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아름다운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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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봉(1962~ )

봄비 그치자 햇살이 더 환하다

씀바귀 꽃잎 위에서

무당벌레 한 마리 슬금슬금 수작을 건다

둥글고 검은 무늬의 빨간 비단옷

이 멋쟁이 신사를 믿어도 될까

간짓간짓 꽃대 흔드는 저 촌색시

초록 치맛자락에

촉촉한 미풍 한 소절 싸안는 거 본다

그때, 맺힌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던가

잠시 꽃술이 떨렸던가

나 태어나기 전부터

수억 겁 싱싱한 사랑으로 살아왔을

생명들의 아름다운 수작

나는 오늘

그 햇살 그물에 걸려

황홀하게 까무러치는 세상 하나 본다

-시집 〈우포늪 왁새〉(2002) 중에서

천지의 본질은 사랑이다. 모든 물질은 서로 끌어당겨 사랑을 나누고, 그 결과 진화된 존재로 분화된다. 음양의 조화가 세상의 뿌리가 되고 가지가 된다. 하여 이 세계의 변천과 확산의 바탕에는 사랑의 속성이 녹아들어 있다. 사랑의 운명선이 이 우주의 성장과 사멸의 동선이다.

‘생명들의 아름다운 수작’이라는 시구가 바로 이 점을 갈파하고 있다. 시인은 이 세계의 모든 사물이 ‘범성욕’에 기반하여 번창하고 생명의 고리를 유지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씀바귀 꽃잎’과 ‘무당벌레’ 사이의 교감에서 발생하는 번식 과정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이런 내용은 인간적 관점으로 볼 땐, 매우 ‘황홀하게 까무러칠’만한 내밀하면서도 고조된 눈뜸이다. 다시 말하면 존재 실현의 의미로 충만한 아름다움이다. 자연의 섭리를 읊는 시 중에 이러한 천지간의 비의(秘義)를 담고 있는 작품이야말로 수위에 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김경복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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