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지켜내려는 마음
서정아 소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시력이 급격히 떨어졌던 적이 있다. 갑자기 책의 글자가 잘 보이지 않고 노트북 화면도 흐릿하게 보여서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나중에는 글자를 보면 어지러워서 구역질까지 나왔다. 안과에 가서 몇 가지 검사를 했는데 특별한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안경을 쓰고 검사를 해보아도 시력 교정이 되지 않아서 안경 처방을 할 수가 없다고, 그 점이 이상하다고 의사는 말했다.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으니 당분간 작은 글자 같은 것은 보지 말고 눈을 좀 쉬게 두었다가 다시 병원에 와보라는 말에 나는 절망했다. 글자를 보지 말라니, 내게는 극악무도한 형벌과도 같은 일이었다.
잃어버리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것이 나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었음을, 결코 없어서는 안 되며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었음을 자각하게 될 때가 있다. 자각하더라도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 완전한 상실은 그야말로 참담한 슬픔 속에 나를 가두지만, 간혹 잃어버린 것을 되찾게 되는 행운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이란 참으로 어리석어서, 그것을 되찾은 직후에나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뿐,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면 금세 마음이 해이해지고 만다. 그렇게 벌어져 버린 나태함의 틈새로, 우리는 어렵게 되찾았던 것을 너무도 쉽게 다시 잃는다. 한번 되찾았다고 해서 다음번에도 되찾을 수 있을까? 그건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평온하고 자유로운 일상이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님을
깨어있는 정신 지켜내지 않으면
또다시 비극을 겪을 수 있음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떨어졌던 시력을 다행히 몇 달 만에 회복할 수 있었다. 혼자서 원인을 분석해 보다가 당시 장기 복용하고 있던 약의 부작용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었고, 약을 끊었더니 서서히 원래의 시력이 돌아왔다. 약을 통해 얻는 효용을 포기하더라도 시력을 되찾는 일이 내게는 훨씬 중요했기에 나는 그 약을 다시 먹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시력의 중요성을 새삼 자각했으므로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잃었다. 나중에는 딱히 노력을 하지 않아도 시력이 잘 유지되니, 글을 읽고 쓰는 일도 다시금 당연하게 여기게 되고 말았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팬데믹으로 3년간 일상의 자유를 잃었을 때, 우리는 그동안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던 일들이 실은 얼마나 소중한 일상이었는지를 체험적으로 깨달았다. 이를테면 국가로부터 나의 동선을 추적당하지 않는 일, 축제를 열거나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는 일, 마스크 없이 서로의 얼굴을 대면하는 일 같은 것들. 그처럼 당연하게 누리던 자유를 불현듯 빼앗겼을 때 우리는 얼마나 절실해졌던가. 그러나 평범한 일상을 되찾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는데도 과거는 이미 까마득해졌다.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약국에 줄을 서고, 감염자의 동선이 기록된 알림 문자를 불안한 마음으로 체크하고, 다중 이용 시설에 가면 체온 측정과 방문객 체크인부터 해야 했던 일들이 오래된 꿈처럼 아득하다.
망각은 때때로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겠지만, 어떤 일들은 끝까지 기억해야 한다.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손가락이 절단되어 접합 수술을 받은 인물이 신경을 살리기 위해 수시로 그 부위를 바늘로 찔러야 했던 것처럼, 고통스러워도 끝까지 직면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우리의 평온하고 자유로운 일상이 결코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님을, 깨어있는 정신으로 그것을 지켜내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는 또다시 커다란 비극을 겪을 수 있음을, 그리고 어쩌면 지금 누리는 일상을 다시는 되찾지 못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12월 3일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비상식의 폭력이 다시 재현되지 않도록, 이 겨울의 매서운 바람에도 웅크리지 말고 눈앞을 똑바로 응시하며 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