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YS 상도동 사저는 괜찮을까
박석호 서울정치팀 부장
김대중(DJ) 전 대통령 사저 매각으로 논란
YS 기념사업 조직들도 어렵긴 매한가지
부산이 주도해서 YS 기념사업 추진해야
근현대 문화유산 지정 국민통합 공간으로
정치부 초년 기자 시절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자택인 서울 동작구 상도동 사저를 몇 번 취재 갔었다. 그리 큰 집도 아닌데 현관에는 늘 방문객들의 구두가 어지럽게 널려 있고, 본채 건너 조그만 별채에는 일이 없어도 정치권 주변 인사들이 모여 잡담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후 상도동에 인사하러 갔다. YS의 ‘3당 합당’을 거부했던 노무현은 YS가 예전에 선물로 준 손목시계를 내보이며 “총재님(YS) 생각날 때는 꼭 차고 다녔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 결과는 노무현의 지지율 폭락이었다. 당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민주당은 DJ와 숙명의 라이벌인 YS에게 잘 보이려는 노무현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런 일들을 지켜보면서 정치가 표면적으로는 여의도에서 이뤄지지만, 실질적인 정치공간은 다른 곳에 있다고 느꼈다.
YS의 상도동 사저와 DJ의 동교동(서울 마포구) 사저는 한국 민주화의 상징이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라는 말도 사저가 자리잡은 동네 이름에서 나왔다. ‘계파 정치’라는 부정적 그림자도 없지 않지만 독재 정권 하에서 야당이 생존하기 위한 ‘안방 정치’의 현장으로 꼽힌다.
DJ의 3남 김홍걸 전 의원이 최근 동교동 사저를 프랜차이즈 사업가에게 100억 원에 매각해 논란에 휩싸였다. 김 전 의원은 거액의 상속세를 충당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DJ 부인이자 자신의 친모인 이희호 여사가 “동교동 사저를 대통령 기념관으로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점에서 아무리 봐도 부적절하다.
그렇다면 YS 쪽은 괜찮을까? YS 집안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동교동계에서 사저 문제가 먼저 터져 나와서 그렇지, 우리 쪽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YS는 2010년 자신의 전 재산 60억 원을 기부해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를 설립했다. 상도동 사저를 비롯해 경남 거제 선산, 어장 등이 모두 포함됐다. 이듬해 YS의 민주화 운동 업적을 기리기 위해 사저 근처에 부지를 마련해 ‘김영삼대통령 기념도서관’을 세우기로 했다.
도서관은 2015년 준공됐지만 건축비 부족, 채무 및 세금 문제 등으로 껍데기만 있고 내부 공사는 중단되고 방치됐다. 김영삼민주센터는 YS의 출생지인 경남 거제시에 건물을 기부채납하고 공사를 마무리하려 했으나 거제시가 인수를 포기해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상도동 사저가 압류·매각될 위기에 처했다. 유족들은 사저만큼은 지키자며 2017년 YS 장남 은철 씨(지난 8월 7일 별세)의 아들인 김성민 씨의 명의로 매입했다. 당분간 상속 문제에 있어서는 동교동과 같은 사태가 불거질 일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상도동 측이 YS 기념사업을 해왔던 과정을 되돌아보면 여전히 불안하다. 김영삼도서관은 서울 동작구가 건물을 기부채납 받아 남은 공사비를 부담하고, 주민개방형 공공도서관으로 만들었다. 재정위기를 겪던 김영삼민주센터는 ‘지정기부금단체’에서 해제돼 더 이상 기부금을 받지 못한다. 김영삼민주센터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도서관을 기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2022년 문민정부 출범 30주년을 맞아 YS의 차남 김현철은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을 설립했다. 김영삼민주센터로는 더 이상 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 또 다른 재단을 만든 것이다. 30주년 사업을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김영삼 재단’은 김영삼도서관의 한 개 층을 사용하며 간신히 버티고 있다.
YS는 한국 정치사의 걸출한 지도자이자, 민주화의 상징이다. 임기 말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평가절하됐지만 그가 없었으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983년 전두환 독재 정권 때 광주민주항쟁 3주년을 맞아 23일간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민주화 운동에 불을 붙였다. 사분오열하던 야권은 하나가 돼 1985년 2·12 총선에서 예상 밖의 승리를 거뒀고,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뤄낸다. 대통령이 되자 금융실명제 실시, 군내 사조직 하나회 해체 등 전광석화로 역사를 바꾸는 결단을 했다.
YS의 뿌리는 부산이다. 부산에서 자랐고, 부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치 지도자로 성장했다. 부산의 정치권, 상공인, 학계,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YS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사업에 적극 나서야 할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동교동에서 벌어진 낯 뜨거운 논란이 상도동에서도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상도동 사저는 현재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두 사저를 동시에 국가가 관리·보전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으로 함께 지정하는 것도 바람직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한국 민주화의 큰 산인 YS와 DJ의 사저가 국민통합의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잡기 바란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