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AI와 인간, 누가 뉴스를 지배할까
이화행 동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11년 공개된 SF 영화 ‘인 타임(In Time)’은 시간 자체가 화폐로 기능하는 냉혹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인간은 스물다섯 살에서 생물학적 성장이 멈추며, 그 이후 생존 여부는 팔뚝에 새겨진 ‘시간 시계’에 남은 수치로 결정된다. 이 서사는 생명과 시간이 상품화된 세계에서 정의와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 철학적 우화로 읽히며, 자본주의적 불평등의 극단적 은유를 영화적 언어로 형상화한다.
현대사회에서 시간이 가지는 가치와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개념이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이다. 이는 20세기 후반 허버트 사이먼이 지적했듯, 정보가 과잉된 사회에서 진정으로 희소한 자원은 정보가 아니라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인간의 주의력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전통적으로 시간은 물리적·경제적 자원으로서 노동과 생산의 기준으로 이해되어 왔으나, 디지털 미디어와 플랫폼 자본주의의 확산은 시간의 질적 측면, 곧 집중과 주의라는 인지적 자원을 핵심적인 경쟁 대상이자 가치 창출의 토대로 변환시켰다.
정보 과잉 사회 '사용자 주목' 놓고 경쟁
콘텐츠 소비 시간 늘리려 알고리즘 개발
AI 맞춤형 서비스 뉴스 소비 파편화 가속
인간다운 통찰 저널리즘 위기 극복 대안
소셜 미디어, 스트리밍 서비스, 온라인 광고 시장 등은 이용자의 체류 시간과 참여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정교한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이는 곧 시간의 경제적 의미를 노동 시간에서 주의의 분배로 확장시킨다. 주목 경제는 시간이 개인의 삶의 질을 규정하는 동시에, 플랫폼과 기업이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활용되는 핵심 장치임을 보여주며, 이는 곧 시간의 통제가 현대사회의 새로운 권력 메커니즘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오늘날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자원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소비 대상이 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과 미디어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돈으로 상품을 사듯, 시간을 투자해 콘텐츠와 경험을 소비한다. 유튜브 시청, 넷플릭스 몰아보기, SNS 스크롤링은 모두 시간 소비 행위이며, 기업들은 이를 측정하고 최적화된 알고리즘으로 개인으로부터 더 많은 시간을 끌어내려 한다.
인공지능(AI)이 언론 현장을 급속도로 파고들면서 뉴스의 생산·유통·소비 전 과정이 전례 없는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소비자의 뉴스 이용 패턴은 더 이상 신문 지면이나 방송 뉴스의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지 않는다. 이제 뉴스 이용자는 알고리즘이 선별한 헤드라인, 소셜 미디어에서 순환하는 짧은 영상, 개인화된 푸시 알림을 통해 뉴스를 소비한다. 이는 곧 뉴스 소비가 기사 전체에서 부분으로 축소되는 현상, 즉 뉴스 소비의 파편화를 의미한다. 주목 경제 속에서 시간은 가장 희소한 자원이 되었고, 언론 역시 소비자의 몇 초짜리 시선을 두고 AI 기반 플랫폼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AI 시대 도래로 뉴스 소비의 파편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AI는 뉴스 공급을 위한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뉴스 공급 체계의 새로운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 자동 기사 작성, 데이터 기반 탐사, 음성 합성 앵커 등 AI는 이미 보도 영역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문제는 인간 저널리즘의 가치와 AI의 효율성 사이의 경쟁 구도다. AI가 신속성과 비용 절감을 무기로 한다면, 인간 기자는 현장성, 맥락 해석, 윤리적 책임이라는 영역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정된 시간 자원에 쫓기는 뉴스 소비자가 정확성보다는 속도와 편의성이라는 시성비를 우선할 때, 인간과 AI 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뉴스 공급자의 대응은 AI 활용과 인간 고유성 강화의 균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데이터 처리와 단순 반복적 기사 작성은 AI에 위임하되, 인간 기자는 탐사·비평·해석의 깊이를 더해야 한다. 동시에 미디어 조직은 독자의 주목을 단순 클릭에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심층적이고 지속적인 관심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 AI를 무조건 경계하거나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는 모두 위험하다. 중요한 것은 AI가 바꿔 놓은 뉴스 생태계 속에서 저널리즘의 본질을 어떻게 재정립하느냐이다.
요컨대,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흐려져 사회적 불신이 증가한 지금뿐만 아니라, AI와 인간이 공존할 미래에도 저널리즘의 사명은 여전히 동일하다. 언론은 진실을 드러내고, 사회적 공론장을 풍요롭게 하며, 인간다운 통찰을 제공하여야 한다. 언론이 이 본질을 잃지 않을 때 AI는 저널리즘에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