문 열고 바람 좀 쐬어 봐.” 마치 한여름에 냉방을 하지 않은 곳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덥다고 호소하는 아이에게 “가만히 있으면 하나도 안 덥다”라고 말하는 꼰대 어른처럼 말이다. 물론 어떤 호소는 엄살일 수도 있지만, 어떤 호소는 절박하다. 고통의 경험치가 부족한 아이의 서툰 표현에서도 그 절박함을 헤아릴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
유튜브를 끄고 베란다로 나가 바람을 쐬어도 어지럼증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던지, 아이는 거실로 돌아와서 바닥에 대(大)자로 누워버렸다.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다고 했다. 토할 것 같다고도 했다. 그제서야 심각성을 느낀 나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몇 가지 검사를 해본 결과, 아이의 병명은 이석증(耳石症)이었다. 귀의 내부기관에 붙어 평형감각을 유지하는 작은 돌 같은 탄산칼슘 결정체를 이석(耳石)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어떤 이유로 제자리를 이탈하여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가 있다가 머리를 움직일 때 림프액을 휘저으면서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질병이라고 했다.
아이는 병원에서 이석 치환술을 받았다. 이석이 이동한 위치를 파악해서 머리와 몸의 위치를 반복적으로 조정해 가며 돌이 제자리를 찾도록 하는 물리치료 방법이었다. 치료를 받은 후 아이의 상태는 좋아졌다. 하지만 이석증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질병이라고 했다. 이석이 제자리를 찾았다 하더라도 고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그 돌은 언제든 다시 제자리를 이탈하여 흘러나올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러면 아이는 파도가 심한 배 위에 올라탄 것처럼 어지럽고 울렁이는 괴로움을 또다시 겪게 될 것이다.
생명에 지장이 없다 하더라도, 반복되는 고통은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그러니 그 작은 돌이 제자리에서 빠져나오지 않도록 애써야 하는 것이다. 병원에서 이야기해 준 생활 습관 개선책들을 허투루 넘기지 말고 늘 신경 쓰자고, 나는 아이에게 다시금 말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다짐했다. 아이가 보내는 작은 신호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말과 행동들을 쉽게 넘기지 말자고 말이다.
이번 겨울 내내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어지럼증에 시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자리를 이탈해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일들이 우리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속을 울렁이게 했다. 세찬 바람에도 결코 꺼지지 않는 응원봉의 불빛과, 한파에도 거리를 지키며 목소리를 내는 인간 키세스들의 굳건함이 다행히도 우리를 희망의 방향으로 이끌고 있지만, 그 희망의 연대를 통해 모든 상황이 마침내 제자리를 되찾는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방심하면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언제든 또 제자리를 이탈해 우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이석처럼 말이다.
용산에 위치한 가톨릭 수도원의 수도자가 응원봉을 높이 들고서 사람들을 수도원 건물로 이끄는 사진이 최근 화제가 되었다. 한파에 떨던 시위대에게 몸을 녹이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일이었는데, 홀로 기도하고 고행하던 검은 옷의 수도자가 추위에 떨고 있는 이들을 위해 수도원의 문을 연 일은 소박하지만 어떤 기도보다도 거룩한 행동이었다.
내게 보이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잘 살피는 일, 작은 신호들을 대충 넘기지 않는 일, 그리고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성실히 해나가는 일. 그렇게 예민한 감각으로 주위를 돌보고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들을 끝까지 지켜내려 애쓸 때, 모든 일은 결국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고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그곳에 뿌리내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