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고맙다. 젊고 아름다운 태극전사여!
강성할 독자여론부 부장
파리 올림픽 출전 선수 감동의 무대
압박감보다 즐기는 마인드로 나서
메달로만 평가하던 국민들도 변화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 감사 박수
“국민들의 기대가 높다 보니까 거기에 대한 부담감도 컸고, 경기를 즐기기보다는 결과를 내야 하는 압박감이 조금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래도 훈영 언니랑 수현이랑 그 와중에 즐겨보자는 마인드로 하다 보니까 좋았어요.”
2024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양궁 임시현 선수의 인터뷰 내용이다. 이제 스무 살 넘긴 이 선수의 발랄하고 환한 웃음이 폭염과 열대야로 지칠 대로 지친 전 국민의 마음을 씻어냈다.
제33회 파리 올림픽이 폐막을 3일 앞두고 있다. 올림픽은 보는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안겨주지만, 운동선수들에게는 그야말로 ‘꿈의 무대’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수많은 감동의 순간들이 꿈의 무대를 수놓았다. 이는 분명히 세계 최고의 실력과 마인드로 무장한 선수들이 진정으로 스포츠 그 자체를 즐기면서 빚어진 일일 것이다.
파리 올림픽은 시작부터 대한민국 금메달 소식이 터졌다. 당초 금메달 5개라는 예상치를 뛰어넘는 승전보가 울려 퍼지면서 전 국민의 마음을 설레게 했고, 태극 전사의 멋진 플레이는 전 세계인의 마음을 훔쳤다.
이 가운데서도 태극 궁사들의 기록은 눈부셨다. 이번 올림픽에서 전 종목 석권이라는 전대미문의 대기록을 세웠다. 한국 양궁 여자 단체전은 올림픽 10연패라는 금자탑을 이뤘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6년 동안 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 시상식에서는 애국가만 울려 퍼졌다. 그야말로 전 국민에게 넘치는 ‘국뽕’을 선사했다.
하지만 이들이 세운 대기록의 이면에는 분명 아픔과 부담감이 존재했을 것이다. “금메달 따면 본전, 못 따면 망신”이라는 방정식 속에서 선수들이 느꼈을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어린 그들은 이런 압박감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이번 올림픽 현장에서 나타난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을 살펴보면 얼핏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화면에 나타난 대한민국 선수들은 누구 하나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메달을 놓치고 나서 죄인이라도 된 듯 “국민에게 송구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지든 이기든 얼굴을 미소를 지며 ‘참가가 목적’이라는 올림픽을 진정으로 즐기는 모습이었다. 어떤 선수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손을 들어 자신감을 과시했다. 다른 선수는 앳된 얼굴의 미소를 지으며 손 하트를 날리며 관중들에 감사함을 전했다.
이런 ‘즐기는 대한민국 선수’ 징조는 앞선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도 연출됐다. 탁구 혼합 복식 시상식에서 한국의 두 팀이 공동 3위에 올랐다. 시상대에서 남자 선수 장우진이 여자 선수 전지희의 목 뒤에 엉킨 메달 끈을 정리해 줬다. 이 달콤한 모습에 중국 관중들이 환호했다. 잠시 부끄러워하던 우리 선수들은 ‘볼 하트’로 답례했다. 금·은메달 중국 선수들은 구경만 하고 있었다. 중국 누리꾼들은 ‘우리(중국) 선수들은 왜 한국 선수처럼 즐기지 못하나’고 부러워했다. 이 영상은 전 세계에 널리 퍼지면서 꽤 오랫동안 화제가 됐다.
다시 이번 올림픽으로 돌아가 보자. 파리 올림픽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는 개회식 기수단으로 누구보다도 대회를 즐긴 것 같다. 세계육상연맹이 우상혁 선수를 저본 해리슨, 셸비 매큐언(미국)과 함께 ‘관중을 즐겁게 할 쇼맨’으로 꼽았다.
선수들의 즐기는 만큼이나 국민들의 반응도 크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올림픽에서 선수들을 메달로 평가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선수들의 열정의 땀과 눈물, 도전과 노력의 과정을 토닥여 주고 큰 박수를 보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한 많은 선수를 격려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메달이 아니라 선수가 흘린 땀방울에 존경을 보내고, 진정으로 즐기는 선수를 응원할 수준에 올랐다.
파리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와 국민의 거리낌 없는 당당함, 과정을 즐기는 자세, 승패를 받아들이는 겸허함 등. 특검 탄핵 거부권 악순환으로 두 달 넘어 헛발질만 해대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언제 대한민국 국가대표, 국민의 수준으로 올라올지, 한심한 마음 그지없다.
답도 없는 얘기는 그만하자. 이번 올림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꿈을 펼친 대한민국 대표선수들을 열렬히 응원하고 찬사를 보낸다. 메달이 아닌 진정 즐기는 모습으로 전 국민을 사로잡고 위로한 태극전사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보낸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으니 오늘 최선을 다하고 즐기자”라는 말이 이번 올림픽에서 받은 최고의 위로임을 고백한다. 고맙다. 젊고 아름다운 태극전사여!
강성할 기자 shg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