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노인을 위한 부산

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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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연 기획취재부장

퇴직 전후 5060세대 위한 인프라 엉성
생애전환기 지원돼야 사회적 비용 감소

나이차 고려 분리된 시설 투자 대신
도서관 등 활용 세대통합 인프라를

이미 초고령 사회 진입한 부산
해법 찾아 고령화 모범 사례되길

누구는 현대인의 죽음을 삶의 완결이 아닌 그저 ‘끝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현대인의 삶은 어떤 질서 속에서 방향성을 갖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이기 사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 끝난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끝남’은 정년퇴직이라는 방식으로 생전에도 이뤄진다. 특정 나이가 되면 계속 일할 능력과 상관없이 있던 자리를 떠나야 한다. 정년이라는 개념은 상품의 유통 기간과 비슷하다. 삶의 완결 대신 끝남을 강요받는다. 그래서 주변에서 정년퇴직 하는 사람들을 보면 씁쓸한 구석이 있다. 퇴직자 중에는 ‘이제 좀 쉴 수 있어 좋다, 당연히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상당수는 평생 쌓아왔던 역량이 한순간에 소용없어지는 것에 상실감을 느낀다.

고령화 속도가 아찔한 한국이지만 퇴직 전후의 이들을 위한 생애 전환기 프로그램은 엉성하다. 고령화가 사회 성장 동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만 취급될 뿐, 고령화 사회를 사는 사람에 대한 대책은 간과된 결과이다.

특히 퇴직 전후의 5060세대가 이후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중요하다. 이들의 소득 감소나 건강 악화는 고스란히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본보 ‘5060, 부산의 활력으로’ 기획을 위해 둘러본 일본 도쿄 릿쿄대학 세컨드 스테이지 프로그램과 광주의 빛고을노인건강타운에서 고령 사회 해법의 실마리를 볼 수 있었다. 2008년 릿쿄대학이 개설한 세컨트 스테이지는 만 50세 이상만 수강할 수 있는 평생 교육 프로그램이다. 일본의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해 대학의 사회 공헌을 고민한 끝에 탄생한 프로그램으로, 인생 후반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도록 도와주는 강좌로 구성되어 있다.

릿쿄대학의 세컨드 스테이지 강의실을 둘러봤을 때 백발이 성성한 이들의 학구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배움과 성장의 욕구는 나이가 들었다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세컨드 스테이지 과정은 나와 비슷한 목적을 가진 이들을 동기생으로 만나 지속적인 교류가 이뤄지는 장의 역할을 했다. 퇴직으로 단절되는 사회적 관계가 배움으로 다시 이어지는 것이었다. 세컨드 스테이지 과정 일부는 젊은 학생들과 동일한 수업을 받는데, 오리엔테이션에서는 동기나 젊은 학생들과의 공존을 위해 필요한 에티켓 교육이 중요하게 이뤄졌다. 공동체 안에서 필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이지 나이 차에 따른 분리가 아니었다.

광주 빛고을노인건강타운은 대규모 실버타운이 지역의 관광자원으로 거듭난 사례였다. 하루 약 3000명이 이용하는 대규모 시설로 이용자들은 모두 활기가 넘쳤다. 100여 개가 넘는 프로그램에서 이용자들은 건강도 챙기고 친구도 사귀었다. 식사를 저렴하게 해결하고 은행이나 주민자치센터 등 각종 편의시설도 한곳에서 이용할 수 있었다. 골프장이나 숲 등 자연친화적인 환경과 주차 등 편리한 교통 환경은 사람을 모으는 핵심 인프라였다. 노인복지의 성공 사례를 배우기 위해 각 지자체를 비롯해 해외에서도 많은 방문객이 찾아와 별도의 대응팀을 만들 정도였다.

두 군데를 둘러보면서 관점만 바꾸면 부산에서 노인은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풍부한 대학 자원을 활용해 부산에 살고 있는 고령자를 위한 인프라를 잘 만든다면 다른 지역의 고령자가 유입될 수 있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다행인 것은 부산시는 하하캠퍼스 등을 통해 노인 정책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퇴직을 앞둔 개인들도 은퇴 이후를 위해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다. 기획 보도 이후 기사 취지에 공감하며 퇴직 이후 새로운 삶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독자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사회 공헌이나 창업을 준비하거나 퇴직자 커뮤니티를 구상한다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나 프로그램이 정책적으로 지원되어야 한다. 하하센터와 같은 전용 공간도 좋지만, 시민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 등의 공공시설이 이들을 위한 플랫폼으로 제격이다. 노인만을 위한 시설은 오히려 노인들에게도 외면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으면 한다.

국내외 나이 든 이들이 살기 좋은 부산으로 몰려와서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고, 지역 경제도 살아나는 상상을 해본다. 부산이 그저 나이 들어가는 도시가 아닌 고령화에 대한 해법을 선도적으로 보여준 도시가 되길 기대한다.


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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