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으로] 피해의 파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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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연세대학교 글로벌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토벌하겠다는 목적으로 가자 지구를 폭격하고 봉쇄한 지 2년이 가까워 간다. 가자 지구로의 구호 식량 반입을 이스라엘군이 막은 탓에 팔레스타인 소년의 팔뚝 둘레가 12cm를 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묘하게 지난날 나치 독일에 의해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깡마른 유대인의 팔뚝이 떠오른다. 많은 유대인이 가자 공습에 동의하지 않음을 전제로, 현재의 이스라엘은 어떻게 하면 누구를 아우슈비츠 수용자처럼 다룰 수 있는지에 해박한 것 같다. 한 그룹이 겪은 고통을 세계가 알 필요는 있지만, 세계가 그 사람이 당했던 것과 똑같이 고통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한국은 예로부터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 경영의 피해 당사국으로 자신의 국가정체성을 대내외에 홍보했다. 21세기에 일본이 싫다는 소리가 지겨울 수 있어도, 제국주의에 반대하자는 명분은 지금도 살아 숨쉬는 문제의식이다. 문제는 한국이 제국·식민 위계에서 언제나 피해 당사국으로 자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여전히 베트남 전쟁기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진상조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 학살 사실이 없었다거나 당시 상황이 복잡했다는 식의 해명은, 일본 스스로 자신들의 제국주의에 대해 변명하던, 한국이 오랜 기간 욕해 온 바로 그 투와 대단히 비슷하다.

한국 남성들 중 일부는 여성도 군복무의 의무를 지라고 강력하게 요구한다. 물론 군복무가 나라를 지키는 긍지일 수는 있다. 헌데 여성도 군복무를 하라는 남성들이 자신의 긍지를 여성과 함께 나누자고 권하는 것 같지는 않다. 좋은 것을 나누는 태도가 그렇게 화난 채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겪은 힘듦을 당신들도 똑같이 겪으라는 것이 거기에 숨은 속내일 수 있다. 진실로 남성들의 의무병 복무는 그 자체로 국가폭력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내가 겪은 피해를 남들도 겪게 만들기 위해, 그 피해의 파이를 늘려 그 파이를 ‘공정’히 나누는 것은 정의가 아니고, 내 피해를 제대로 말하는 방식도 아니다.

X(옛 트위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활동해온 소위 ‘랟펨’들이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이 겪은 젠더 구조 하의 피해 사실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빌미로 젠더 구조의 또다른 하위에 놓인 성소수자와 성매매여성과 기혼 여성을 각각 ‘쓰까’ ‘자격 없는 여자’ ‘가부장제 부역자’라 공격한다. 그러나 내가 어떤 사회 구조의 피해자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피해가 내 것이고 오직 나만이 피해 당사자라는 소유의 감각, 그걸로 남을 마음껏 깔 수 있겠다는 쾌락의 감각, 그것이 내 이득으로 불어나 남들과 그 피해를 나누어 먹는 파이의 감각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피해는 그렇게 대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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