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국가대표팀 감독 선정에 또 난장판 된 축구계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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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스만 이후 돌고 돌아 홍명보 감독 선임
협회는 또 불통 행정, 내부 폭로·비판 난리
브라질월드컵 당시 홍 감독의 언행도 논란
축구계 불협화음, 결국 대표팀에도 악영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국 축구계가 국가대표팀 감독 선정 문제로 또 시끄럽다. 대한축구협회가 이달 7일 차기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홍명보 울산 HD 감독을 선임하자, 축구계 안팎에서 협회의 불통 행정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축구협회는 지난 2월 국가대표팀 내 불화와 전술 부재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할 때도 책임 떠넘기기와 무능 행정으로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는데,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서 팬들의 실망감만 깊어지고 있다. 이번 홍 감독 선임 역시 미리 대상자를 정해 놓은 채 충분한 협의도 없었다는 내부 폭로까지 나와 후폭풍이 거세다.


대한축구협회가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 5개월 만에 홍명보 울산 HD 감독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정상적인 소통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대표팀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는 홍명보 감독. 연합뉴스 대한축구협회가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 5개월 만에 홍명보 울산 HD 감독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정상적인 소통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대표팀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는 홍명보 감독. 연합뉴스

■ 또 불거진 협회의 불통 행정

많은 사람이 반대하던 클린스만 감독 선임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던 대한축구협회의 일 처리는 이번에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협회 내 소통은 없었고 정상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는 내부 지적이 잇따른다.

협회는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 무려 100명에 가까운 후보군을 놓고 저울질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돌고 돌아 현직 K리그 감독인 홍 감독을 선임했다. 이 과정에서 감독 선임 업무를 맡았던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돌연 사임했고 이임생 기술이사가 뒤를 이어 이 작업을 지휘했다.

그런데 그동안 누구와, 어떤 조건으로 협상했는지 충분한 내부 소통이 없었다고 한다. 100명이나 되는 많은 후보를 만났는데도 적임자를 찾지 못해 결국 K리그로 눈을 돌려야 했다면 협회의 인물 정보나 협상 능력 부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라는 실무 조직이 무시당한 것도 문제로 떠올랐다. 박주호 전력강화위원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홍 감독의 선임은 절차 안에서 이뤄진 게 아니다”라며 이미 내부 분위기는 국내 감독으로 기울어져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 부분은 이임생 기술이사가 8일 브리핑에서 “개별적으로 5명의 강화위원에게 ‘내가 최종 결정을 해도 되느냐’는 동의를 얻고 결정했다”고 밝혀 사실상 단독 결정임을 인정했다.

협회는 박 위원의 폭로에 ‘비밀유지 서약’을 어겼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지만 감독 선임 과정이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은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영표 해설위원이 “(이임생 기술이사가) 강화위원들과 소통한 후 발표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생략됐다”고 말한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이사가 8일 서울 축구회관에서 차기 대표팀 감독으로 홍명보 울산 HD 감독을 내정한 것과 관련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이사가 8일 서울 축구회관에서 차기 대표팀 감독으로 홍명보 울산 HD 감독을 내정한 것과 관련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홍 감독의 처신도 미스터리

홍 감독 스스로 자초한 논란도 있다. 홍 감독은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차기 국가대표팀 감독엔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울산 팬들에는 “자신의 입장은 항상 같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거듭 말했다. 그런데 불과 며칠 만에 입장을 바꿨다. 대표팀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이해해도 울산 팬들로서는 무척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기다 홍 감독이 대표팀을 맡아 출전했던 2014년 브라질월드컵 당시 언행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선수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던 홍 감독은 브라질월드컵에선 이해할 수 없는 용병술로 적잖은 비판을 받았다. 아직도 회자하는 K리그 비하 발언과 ‘의리 축구’ 논란이 대표적이다.

당시 홍 감독은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에 비해 국내 K리그 출신 선수들의 ‘급’이 훨씬 떨어진다며 해외파 출신을 선호했다. 하지만 여기엔 일관성이 없었고 손흥민 선수를 제외하면 오히려 해외파보다 국내 리그 선수들의 활약상이 더 돋보였다. 이때 소속팀에서도 극도의 부진을 겪던 해외파 선수의 기용을 고집해 의리 축구에 집착한다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대회 중 적절치 않은 음주·가무 회식과 선수들의 신구 조화 실패로 결국 1무 2패의 실망스러운 성적에 그쳤다.


대한축구협회는 클린스만 감독 선임은 물론 이번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도 불통 행정 논란에 휩싸이며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올해 2월 16일 국가대표팀 사안 관련 임원 회의를 마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회의 결과를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대한축구협회는 클린스만 감독 선임은 물론 이번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도 불통 행정 논란에 휩싸이며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올해 2월 16일 국가대표팀 사안 관련 임원 회의를 마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회의 결과를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 기로에 선 침체한 한국 축구

지금 축구계 분위기는 협회 행정에 대한 팬들의 불신과 올해 파리올림픽 출전 실패로 매우 뒤숭숭하다. 날씨로 치면 ‘매우 흐림’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2년 남은 2026년 북중미월드컵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축구협회는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할 수 있다.

협회의 계속되는 헛발질로 인한 팬들의 실망도 그렇지만 축구계 내부의 심각한 분열과 불신은 더 문제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장기 체제에 대한 축구계 내부의 불만과 이로 인한 소통 부재는 지난번 클린스만 감독에 이어 이번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도 전혀 바뀌지 않은 채 똑같이 반복됐다. 이런 병폐는 당장 국가대표팀의 경기력에도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48장으로 늘어난 북중미월드컵 출전 티켓을 얻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팬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출전 자체는 당연하고 24강 진출 이상의 의미 있는 성적을 원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불신과 냉소가 팽배한 상황이라면 될 일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게 한국 축구와 대표팀을 바라보는 팬들의 걱정이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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