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계엄과 탄핵 정국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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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희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전 한국헌법학회 회장

지난 21일 부산 서면에서 윤석열 대통령 즉각 퇴진과 내란죄 수사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정종회 기자 jjh@ 지난 21일 부산 서면에서 윤석열 대통령 즉각 퇴진과 내란죄 수사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정종회 기자 jjh@

헌정사상 세 번째로 대통령이 탄핵 심판을 받게 된다. 국회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위헌·위법으로 판단하고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수개월 후 헌법재판소의 인용 결정이 나온다면 보수 정권은 연속 탄핵당하는 치욕을 겪게 된다. 지난 3일 밤 느닷없는 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현실 인식과 상황 판단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법적 요건 불비의 계엄에 대한 국회의 신속한 탄핵소추와 대통령 직무정지는 불가피했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이유를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서”라고 했으나, 이는 오히려 자충수가 되어 탄핵 사유가 되었고 대통령 자신이 국헌을 문란하게 한 내란죄의 피의자로 전환되었다.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성정을 가진 지도자 한 사람의 오판으로 나라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계엄 선포 직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방어를 위해 집결한 젊은 시민들의 용감한 행동은 주권자로서의 헌법수호 의지였다. 계엄군과 시민들이 대치하는 긴박한 상황에서의 국회 본회의장 계엄 해제 결의안 가결 장면은 한국 민주주의의 저력과 복원력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계엄은 긴급한 상황에서 ‘합헌적 독재’(constitutional dictatorship)를 허용하여 위기 정부를 극복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비상적 수단이지만, 이를 오·남용하게 되면 헌법의 자살 내지 파괴를 초래하는 독약이 된다. 이번 계엄 사태는 국가긴급권의 남용이 빚은 비극이다. 국회 권력과 대통령 권력이 정면충돌하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처음부터 야당과의 ‘협치’를 택해야 했으나 그 반대로 불통과 독선과 강권으로 난국을 타개하려 했다가 결국 그는 실패한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계엄은 국가긴급권 남용이 빚은 비극

헌재, 윤 대통령 탄핵 조속히 심리해야

한덕수 대행, 헌법재판관 임명 가능해

헌법질서 침해 통치행위는 사법 대상

여야, 구국의 결단으로 개헌 논의하길

대결·보복 접고 국민통합 위한 정치를

헌법재판소는 헌정의 불안정성을 조속히 해소하기 위해 대통령 탄핵 사건을 우선 심리해야 할 것이다. 쟁점인 비상계엄 발동 요건의 충족 여부와 법 위반행위의 중대성의 판단은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에 비해 법리가 간명하다. 헌법재판관 9인 중 3인의 결원을 채우는 것이 시급한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인사권 범위를 두고 논란이 있다. 이번 재판관 3인의 충원은 국회 선출 몫에 대한 형식적 인사권이므로 권한대행이 임명할 수 있다고 본다. 여야는 타협과 양보로 재판관 충원에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탄핵 심판보다 내란죄 재판에서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된다. 내란죄의 구성 요건에 관한 해석론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질 것이다. 대통령은 담화에서 내란죄 성립을 강하게 부정하고 계엄 선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통치행위로서 사법 심사의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통치행위는 오늘날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하여 헌법질서와 기본권을 침해하게 되는 경우에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윤 대통령은 시간을 끌면서 탄핵서류 접수를 거부하고 공수처의 소환 통보에도 불응하고 있다. 재판 지연은 대통령의 최소한의 품격에 못 미치는 처신으로 국민의 반감만 커질 뿐이다.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은 입법 독주와 탄핵 남발로 지금의 국정 불안정의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으므로 이제라도 정부·여당과 협력하면서 정국 안정에 노력해야 한다. 차기 대선의 유력한 후보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의 형사상 특권에 관한 헌법 해석 논쟁을 잠재울 수 있는 선언을 하는 것이 중도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총선 참패 후 집권당의 기능을 상실한 국민의힘은 내부 갈등과 분열 속에 민심을 저버렸다. 근본적 쇄신 없이 재집권은 요원하다.

탄핵 이후 전개될 정치 과정은 미래 한국의 입헌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모멘텀으로 삼아야 한다. 드러난 1987년 체제의 한계 극복을 위해 본격적인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 여야는 구국의 결단으로 개헌 로드맵에 관한 대타협을 성사시켜야 한다. 권력구조 개편 방향에 대해선 이미 연구성과가 축적되어 있으므로 국민적 합의에 따른 선택만 남아있다. 다만 행정 권력을 분점하는 이원정부제는 우리 정치 풍토와 결합되기 어렵다고 본다.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의 의식개혁이다. 극한 대결과 보복의 정치를 청산하고 의회주의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가 이익을 우선하고, 국민통합과 미래를 위한 정치를 약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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