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힙한 불교’와 ‘스님 주점’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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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님’ 디제잉, 불교 호감 상승 효과
엄숙주의 대신 일반인 눈높이 어필 덕분
일본 사찰, 신도 급감하자 ‘대중 속으로’
관계 복원 위해 카페·식당에 술집까지
탈종교 시대, 종교의 변화 모색 주목

승복 차림으로 셔플 댄스를 추며 ‘극락왕생’과 ‘부처핸섬’을 외치는 DJ ‘뉴진스님’(개그맨 윤성호)이 던진 파장이 적지 않다. 탈종교 시대에 종교의 가치와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까지 소환했다. ‘아무나 법복 입어도 되느냐’는 논쟁적 문제 제기도 나왔다. 하지만 한국 불교계는 뉴진스님으로 인한 불교 호감도 상승 효과를 반기는 분위기가 대세다. 엄숙주의 대신 일반인 눈높이로 접근한 것이 불교에서 멀어지는 젊은 층에 어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템플 스테이에 MZ 세대가 몰린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잊힌 불교를 일상의 화제로 불러냈기 때문에 “가뭄에 단비”라며 감격하는 반응까지 나올 정도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인 진우 스님은 ‘힙한 불교’를 전파한 공로로 뉴진스님에 디제잉 헤드셋까지 선물했다.

대만 공연을 거치며 상승세를 타던 뉴진스님은 말레이시아 공연 후 현지에서 ‘조롱’ 비판이 제기되고, 싱가포르 공연도 같은 이유로 불허됐다. 승려 복장 디제잉은 불경과 환호의 양극단으로 갈린다. 한국 불교의 개방성으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뉴진스님 현상은 탈종교 시대의 유연한 변화상으로 봐야 그 의미가 읽힌다. 절로 향하는 발걸음이 줄고 특히 MZ 세대와 접점이 끊기면서 종단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느끼던 차에 디제잉하는 스님이 나타났다. 종교가 사람들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일본도 종교 이탈 추세가 심각하다. 일본 종교연감에 따르면 불교계 신도는 1990년 9625만 명에서 2016년 8770만 명으로 1000만 명 가까이 줄었다. 존폐의 위기감을 느낀 사찰은 속세로 파고들었다. 찻집, 밥집은 물론 스님이 직접 운영하는 술집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6월 AP통신은 ‘유럽 교회에서 기도와 고해가 술과 춤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신자가 급감한 탓에 고색창연한 교회 건물이 식당, 나이트클럽, 호텔, 암벽 등반장으로 바뀌고 있다고 보도했다. 탈종교 현상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탈종교 시대에 종교는 다양한 모습으로 시대와 조응한다. 해외 언론 보도에 소개된 사례를 살피면 추세가 읽힌다. 일본 사례는 후쿠오카에서 발행되는 <부산일보>의 자매지 <서일본신문> 기사를 인용한다.


400년 넘은 명찰로 손꼽히는 일본 도쿄 츠키지 혼간지(築地本原寺)의 변화상을 소개하는 <서일본신문> 2020년 2월 18일 자 지면. 400년 넘은 명찰로 손꼽히는 일본 도쿄 츠키지 혼간지(築地本原寺)의 변화상을 소개하는 <서일본신문> 2020년 2월 18일 자 지면.

■ 신도 급감, “모두 바꾼다”

‘신도 감소로 곤경에 처한 사찰이 생존을 위해 모두 바꾸고 있다.’

400년 넘은 명찰로 손꼽히는 도쿄 츠키지 혼간지(築地本原寺)의 변화상을 소개하는 기사 도입부는 시대 변화에 맞춰 지역 사회에서 역할을 계속 이어가려는 사찰의 혁신 노력을 강조한다. 사찰 내에 카페와 서점이 문을 열었고, 대학생과 공동으로 젊은 층을 겨냥한 식당도 운영한다. 특히 18가지 반찬을 내놓는 식당은 인스타그램에서 각광받는 명소다. ‘18찬 아침 밥상’이 인기를 끌면서 오전 8시 개점 전부터 대기 행렬로 장사진을 이룬다. 인적이 드물다시피 했던 사찰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으로 바뀐 것이다.

사찰이 필사의 노력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까닭은 단가(檀家)의 급감 때문이다. 일본에서 단가 제도는 각 가정이 가족의 장례, 위패 봉안, 묘지 관리 일체를 사찰에 맡기는 대가로 시주를 하는 것이다. 시쳇말로 ‘사찰 구독제’다. 문제는 핵가족화와 저출생이 가속화되면서 단가를 매개로 한 관계는 급격히 와해되는 중이다. 2016년 ‘사찰의 미래’ 조사에서는 특정 사찰에 소속되어 단가를 유지하는 비율이 29%에 불과했다. 일본인 사이에 사찰은 점점 잊히는 존재가 되고 있다.



일본 나가사키현 오무라시 번화가에 젊은 승려 4명이 차린 주점을 소개한 <서일본신문> 2018년 4월 19일 자 지면. 일본 나가사키현 오무라시 번화가에 젊은 승려 4명이 차린 주점을 소개한 <서일본신문> 2018년 4월 19일 자 지면.

■ 승려가 운영하는 주점, ‘인생 상담’이 강점

일본 나가사키현 오무라시 번화가에 ‘매직 바 다쿠미’라는 상호의 이색 주점이 등장했다. 40대 이하 젊은 승려 4명이 차린 ‘스님 스나쿠’가 그 주인공. 스나쿠는 ‘스낵 바’의 일본식 준말로 종업원이 바를 사이에 두고 손님을 응대하는 방식의 주점이다. 중년 남성이 주 고객. 주점이긴 하지만 법당에 있는 듯한 느낌이 물씬 난다. 승복 차림의 스님들이 손님을 응대하고 바 위에는 목탁, 아미타여래상, 향로가 놓여 있어서다. 손님이 원하면 분향도 할 수 있다. 주 메뉴는 고민 상담, 부 메뉴는 칵테일이다. 주류 메뉴는 불경에서 따왔다. ‘윤회전생’은 보드카로 만드는 칵테일 ‘스크루 드라이버’다. ‘데킬라 선라이즈’에는 ‘극락정토’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정토종과 조동종 소속 승려들이 의기투합해 술집을 차린 이유는 불교 신자의 감소에 대한 대응 차원이다. 지역 사회와 사찰 사이에 접점이 상실되면서 위기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사찰은 사람들이 와서 고민을 털어놓으면 들어주고 해결을 돕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절을 찾는 발걸음이 줄면서 고민 상담을 매개로 한 관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고민을 들어줄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주점을 열었습니다.”

취재 기자는 취기를 빌어 슬쩍 회사 선후배 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을 털어놨다. “인정 욕구가 너무 강한 게 아닐까요?” 무심결의 푸념이 인생 상담으로 이어졌다. 뒤늦게 입장한 손님들도 불교 장례 절차를 문의하거나 불교 용구 쓰임새를 놓고 대화를 이어간다. “관록이 묻어나는 스님 말투가 마음에 스민다”는 반응도 있다.



일본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번화가에 ‘스님 카페 & 바’라는 콘셉트로 개점한 ‘엥겔’을 소개하는 <서일본신문> 2015년 7월 4일 자 지면. 일본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번화가에 ‘스님 카페 & 바’라는 콘셉트로 개점한 ‘엥겔’을 소개하는 <서일본신문> 2015년 7월 4일 자 지면.

■ MZ 세대를 찾아 거리로 나간 불교

그윽한 조명의 카페 겸 바에서 승복 차림의 바텐더가 푸르고 흰빛을 띠는 칵테일을 만들고 있다. “아미타경의 ‘청색청광 적색적광 백색백광’ 구절을 이미지로 만든 칵테일입니다.”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번화가에 문을 연 ‘엥겔’은 ‘스님 카페 & 바’라는 콘셉트를 내걸었다. 젊은 세대와 만나기 위해 그들이 몰리는 거리 한가운데 들어간 경우다.

정토신종 혼간지파 소속 젊은 승려 8명은 ‘사찰종합연구회’를 통해 불교 이탈 현상을 극복하는 방안을 논의한 끝에 “지금까지 하지 않던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지금 젊은 세대와 관계를 트지 않으면 부처님 가르침이 끊길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MZ 세대가 몰리는 번화가를 택한 건 당연한 귀결이다.

간단한 칵테일은 내지만 고기나 생선 안주는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사찰 요리법을 적용한 채식 메뉴만 갖췄다. 가지와 토마토를 사용한 ‘정진(精進) 피자’, 토산 된장을 사용한 ‘된장국 피자’ 등이다. 상담이 주를 이루지만 염주 만들기 체험, 불경을 베껴 쓰는 사경 이벤트도 개최한다. 젊은 층에 친근한 불교 이미지로 다가가는 게 목표다.




AP통신은 지난해 6월 ‘유럽 교회에서 기도와 고해가 술과 춤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기획 기사에서 유럽에서 기독교 신자가 급감한 탓에 고색창연한 교회와 성당 건물이 식당, 나이트클럽, 호텔, 암벽 등반장으로 바뀌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있는 파두아 성 안토니 교회 예배당이 인공 암벽 등반장으로 바뀐 모습을 소개한 AP통신 사이트 화면. AP통신은 지난해 6월 ‘유럽 교회에서 기도와 고해가 술과 춤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기획 기사에서 유럽에서 기독교 신자가 급감한 탓에 고색창연한 교회와 성당 건물이 식당, 나이트클럽, 호텔, 암벽 등반장으로 바뀌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있는 파두아 성 안토니 교회 예배당이 인공 암벽 등반장으로 바뀐 모습을 소개한 AP통신 사이트 화면.

■ 텅 빈 유럽 교회, 호텔·클럽 개조

2000년 동안 기독교 문화의 중심이었던 유럽은 이제 기독교인의 감소로 텅 빈 성당과 교회가 늘고 있다. 미국 AP통신의 지난해 6월 보도에 따르면 신도의 발걸음이 끊긴 성당과 교회가 카페, 콘서트장, 클럽, 호텔, 암벽 등반장으로 바뀌고 있다. 벨기에 메헬렌의 성심수녀회 교회는 신도가 없어 2년 문을 닫았다가 카페와 콘서트장으로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인근 프란치스코 교회는 고급 호텔로 재단장했다. 수도 브뤼셀의 파두아 성 안토니 교회는 2023년 암벽 등반 훈련장으로 바뀌었다. 교회가 문화, 레포츠, 접객 시설로 바뀌는 현상은 벨기에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전 유럽에 걸쳐 나타난다.

이와 달리 독보적인 콘셉트로 명소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도 있다. 맥주를 양조하던 수도원이 그 경우. 과거 순례자를 대접하는 한편 수도원 운영 경비 마련을 위한 맥주 양조가 지금은 지역 문화 자산으로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벨기에 베스트말레 수도원(Westmalle Abbey)이다. 이 수도원은 듀벨과 트리펠로 유명한 ‘트라피스트(수도원) 맥주’의 원조다.

수도원 입구의 레스토랑 ‘카페 트라피스텐’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곳에서 토산 음식과 수제 맥주를 맛볼 수 있는데 외딴 전원이라는 불편한 입지에도 불구하고 항상 손님으로 붐빈다. 지역민의 생활과 문화에 밀착한 덕분일 것이다. 독특한 점은 요청이 있으면 푸드 트럭에 음식과 맥주를 싣고 어디든 간다는 점이다. 종교가 속세와 동떨어지지 않고 사람들 속에서 살아 숨 쉴 때 생명력이 배가되는 사례로 읽힌다.

종교는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추구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본연의 가치는 지키되 방편을 바꾸는 유연성도 필요하다. 뉴진스님이 던진 화두는 그 법명의 뜻 그대로 ‘어떻게 새롭게(New) 나아갈(進·진) 것인가’일 터. 탈종교 시대, 종교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를 모색할지 주목된다.



벨기에 베스트말레 수도원은 듀벨과 트리펠로 유명한 ‘트라피스트(수도원) 맥주’의 원조다. 수도원은 지역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하는데, 요청이 있으면 푸드 트럭을 보내 음식과 맥주를 제공한다. 사진=베스트말레 수도원 홈페이지 벨기에 베스트말레 수도원은 듀벨과 트리펠로 유명한 ‘트라피스트(수도원) 맥주’의 원조다. 수도원은 지역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하는데, 요청이 있으면 푸드 트럭을 보내 음식과 맥주를 제공한다. 사진=베스트말레 수도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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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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