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신문 이야기
인터넷과 종이 신문의 차이
기사 선별·편집 과정서 비롯
인쇄 과정, 정제된 뉴스의 바탕
완독의 즐거움·부수적 효과도
뉴스 환경, 디지털 넘어 AI시대
‘신문 정신’ 유지와 변화가 관건
이 글은 종이신문 이야기다. 만약 당신이 폰이나 컴퓨터로 보고 있다면 그만 읽어도 상관없다. 다만 이렇게 무미건조한 제목을 클릭했다면 최소한 언론에 관심 있는 분일 거라 짐작한다. 그 점에 감사드린다. 종이신문 독자라면 경험으로 이미 아는 내용이 많을 것이다.
“신문은 어떻게 봐야 하는 건가요?”
공교로운 일이었다. 최근 후배 동료 2명으로부터 거의 같은 질문을 각각 받았다.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1990년대생에게 종이로 된 신문은 낯선 물건인 모양이다. 신문사 밥을 먹는 특수한 처지에서 일종의 ‘종이신문 리터러시(문해력)’를 고민하는 것이다. 내 직책 때문에 물은 것은 아닐 테지만 명색이 신문 제작을 책임진 입장에서 뭔가 답을 해야 할 것 같다.
한국의 언론 구조를 볼 때 단순히 뉴스만을 위해서라면 굳이 종이신문을 볼 이유는 없다. 포털에 시시각각으로 뉴스가 쏟아진다. 〈부산일보〉는 하루 200건 남짓 기사를 생산한다. 이 기사들 역시 네이버(구독자 310만 명)나 부산닷컴(4만 1000명)에서 다 볼 수 있다. 그중 종이신문에 실리는 것은 70~80건. ‘부산’과 ‘일보’(日報)라는 회사 이름은 실은 우리의 업무 패턴과 안 맞는 측면이 있다. 지역을 막론해 24시간 웹에 기사를 전송하고 있으니.
기사 선별 작업은 ‘제작회의’에서 이뤄진다. 20년차 안팎의 기자들이 하루 2번씩 한다. 이 자리에서 어떤 기사를, 어떤 크기(밸류)로 지면에 담을지도 결정한다. 우리 사회, 특히 부울경에 의미 있는 것을 엄선하고 기획하는 과정이다. 반면, 속도가 생명인 웹 기사는 현장 기자에게 배포 등의 자율권이 많이 부여된다.
신문이 인터넷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편집’이다. 기사와 사진(그래픽)을 종이라는 한정된 공간에다 앉히는 과정이다. 세부적으로 제목과 레이아웃으로 나뉜다. 인터넷 기사는 클릭하면 그 기사만 볼 수 있지만 신문 편집은 기사들 간 조화와 균형, 중요도, 관련성, 아름다움, 가독성 등을 종합해 따지는 작업이다.
필자는 다른 신문을 6개 본다. 본문은 거의 안 읽는데, 전날 신문 제작 때 웬만큼 본 내용이라서다. 대신 어떤 기사를, 어떤 제목과 크기로, 어느 면에 넣었는지와, 같은 사안을 얼마나 다르게 접근했는지를 챙겨본다. 신문의 얼굴은 1면이다. 개별 언론사는 그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사와 사진을 이곳에 담는다. 우리도 1면 톱거리가 마땅찮은 날은 비상이다.
신문의 또다른 재미는 ‘제목’이다. 훌륭한 제목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본질적으로 독자 눈을 붙잡는 것이지만 인터넷과 신문의 문법은 다르다. 대체로 클릭(PV)을 노리는 인터넷은 가볍고, 신문은 무겁다. 신문 제목의 덕목으로 핵심 짚기, 방향 잡기, 간결함, 운율, 언어유희(pun), 중의성(重義性) 등을 꼽을 수 있다.
인터넷 독자들은 이게 뭐 그리 중요할까 싶을 것이다. 사회 어젠다를 만드는 데 신문은 여전히 강력한 플랫폼이다. 그 힘은 취재·기획력과 편집에서 나온다. 웹 기반으로 지면을 볼 수 있는 서비스가 생긴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편집을 마친 신문은 인쇄된다. 이 과정이 의미가 깊다. 인쇄된 것은 절대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인쇄 전에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그래도 틀리면 다음 날 지면에 바로잡기를 한다. 심할 경우, 인쇄된 신문을 몽땅 버린다. 인터넷은 다르다. 언제든 고칠 수 있고, 아예 없앨 수도 있다. 마음가짐 자체가 다르다.
같은 기사라도 플랫폼이 웹이냐 지면이냐에 따라 내용도 조금씩 차이 난다. 종이신문은 마감시간이 있고 지면이 한정돼 압축·정제된다. ‘정보의 바다’에서 뉴스가 이 정도라도 품질을 유지하는 것은 그 뒤에 종이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AI(인공지능)의 주요 학습 자료도 언론사가 생산한 콘텐츠다.
종이신문은 철저한 아날로그 매체다. 오감을 집중해 천천히 ‘완독’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확증편향 걱정 없이 관심 없는 분야도 자연스레 접한다. 또 여러 생각들이 담긴 칼럼은 '공공 포럼'이고, 광고는 또다른 정보다.
장황하게 신문을 설명했다. 이는 그만큼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면서, 반대로 속도 지향의 세상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신문은 노동집약적 장치산업이다. 이 글로 ‘디지털 쓰나미’를 거스르겠다는 욕심 따위는 없다. 한때 신문을 만든 자의 소박한 기록 정도의 의미라면 모를까.
언론 환경은 이미 종이냐, 디지털이냐의 수준을 넘어섰다. AI가 더 똑똑해지면 기자가 했던 일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신문이라는 ‘숙주’와 함께 수백 년 공진화했던 ‘저널리즘 정신’이 이런 환경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느냐다. 오늘도 꿋꿋하게 신문을 만드는 언론인들의 숙제다.
답이 됐는지 모르겠다.
김마선 페이퍼랩 본부장 msk@busan.com
김마선 기자 ms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