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또 또 또 아파트
이대성 기획취재부 차장
부산의 한 중견 기업에 근무하는 A 씨는 회사가 타 지역으로 이전을 결정하면서 퇴직을 고민 중이다. 회사를 따라 부산을 떠나야 하지만, 송두리째 바뀔 가족들의 환경을 생각하면 부담이 크다. 다행히 회사 이전이 3년 정도 연기되면서 당장 걱정은 덜었다.
A 씨는 기자의 지인이며, A 씨가 다니는 회사는 YK스틸이다. 최근 YK스틸이 부산을 떠나 충남 당진으로 이전하게 된 속사정이 환기되면서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부산이 광역시 중 처음으로 소멸위험지역이 됐다는 소식에 부산을 떠나는 YK스틸의 사연이 소환됐고, 이를 두고 “기업 내쫓고 아파트만 짓는 부산은 ‘노인과 바다’가 될 만하다”는 자조적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1966년 사하구 구평동에 자리잡은 YK스틸은 국내 5위 철강 회사로, 지난해 말 기준 매출 6132억 원, 직원 수 350여 명에 이르는 향토 기업이다. 부산에 협력업체도 많아 지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근무 여건과 연봉 등이 괜찮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YK스틸의 사연은 직접 취재해 유일하게 기사로 쓴 적 있어 누구보다 잘 안다. 2012년 YK스틸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공장 바로 옆에 아파트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데, 민원이 불 보듯 뻔한 곳에 아파트 사업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하소연이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한 건설사는 1996년 부산시로부터 택지로 지정된 YK스틸 인근 지역에 2800여 세대 아파트 건립을 추진 중이었다. 신평장림공단과 인접해 당초 주거 취약 계층과 근로자 지원을 위한 공공임대와 사원주택 등이 계획돼 있었지만, LH 등은 사업성 부족 등을 이유로 2011년 시에 택지개발계획 변경을 신청했고, 시는 이를 승인했다. 용도는 대부분 일반 분양으로 바뀌었고, 용적률은 늘어나고 층수도 22층에서 30층으로 완화됐다. 당시 YK스틸 고위 관계자는 “공공임대와 사원주택을 일반 분양으로 바꿔 민원이 더 커질 것 같다. 적어도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상황이 돼서는 안 된다”고 기자에게 읍소했다. 시는 아파트 입주 후 주민들의 민원이 쏟아지자 공장 이전을 권유하면서 마지막까지 실기했다. 이는 뼈아픈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YK스틸은 2020년 당진시와 지역민 우선 채용 협약을 체결했다. A 씨는 실직 위기에 처했다. 당진시는 일자리가 늘고 부산의 일자리는 준다.
대형마트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평당 4500만~5000만 원을 호가하는 아파트 건립이 추진되는 등 해안가 곳곳은 고층 아파트가 점령하고, 공공의 자산인 이기대 경관을 사유화하는 아파트 개발 계획이 경관 보존을 위한 어떠한 용도 제한이나 절차적 고민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곳이 부산이다. 부산 최초 공설운동장인 구덕운동장을 재개발하겠다며 사업성을 이유로 아파트 건립을 추진 중인 곳이 부산이다. 지난해 말부터 부산에서 분양한 아파트들은 모두 미분양 상태로, 악성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이 갈수록 늘어나는데도 부산의 아파트 분양가는 천장을 뚫을 기세다. 비싼 아파트를 구입할 여력이 없고, 일자리도 없는 부산에 청년들이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는 동조론도 확산되고 있다. 부산시는 YK스틸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소멸 중인 부산의 도시 계획을 다시 고민하고, 아파트에만 진심이라는 시민들의 비판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인천에 추격 당하는 부산의 미래가 어둡다. nmaker@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