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영의 집피지기] 위기의 지역건설업
경제부 부동산팀 기자
부산의 한 중소 건설사 대표는 요즘 사무실로 출근하기가 겁난다고 했다. 일감은 없고 미수금만 쌓여가는 상황을 직원들도 뻔히 아는데, 그들을 볼 낯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처럼 동고동락했던 이들을 차마 내칠 수 없어 희망의 끈만 붙잡고 있는 실정이다.
올 들어 전국에서는 14곳의 종합·전문건설업체가 부도 처리됐다. 그중 서울 업체는 1곳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지역 건설사들이다.
부산의 경우 지난달 남흥건설과 익수종합건설이 부도 처리됐다. 두 업체는 모두 시공능력평가액 700억 원 이상으로 부산에서는 20위권에 들던 곳이었다. 이를 바라보는 다른 업체들은 다음 차례가 누구일지 마음만 졸이고 있다.
최근에는 호남의 중견 건설업체 남양건설이 기업회생절차 종결 8년 만에 다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지난해 전국 시공능력평가 99위를 기록한 광주·전남 대표 건설사인 한국건설도 법정관리 절차에 돌입했다. 지역 건설사들은 “1997년 외환위기나 2007년 금융위기만큼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위기는 취약한 고리에서부터 시작한다. 원자잿값 폭등, 고금리 장기화,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여파, 분양시장 침체 등 각종 악재가 업계를 휩쓸고 있지만 대기업과 지역 중견·중소업체가 체감하는 피해는 사뭇 다르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업체들이 같은 비율로 추가 비용을 감당해도 지역 업체는 당장 다음 달의 현금 유동성을 걱정해야 한다.
그나마 서울이나 수도권은 부동산 시장이 지방처럼 침체돼 있지 않아 미분양 걱정은 덜 해도 된다. 지역 업체들은 지역 내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발주로 숨통을 틔워야 하는데, 최근에는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단가가 맞지 않아 입찰마저 시들하다. 서로 끈끈하게 연계된 업체들도 많아 도미노처럼 줄도산 우려도 상존하는 게 지역 건설업계다.
업계는 정부와 지자체의 특단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간담회 몇 번 한다고 자금 경색이 해소될 리 만무하다. 이대로라면 부산 역대 최대 규모의 건설사업인 가덕신공항 건립공사에 지역 업체들은 들러리도 못 설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물론 하도급 대금을 제때 지불하지 않거나 경영권을 둘러싸고 소송전만 해대는 일부 지역업체들을 마냥 옹호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지역 건설업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건설현장에 투입되는 인력, 장비, 자재 대부분이 지역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벼랑 끝에 몰린 이들에게 지금 당장 손을 내밀어 줄 정책적 수단이 절실하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