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화의 크로노토프] ‘문화도시 부산’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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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음악 칼럼니스트

부산의 쇠락, 미래 대비하지 못한 탓
지역 살리고 사람 모으는 핵심은 ‘문화’
오래 둥지 튼 사람에게 혜택과 기회를

부산시는 지난 6년간 인구 증가를 위해 4조 5000억 원을 지출했다. 하지만 부산시 자체가 ‘소멸위험단계’에 들어갔다는 경보가 울렸다. 올 3월 기준으로 부산시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3%에 달하여 전국 광역시 중 최초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올해 부산 시내 초등학생은 지난해 대비 5700여 명이나 줄었다. 1995년 390만 명에 육박하던 인구도 30년 만에 60만 명 가까이 줄어들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부산은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중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수도권과 서해안으로 기업 이전이 일어났던 게 이유였지만, 기업이 부산을 떠나기 시작하는데도 미래를 준비하지 않았던 탓이 컸다. 1995년 일본 효고현 남부 지진으로 고베항에 집중되던 국제물류가 부산항으로 몰려들었지만 미래 산업 육성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세계 항만 최상위권은 중국으로 넘어갔다. 글로벌허브나 첨단 산업은 구호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충분한 준비와 그에 상응하는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이 있어야 부산이 살아나고, 시민이 누릴 수 있는 문화가 있어야 사람들이 부산에 살 수 있다. 그런데 부산은 지금, 아파트만 짓는다. 최근 협력업체가 100군데가 넘고 수백 명이 일하는 국내 5위의 철강회사가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의 민원으로 부산을 떠나는 일이 벌어졌다. 부산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국내 100대 기업은 하나도 없고 1000대 기업도 크게 줄어 28개에 불과하다. 부산은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아파트 붐은 전국이 마찬가지겠지만 부산은 경제 규모에 비해 더 심각하다. 이 와중에 부산시가 발표한 ‘특별건축구역 활성화 시범 사업’도 결국 아파트를 짓는 일이다. 언론도 그런 현상이 가진 본질은 제대로 말하지 않고 ‘재개발’이란 선정적인 타이틀로 기사를 올려 사람들의 투기 심리를 부추긴다. 인구가 주는데 아파트 공급이 는다고 수요가 따라 늘어나겠는가? 근본을 제대로 생각하는 도시 전문가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로컬’이나 ‘원도심’ 등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미래에 대한 깊은 고민은 느낄 수 없다.

정치권은 산업은행 본점 부산 유치 건으로 팽팽한 신경전을 보인다. 산업은행 본점 이전이 부산에 가져다줄 정확한 의미나 아는지 모르겠다. 기업 하나 옮기면 사람들이 자동으로 몰려온다고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경북 경주시는 인구 증가 시책으로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를 이전했지만 오히려 인구가 감소했다. 직원들은 주중에 홀로 지내다가 주말이면 가족이 있는 서울로 다시 돌아가기 때문이다. 단순히 ‘주말 가족’으로 만들고 마는 이 기이한 현상의 원인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문화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은 인류의 오랜 생각이다. 우리의 삶이 여전히 고단하지만 가장 우선적인 것은 문화적인 충족이다. 내 아이가 다닐 교육 환경도 중요하고 교통 인프라 같은 사회기반시설도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적인 환경이라 생각한다. 몇 년 전 제대로 된 인프라가 없는 부산 영도에 갑자기 5성급 호텔을 몇 개나 짓겠다고 하다가 무산된 일이 있었다.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놀거리와 볼거리 같은 관광 인프라인데 호텔 먼저 만들고 보겠다는 계획이었으니 성공할 리가 없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북항마리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도시, 부산’을 위해 ‘커피 도시’를 이야기하지만 납득하기 힘든 측면이 없지 않다. 커피 산업으로 어떻게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꾀할 수 있을지, 이를 통해 부산을 어떻게 잘 사는 도시나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하다. 부산에 커피 농장이나 네슬레 같은 기업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우리나라 커피 수입량이 2년 연속 10억 달러가 넘었다는 기사만 봤다. 쇠락하던 부산 영도가 매달 160만 명이 찾는 소위 ‘핫플’로 바뀐 까닭은 빈집을 활용한 복합문화공간 때문이었다. 사례가 있음에도 다른 데서 답을 찾을 이유가 없다. 부산을 살리기에 가장 편하고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문화도시 부산’을 만드는 것이다.

사족을 하나 덧붙이면, 이제는 조금 이기적으로 되어야 한다. 모든 일에서 부산 사는 사람들이나 부산 기업에 가산점을 주자.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등학교를 다녔거나 부산에 주소를 갖고 일정 기간 이상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산점을 주자. 지역 인재 양성이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먼저 주는 데서 시작한다. 다른 도시에 살면서 잠시 부산에 들렀다가 이력만 쌓고 떠날 외부인들은 부산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산에 둥지를 튼 부산 사람에게 기회를 먼저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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