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석의 기후 인사이트] 지구온난화가 부른 극한 이상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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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역대급 폭우 이후 폭염 반복
북극의 가파른 온도 상승 탓
재난관리 시스템 혁신 절실

1996년 미국 재난 영화 ‘트위스터’를 보며 기상학자라는 직업에 처음 매료되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토네이도를 추적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24년 4월, 미국 중서부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100여 개의 토네이도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영화보다 더한 극한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해 오클라호마에서는 4명이 숨지고 마을이 초토화되었다. 지금도 4700만 명의 미국인이 토네이도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미국 기상청은 발표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토네이도가 일어나지 않던 중국에서도 토네이도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같은 시기 중국 남부 광저우에서도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강력한 토네이도로 5명이 사망하고 141채의 공장 건물이 손상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인 7월 초, 중국 산둥성에서도 토네이도가 발생해 2800여 채의 주택이 파괴되고 8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올여름 동아시아의 극한 기상은 비단 토네이도만이 아니다. 올해 4월 중순, 중국 광둥성에서는 폭우로 10만 명이 대피해야 했고, 양쯔강에서는 홍수로 안후이성에서만 100만 명에 가까운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지난주 일본 규슈 지방에서도 기록적인 폭우로 수십만 명이 대피했으며, 우리나라도 최근 중부지방의 집중 호우로 많은 지역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폭우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피해 역시 심각하다. 장마가 끝나면 극한 폭염이 예상된다.

지난해 전 세계 평균기온이 역대 최고치를 이미 기록했지만, 올해는 그 기록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해양의 자연적 순환주기와 더불어 온난화는 지구 평균기온을 급격히 상승시키며 극한 이상기후 현상을 증가시키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극한 이상기후 현상의 관계를 살피려면 기온의 증가가 특정 지역 대기의 흐름과 어떠한 연관성을 지니는지 파악해야 한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대륙과 해양의 열적 성질 차이로 인해 형성된 전 지구 규모의 대기 패턴이 중위도 서풍의 약화와 함께 강해지고 있다. 중위도 서풍의 강도는 북극 지역과 적도 지역의 온도 차이에 비례한다. 온난화의 대표적 현상인 북극 지역의 가파른 온도 상승이 적도와의 온도 차이를 줄여 여름철 중위도 지역의 서풍을 약하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북반구 여름철 기후를 주관하는 대륙성 저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기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반도는 강해진 북태평양 고기압과 대륙성 저기압 사이에 위치하게 된다. 장마철 남풍의 영향은 적도의 고온다습한 공기를 한반도로 이동시키며, 북쪽의 차갑고 건조한 공기와 만나게 되고, 이로 인해 대기의 불안정성이 커져 극한 이상기후 현상이 발생한다. 온난화로 인해 중위도 서풍이 약화되면서 강한 남풍이 다량의 수증기를 한반도로 수송하고 있다. 이는 언제 어디서 폭우를 맞이할지 모르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여름철 극한 이상기후 현상에서 온난화의 흔적을 뚜렷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극한 이상기후 현상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필자는 가끔 피에르험버트 교수의 깊은 한숨이 떠오를 때가 있다. 2008년 2월 필자는 박사과정 입학 인터뷰를 위해 시카고대학을 방문하였고, 거기서 지구온난화 연구의 선구자이자 세계적인 석학인 피에르험버트 교수를 만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석사 졸업 후 갓 연구를 시작한 필자에게 그의 조언은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었다. 다양한 기후 관련 연구 주제들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던 그가 문득 필자의 눈을 조용히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나는 종종 잠들기 전에 지구온난화의 악영향을 생각하며 잠을 설치곤 한다네. 다음 세대가 겪어야 할 고통을 떠올리면 초조함에 날밤을 새울 때가 있어. 걱정이 밀려오기 때문이지.”

1996년 흥행에 성공한 영화 ‘트위스터’에 대해 당시 영화평론가들은 토네이도의 동시다발적 발생에 비현실적인 영화적 표현이 가미된 것으로 평가하였다. 하지만 올해 4월 오클라호마 인근에서 발생한 100여 개의 토네이도는 영화 ‘트위스터’를 작금의 현실을 전혀 담아내지 못한 매우 철 지난 영화로 만들어 버렸다. 북반구 여름의 고점을 지나고 있는 지금 피에르험버트 교수의 한숨과 걱정이 과장이 아닌 현실로 우리 곁에 바로 다가온 것이다. 이제 지구온난화와 극한 이상기후 현상은 우리가 직면한 현실의 무게이자, 변화의 심각성을 무시하지 말라는 단호한 비상 경고이다. 온난화의 진행을 막기 위한 국제적인 협력이 선행적이고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 각국의 재난관리 시스템 강화를 통한 체계적인 대비가 반드시, 그리고 매우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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